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기도하는 어머니,성녀 모니카[29]

모든 2 2019. 12. 1. 22:30




시모네 마르티니「성 아우구스티누스」

1320~25,게임브리지,피츠윌리엄 미술관


  성녀 모니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모친이다. 유명한 『고백록』의 저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의 4대 교부(敎父)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다. 그가 쓴 책이 천권이 넘을 정도라 하니 범인으로서는 그의 지적 능력을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부터 훌륭한 학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학문에 뛰어난 능력을 타고 났으나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했는가 하면, 여인과 동거하여 16세에 아들을 낳았고,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지기도 했다.한마디로 기도거리 아들이었다. 그를 위해 모니카는 평생을 기도했으며 무엇보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 소망은 아우구스티누스가 33세 되던 해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함으로써 마침내 이루어졌다. 길고 긴 세월 끊임없이 바친 기도가 결실을 거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에 기도가 이루어지게 하셨다.

  지금 우리나라는 입시철이어서 어머니들의 기도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때이다. 성적이 예상만큼 나오지 않으면 어머니들은 기도가 부족했던 것이 아닌지 자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니카가 아들의 세례를 위해 바친 30년의 기도를 생각한다면 위안이 될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에게 늘 최상의 결과를 주시기 때문이다.

  성녀 모니카는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라는 곳에서 태어나 그리스도교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남편 파트리치오는 모니카가 40세 되던 해인 370년 경 사망했는데 바로 그해에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도 평생을 기도했을 것 같다.

 29세이던 383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 몰래 동거녀와 아들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후 모니카는 아들이 있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마침내 밀라노에서 살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찾아냈다. 극성 어머니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 밀라노의 주교는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과 함께 교회의 4대 교부의 한 분인 성 암브로시오로부터 지대한 신학적 영향을 받았고, 모니카 역시 암브로시오 성인과 친교를 나누었다고 하니 대단한 지적 능력을 갖추었던 것 같다.

  늘 자식 걱정이 앞섰던 모니카는 아들과 함께 베렌콜로라는 마을에서 생활했다. 그곳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연구 활동을 하며 사람들과 토론을 벌였고 모니카도 토론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을 통해 터득한 어머니의 지적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이는 철학을 우선시했던 그의 태도에 변화를 일으켜서 33세 되던 387년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침내 개종하여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는 그녀 자신이 눈물과 기도와 한숨으로 청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이후 모니카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쳐갔던 이탈리아의 오스티아 항구에서 66세의 나이에 선종했다. 모니카 성녀의 생애 마지막 순간 모자(母子)는 영혼이 가장 높은 곳까지 이르는 신비를 체험했다고 하며 이를 '오스티아의 현시"라고 부른다.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 역시 인간인 이상 세상을 사는 동안 죄를 지었을 것으로 생각하여 어머니가 지상에서의 죄를 용서받고,하늘나라에 올라 아버지 곁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위대한 어머니 성녀 모니카가 없었다면 위대한 학자 성아우구스티누스도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종희 마리아 /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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