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학자의 수호성인,예로니모[17]

모든 2 2019. 9. 1. 21:00





콜란토니오「서재에 있는 성 예로니모」

1443-44,패널에 혼합재교,125×150cm,

나폴리,카포디몬테 미술관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예로니모 성인 덕일지도 모른다. 그가 그리스어로 쓰인 성경을 로마제국의 공식 언어였던 라틴어로 번역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공로로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성 예로니모를 교회의 4대 교부(敎父)중 한 분으로 선포했다. 교부란 교회의 아버지라는 의미이며 나머지 세분은 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성 그리고리오 대교황이다.

  예로니모는 347년 이탈리아 북부의 스트리도니아라는 작은 마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2세에 로마로 건너가 당대 유명한 학자

에서 라티어와 그리스어, 수사학을 공부하면서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이후 교황 다마소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교황은 라틴어 성경을 만들기 위해 예로니모에게 라틴어 성경을 총 점검하라는 임무를 맡겼고,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 라틴어 성경 <불가타>(vulgata)이다. 불가타는 대중적이라는 의미로 그동안 엘리트 계층만이 읽을 수 있었던 그리스어 성경을 보다 보편적인 라틴어로 읽을 수 있게 함으로써 성경의 이해와 보급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로니모는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학문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베들레헴의 예수탄생 성당 바로 옆에는 성녀 카타리나 성당이 있는데 그 지하에 예로니모 성인이 성경을 해석하고 번역한 공부방과 경당이 보존되어 있다. 그가 번역한 성경은 1942년 로마가톨릭교회의 공식<라틴어 성경>으로 채택되었다고 하니 그가 교회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

성 예로니모는 고대 연구가 붐을 이루었던 르네상스시대에 인문학자들의 멘토이자 수호성인이 되었다. 은둔자 시절 광야에서 예로니모 성인이 발에 가시가 박힌사자의 가시를 빼준 후 그 사자가 평생 성인 곁을 지켰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된다.


<서재에 있는 성 예로니모>

  콜란토니오가 그린 <서재에 있는 성 예로니모>는 은둔자의 모습을 한 예로니모가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주는 장면이다. 성인이 사자의 가시를 빼준 곳은 은둔자 시절의 광야였으나 화가는 서재로 배경을 바꿈으로써 학자의 이미지도 그리고 그의 표징이 된 사자도 그리는 재치를 발휘했다. 책장에 어지럽게 쌓아 놓은 책들과 현대판 포스트잇을 연상시키는 메모지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그릴 수 있다는 화가의 자부심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사실주의 그림에 필수적인 공간감과 빛이 아직은 미약한 상태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서재에 있는 성 예로니모」1474,패널에 유채, 45.7×36.2cm,런던, 내서널 갤러리



  성 예로니모를 그린 가장 유명한 그림은 콜란토니오의 제자인 안토넬로 다 메시나가 그린 <서재에 있는 성 예로니모>이다. 이를 보고 계신 신자들께서는 뻥 뚫린 대리석 아치 밖에서 서재에 앉아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한 학자를 들여다 보는 느낌을 경험했을 것이다. 뻥 뚫린 아치 벽과 그 아래에 놓인 작은 종지기와 새는 그림자까지 그려져 있어서 실제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다. 성인이 앉아 있는 책상과 책장은 대단히 입체적으로 보이고, 바닥재의 문양과 창문이 뒤로 갈수록 작아 보이는 것은 동시대에 발명된 투시법 덕분이다. 화면 전체를 비추는 빛 역시 이전에는 결코 볼수 없었던 중요한 회화 요소다.

  르네상스 사실주의의 핵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을 소개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이 그림, <서재에 있는 성 예로니모>를 꼽겠다.

  앗! 그런데 이 그림에서도 어스렁거리는 사자가 한마리 보인다.


   -고종희 마리아 / 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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