작자 미상「성 니콜라오 상」
높이 약 2.5미터, 바리,성 니콜라오 대선당
크리스마스 때마다 등장하는 산타클로스는 성 니콜라오의 덴마크식 이름인 신트 니콜라스(Sint Nikkaas)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황금전설>에 의하면 기근이 든 어느 해에 한 고약한 여관집 주인이 죄 없는 아이 셋을 살해한 후 먹거리로 팔기 위해 조금에 절이는 엽기적인 일이 벌어졌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된 니콜라오는 죽은 아이들을 모두 살려냈다고 한다. 이기적은 12월24일에 일어났으며, 이후 성 니콜라오스가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산타 할아버지의 옷이 붉은색인 이유도 주교였던 니콜라오의 붉은 주교 복장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영국에는 성 니콜아오에 봉헌된 교회가 400곳이 넘는다고 하는데 앨번 버틀러는 그의 저서『성인사전』에서 10세기에 쓴 한 무명인의 글을 소개하였다.
"도시든 농촌이든 섬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사람들은 성 니콜라오의 이름을 찬양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신자들이 그의 행적을 노래했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청원기도를 올렸다. 그의 보살핌은 끝이 없어서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으며,온 세계에 퍼져나갔다. 시칠리아,인디아,야만족,아프리카,이탈리아를 가리지 않고 온 세상 사람들이 그를 알았고 공경했다."
오늘날 성탄이 다가오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으니 그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더욱더 커진 셈이다. 성 니콜라오는 270년 경 오늘날의 터키에 해당하는 소아시아의 파타라에서 출생하여 341년까지 살았다. 미라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오는 디오클레시아누스 박해 때 투옥되었다가 그리스도교를 옹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재위 시에 풀려나 미라로 돌아와서 억울한 형을 받은 사람들의 구제에 힘썼는가 하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에 맞서 정통 그리스도교를 알리는 설교에 큰 힘을 쏟았다.
현재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바리의 성 니콜라오 대성당에 모셔져 있다. 성인의 무덤은 원래는 그가 주교로 있었던 터키의 미라에 있었는데 이 도시가 아랍의 침략을 받자 1087년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유해를 바리로 옮겨 왔고, 바로 그해에 대성당 건축을 착수하였다.이후 110년 간의 건축 기간을 거쳐 1197년에 완성하여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축성하였다.
바리의 성 니콜라오 대성당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로마네스크 건축물로도 꼽힌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10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유행한 양식으로 뾰족하고 화려한 고딕성당이 탄생하기 직전의 건축 양식이다.
성 니콜라오 대성당.1189년 완성.로마네스크 건축양식,바리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는 육중한 성채 모양을 하고 있다. 전쟁이 끊일 새가 없었던 당시에 교회는 적군이 침략하면 시민들이 피신하는 피난처였고, 평화 시에는 시민들의 삶의 중심지였다.
위에 소개한 바리 성당은 단단한 성채처럼 보인다. 정면 벽은 반원형의 아치들과 창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서 단순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으며 '채움과 비움'미학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다. 때마침 성당 정면을 지나가고 있는 황혼 빛이 고즈넉하다.
본문에 소개한 성 니콜라오 성인의 조각상은 바리 대성당 문 입구 쪽에 설치되어 있으며 성인의 축일에 신자들이 모시고 나가 행렬을 하는 공경받는 조각상이다. 주교 복장을 하고 있으며 황금색 제의 안에는 산타클로스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수단이 보인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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