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나타난 순간 마리아는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화가들이 마리아를 묘사하는 것과 직결된 문제다. 마리아는 바느질하고 있는 조신한 처녀의 모습으로 그려졌는가 하면 성경을 읽고 있는 교양 있는 여성으로도 그려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성모영보」1472-75,패널에 템페라와 유채,98×217cm,피렌체,우피치 미술관
<다빈치의 성모영보>
위의 그림은 22세의 청년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공방을 차리고 주문받아 그린 첫 그림이다. 다빈치는 마리아를 멋진 저택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양갓집규수로 그렸다. 독서 중이던 마리아는 갑작스런 천사의 등장에 놀랐는지 한 손을 들어올리며 놀라고 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왼손에 순결의 상징인 백합을 들고 있다. 천사의 탄탄한 날개와 옷주름, 성모님의 앉아 있는 모습 등에서 입체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그림이 주목하는 이유는 정교한 인물 묘사가 아니라 다른 화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자연현상 때문이다. 그림 앞쪽에는 꽃이 만발한 잔디밭을, 중간쯤에는 나무들을 수종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했다.
다빈치의 진가는 멀리 보이는 배경에서 한껏 드러난다. 하늘과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인데 무엇이 하늘이고, 무엇이 강인지 희미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물 위에는 점 같은 것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배들이다.
바로 여기에 다빈치 회화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는 관찰을 통해 멀리 있는 것은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는 시각현상을 깨닫게 되었고 이 그림을 통해 그 비밀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다빈치의 이 그림은 과학으로 그린 그림의 가장 오래된 사례 중 하나다. 미술사에서 원경의 물체를 희미하게 그리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150년이나 지나서였고, 이를 본격화한 것은 그로부터 400년이나 지난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이었음을 생각한다면 다빈치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로렌초 로토 「성모영보」
1534-35,캔버스에 유채,166×114cm,레가나티,시립미술관
<로토의 성모영보>
로토의 <성모영보>는 배경이 실내다. 그때까지 마리아아와 천사는 마주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반면 이 그림에서는 마리아가 관객이 있는 앞을 갑작스런 등장에 독서 중이던 마리아는 두 손을 들어올리며 화들짝 놀라고 있고,천사는 한 손에는 백합을 다른 한 손은 번쩍 치켜들며 역동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이 있는 곳은 호화판은 아니지만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상류층 가정의 실내다. 침대, 책, 촛대, 수건,모래시계 등 일상의 소품들이 현실감을 더해 주고 있고, 천사의 출현에 화들짝 놀라 달아나고 있는 고양이는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또한 문밖의 아름다운 정원은 천상 낙원을 보는 듯하다. 투명한 공기,빛과 그림자, 마리아의 강렬한 붉은 옷과 그에 대비되는 천사의 푸른 옷, 이 모든 것이 화가의 섬세한 배려 덕이다.
그런데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공중에서 날아오고 있다. 바로 하느님이다. 화가는 구세주의 잉태가 하느님의 뜻임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 미술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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