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성 크리스토포로[26]

모든 2 2019. 11. 19. 22:40




안 반 에이크 형제「겐트의 제단화」(부분)

1427~32,겐트,성 바보네 대성당



  크리스토포로란 그리스도의 운반자라는 뜻이라고 하며 거인으로 알려져 있다. 전승에 따르면 크리스토포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 밑에서 봉사하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힘센 자를 찾아 헤매던 어느 날 한 은수자를 만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강을 건너다가 자주 빠져 죽는데 키가 큰 네가 사람들을 도와주면 그리스도가 좋아하겠구나."

  그때부터 크리스토포로는 강 근처에 초막을 짓고, 나무를 잘라 지팡이를 만든 후 강을 건너는 나그네들을 도와 주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포로는 아기를 어깨에 매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가 점점 돌덩이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하더니 물살이 점점 세져서 크리스토포로는 두려움에 떨었다.

  "너는 마치 온 세상을 짊어진 것처럼 무겁구나."

  "두려워 말라. 너는 세상뿐만 아니라 세상의 창조자를 짊어지고 있느니라.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 강을 건너거든 네 지팡이를 땅에 심거라. 아침이 되면 거기서 꽃이 필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아기의 말대로 했더니 과연 마른 지팡이에서 꽃이 피었다. 크리스토포로가 어깨에 메고 강을 건너준 아기가 바로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이후 그는 세례를 받고 크리스토포로라는 세례명을 받았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 크리스토포로는 데치우스 황제 재위(249~151)  시절에  소아시아의 리치아에서 순교했다고 하며 이미 5세기경에 그에게 봉헌한 성당이 지어졌다고 한다. 크리스토포로는 여행의 수호성인이어서 자동차에 그의 미니어처를 세워 두는 풍습이 있는가 하면 이 성인의 그림을 보면 당일에는 죽지 않는다는 설에 따라 서구의 마을 어귀나 주요 건물에 크리스토포로가 아기예수를 지고 강을 건너는 모습을 큼지막하게 그려 놓은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로렌초 로토「성 크리스토포로,성 로토,성 세바스티아노」

1535년 경,275×233cm,로레토,교황대리구 산타 카사 박물관


  로토의 <성 크리스토포로,성 로코,성 세바스티아노>는 이 성인을 그린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다. 중앙에 아기 예수를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짚고 강을 건너고 있는 사람이 바로 성 크리스토포로다. 주인공 크리스토포로는 옆의 두 성인에 비해 무척 큰 거인으로 그려졌다. 기분 좋게 휘날리는 붉은 천은 그림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몇 년 전 성지순례를 하기 전 이탈리아의 지인 두 사람에게 방문할 도시를 몇 군데 추천하라고 했더니 두 사람 모두 첫 번째 도시로 로레토(Loreto)를 추천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10년 이상 유학을 했으나 로레토라는 곳을 가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었다. 눈이 열리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다. 로레토를 향해 갔는데 그곳은 나자렛에 있었던 예수님,성모님,성 요셉이 살았던 집이 보존되어 있는 성지였다. 십자군 전쟁 때 병사들이 성가정이 살았던 귀한 주택을 지키기 위해 나자렛에서 그곳으로 벽돌을 옮겨왔다고 한다.벽돌의 성분이나 그곳에 쓰여진 글씨 등이 예수님 시절 나자렛에서 쓰였던 것임이 고고학적으로 증빙되었다는 설명도 읽을 수 있었다. 그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수많은 환자들과 신자들이 찾는 진정한 성지였다. 로레토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박물관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나는 로토의 <성 크리스토포로,성 로코,성세바스티아노>그림을 발견하고 전율했다. 화가가 생애 마지막을 이 도시에서 보내며 남긴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이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