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성 암브로시오(2)[31]

모든 2 2019. 12. 15. 21:30




부올비노(Vu0lvino)작 「성안브로시오의 생애」 성 암브로시오 성당 제대 뒷면(부분)



  성 암브로시오의 생애

  암브로시오(339~397)는 로마제국 시대인 339년 독일 트리어라는 고을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신자였던 부친에 의해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부친이 사망한 후 로마로 건너와 라틴어와 그리스어,문학과 수사학 등 주요 학문을 공부했다.

  365년 로마제국의 공무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으며,370년에는 황제 발렌티아누스에 의해 이탈리아 북부의 리구리아와 에밀리아 주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밀라노는 당시 이들 주의 주도였으며 주의 총독이란 오늘날의 도지사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이 무렵 암브로시오의 나이가 갓 서른이 넘었으니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아 공직에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주의 총독이었던 암브로시오가 밀라노의 주교로 선출된 상황을 보면 무척 흥미롭다. 당시 교회는 아리우스파라는 이단과 정통 교회가 극심한 대립 상태에 있었다. 총독이었던 암브로시오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평화적인 해결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던 중 한 아이가 소리쳤다.


"암브로시오를 주교로!"

그러자 군중 전체가 한 목소리를 냈다.

"암브로시오를 주교로 선출합시다!"


  암브로시오는 당시 세례도 받지 않은 예비신자였는데 주교가 되라니 몹시 당황했다. 게다가 성직에는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대립하던 이단 아리우스파와 정통교회가 한 목소리로 그를 원했기에 대중을 설득하는 탁월한 타협 능력이 인정되어 그 지방의 주교들은 암브로시오를 밀라노의 주교로 임명했다.

  주교가 된 암브로시오는 세상과의 인연을 정리했다. 가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신학을 열심히 공부했으며,매일 미사를 집전했다. 항상 방문을 열어 놓고 자신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이단 아리우스파의 기세를 제압하고 정통 교리를 지켜낸 일이었다. 한번은 아리우스파를 지지하던 황제군이 교회 안에 있던 암브로시오와 신자들을 포위하고는 교회 문을 폐쇄한 채 이들이 굶어 죽을 때까지 여러 날을 끌다가 부활절날 열어 보니 모두 살아 있음은 물론 암브로시오 자신이 작곡한 성가를 신자들과 계응으로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암브로시오 찬가가 바로 이때 탄생했다는 설이 있다.

  암브로시오 성인이 살아있을 때 짓기 시작한 밀라노의 유서깊은 성 암브로시오 성당은 9세기에 재건축을 하여 오늘에 이르는 이탈리아 최고의 로마네스크 건축물이다. 이 성당을 유명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미술품은 9세기에 제작된 대형 제대이다. 반지,팔찌,왕관 등을 만들 때 쓰이는 값비싼 세공 재료인 금,은,보석으로 2미터가 넘는 제대를 만들었다니 그 가치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제대의 앞부분에는 예수의 생애가 뒤쪽에는 성 암브로시오의 생애가 금판과 은판을 두드려서 만들어졌으며 제대 곳곳에는 각종 아름다운 보석들이 장식되어 있다. 1000년 이전의 중세 미술품에는 작가와 주문자의 이름이 기록된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 제대에는 주문자였던 대주교 안질베르토(재위 824~859)의 이름과 작가 부올비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영원히 기억되게 하였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