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네 마르티니「성 마르티노의 꿈」
1212~18,265×200cm,프레스토 벽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지하. 성 마르티노 경당
성 마르티노(336~397)는 군인들의 수호성인이다. 그리스도의 열세 번째 사도로 불릴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으며, 술피치오라는 제자가 쓴「마르티노의 생애」라는 전기가 전해지고 있어서 성인의 삶을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다.
성 마르티노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망토를 자르는 말을 탄 기사의 모습인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마르티노가 프랑스의 아미애에서 로마제국의 군인으로 일하던 어느 겨울날 그는 성문 앞에서 추위에 떨며 구걸하는 걸인과 마주쳤다. 줄 것이 없었던 마르티노는 검으로 자신의 망토를 자른 후 그 반쪽을 걸인에게 주었는데 그날 밤 꿈에 예수님이 나타났다.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예비신자 마르티노가 이 망토로 나를 덮어주었다."
꿈속의 예수님은 낮에 마르티노가 망토를 준 바로 그 걸인이었다. 마르티노는 다음날 즉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스무 살 즈음에 마르티노 인생에 전환기가 찾아왔다. 오늘날의 프랑스에 속하는 갈리아 지방에 이민족들이 침략하자 로마제국의 황제 체라시 율리나노(재위355~360)는 출전을 앞둔 병사들에게 봉급을 주기 위해 병사들을 소집했다. 차례가 되어 황제 앞에 선 마르티노는 봉급 받기를 거부했다.
"저는 지금까지 군인으로 당신을 섬겼으나 이제부터는 이곳을 떠나 그리스도를 섬기려 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군인이기 때문에 이제는 봉급을 받지 않겠습니다."
"너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군인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제 결심이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내일 아침 무장 해제한 채 십자가 하나만 들고 적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황제는 마르티노에게 말한 대로 할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다음날 놀랍게도 적군의 사신이 항복을 알려왔다. 마르티노는 싸우지 않고 적진에 들어가 십자가 하나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후 마르티노는 군대를 떠나 은둔생활을 했고,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어 25년간 사목활동을 하다가 주교직을 떠나 마무르티에라는 마을에서 살며 수도원을 설립하여 오늘날의 프랑스 땅인 갈리아 지방에서 그리스도교가 번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지하에는 성 마르티노 경당이 있는데 그곳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시모네 마르티니가 그린 성 마르티노의 생애에 관한 벽화들로 장식되어 있다. 그중 <가난한 자에게 망토를 주는 마르티노>는 말을 타고 있는 기사 마르티노가 장검으로 망토를 자르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망토의 한쪽을 잡고 있는 남성은 맨발에 헤진 옷을 입고 있는 걸인의 모습이며 배경의 건축물은 마르티노가 군복무를 했던 아미행 시의 대성당이라고 한다. 마르티노가 망토를 자르는 이 장면은 이후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으며 그의 상징 이미지가 되었다.
<성 마르티노의 꿈>은 망토를 잘라준 그날 밤의꿈 이야기를 그렸다. 꿈에 예수님이 천사들에 둘러싸여 나타났는데 예수님은 마르티노가 낮에 망토를 잘라 준 바로 그 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라는 마태오 복음을 이보다 더 잘 그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마르티노가 덮고 있는 침대보의 경쾌한 색상, 침대보 속에 드러난 신체의 볼륨,두 손을 살포시 모은 채 꿈을 꾸고 있는 모습,침대 앞의 장궤,배경의 커튼 등에서 현실세계를 정확하게 재현하고자 한 화가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다.
-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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