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소 피오렌티노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부분)
니코데모는 성화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나오는 유일한 장면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인데 그는 여기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못을 빼는 인물로 등장한다.
주보에 소개한 롯소 피오렌티노의 작품은 이 주제를 그런 대표적인 그림으로 위 아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위쪽은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장면을 그렸다. 한 사람은 예수님의 몸통을 잡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발을 잡고 있는데 이들의 몸은 사다리에 의지하고 있어서 아슬아슬하다. 그중 예수님의 발을 잡고 있는 사람은 뒷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서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극도의 긴장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림 아래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그 자리를 지켰던 성모님과 여인들, 그리고 사도 요한이 그려져 있다. 기절 직전의 성모님을 부축하고 있는 두 여인과 슬픔에 복받쳐 성모님 앞으로 쓰러지고 있는 붉은 옷의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슬피 우는 사도 요한이 보인다. 이들은 화가가 마음대로 정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하여 오랜 세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 그림에서 등장해 왔던 인물들이다.
이들 중 누가 니코데모일까?
유일하게 두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로 시작되는 요한복음 3장에서 화가는 니코데모가 최고 의회 의원이라는 말에 힌트를 얻어 니코데모를 특별히 권위가 있는 옷차림의 인물로 그린 것이다.
1521년 이 그림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보통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모습을 그렸는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장면을 이처럼 역동적이고 강렬하게 그린 그림을 처음 만났기 때문이었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빛과 색채다. 빛은 등장인물들의 옷을 반사시키며 양철판처럼 차갑고 예리하게 변화시킨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붉은 옷은 빛으로 인해 더욱 강렬히 빛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는 요한 역시 빛으로 인해 피카소의 입체파 작품처럼 파편화되었고, 추상화되었다.
롯소 피오렌티노는 이 그림으로 매너리즘이라는 새로운 미술양식을 탄생시켰다. 재현이 지상 목표였던 당시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이 작품은 충격이었다. 납빛처럼 차가운 하늘,몰아지경에 빠진 듯한 등장인물들의 강렬한 감정은 당시에는 볼 수 없던 것이었다. 이제 화가는 사실 재현의 기술을 뽐내는 것에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다. 객관적 묘사가 아니라 주관적 표현이 중요해진 것이다.
"언제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요한26,39)
화가가 니코데모를 이 그림에 등장시킨 성서적 근거다. 예루살렘의 예수무덤성당에는 예수님의 시신을 눕히고 향유를 발라 장례를 치렀다는 크고 판판한 돌이 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엎드려 기도하는 이 돌판에는 늘 나르드 향유가 발라져 있어 향기가 난다.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위해 바친 바로 그 향유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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