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밀라노의 주보성인 암브로시오(1)[30]

모든 2 2019. 12. 8. 22:42




작자미상 「암브로시오」(부분)


  몇 해 전 겨울 밀라노에 간 적이 있다. 그날따라 밀라노의 중심부인 두오모 대성당과 광장 주변은 하루 종일로 붐비지만 그날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밀라노 시민 전체가 가족들과 함께 광장으로 나온 듯했다. 그날은 바로 밀라노의 주보성인 암브로시오 성인(339~397)의 대축일이었다. 내가 도착한 날은 그러니까 이 성인의 축일인 12월7일이었던 것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은 암브로시오 성인 축일을 시즌 개막일로 잡는다. 스칼라 극장은 두오모 대성당과 인접해 있는데 표를 예매하지 못해 극장에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대형 전광판을 통해 공연을 실황중계해 주고 있었으며 이를 보기 위해 전광판 주변에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처럼 도시의 주보성인이 선종한 지 2천 년이 다 되었어도 공경 받으며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성인은 그들의 삶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밀라노에서 일어난 가장 역사적인 사건은 313년에 선포된 '밀라노 칙령'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00년 동안 박해를 당해 왔던 로마제국의 시민들과 신자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역사적 사건이 바로 밀라노 칙령이다. 이 사건 이전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숨어서 신앙생활을 해야만 했고 신자인 것이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밀라노 칙령으로 신자들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이는 가톨릭교회가 이탈리아의 역사는 물론 서구세계에 결정적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그 유명한 성녀 헬레나의 아들이다.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종교가 아니라 믿어야 하는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 이때부터 교회 건축이 탄생했고 전례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무렵 로마제국의 수도는 밀라노였다. 로마에서 밀라노로 수도를 천도한 것이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바로 이 시기 밀라노의 주교였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아우구스티누스,예로니모,그레고리오 대교황과 함께 가톨릭 교회의 4대 교부 가운데 한 분이시다. 당시에는 교회가 아직 교리상으로 완전히 정립되지 못했기에 이단이 난무했는데 바로 이런 시기에 암브로시오 성인의 설교와 그가 집필한 많은 저서들과 『설교집』은 그리스도교 정립에 뿌리가 되었고, 이단으로부터 정통 교리를 지켜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표지에 실린 성 암브로시오 성인의 모습은 성인이 선종한 후 그에게 봉헌된 유서 깊은 성 암브로시오 성당의 내부에 제작된 대형 모자이크 벽화로 제작 연대는 5세기다. 밀라노의 가장 중요한 성당인 암브로시오 성당은 성인이 활동했던 378년에 첫 삽을 뜨고 386년에 축성한 건물로 9세기 이후 대대적으로 재건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행히 성인을 그린 이 모자이크 벽화는 처음에 지어졌던 교회의 일부와 함께 기적처럼 보존되어 있다.

  이 성상은 중세 회화의 특징인 모자이크 기법으로 제작되어서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형태상으로는 고대의 사실적인 묘사에서 중세의 상징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그래서인지 성인의 모습은 고대 조각이나 회화에서 볼 수 있었던 입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중세 특유의 평면적인 형태가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얼굴의 인상은 성인이 선종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제작되었기에 실제 이미지를 최대한 반영한 듯하다. 짧은 머리에 짧은 수염으로 그려졌으며 머리 위에는 AMBROSTUS라는 성인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