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조「성녀 가타리나의 신비의 결혼식」,
1526~27,105×102cm,파리, 루브르 박물관
<황금전설>에 의하면 알렉산드리아의 가타리나는 공주 신분으로 철학,수사학,문법 등을 두루 교육받은 지혜로운 처녀였다. 4세기경 그녀가 살았던 알렉산드리아는 막시미누스라는 로마 황제가 통치하고 있었다. 가타리나가 열여덟 살쯤 되던 어느 날 황제는 알렉산드리아의 시민들을 소집하여 이교 신을 숭배할 것을 강요했다. 이에 가타리나는 황제에게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고 미신을 버리라"고 용감하게 말했다. 아름다운 처녀가 똑똑하기까기 하니 황제는 호감을 느껴 황궁으로 데려오게 했다.
하지만 가타리나의 박식함에 혼자서 대적할 수 없었던 황제는 이 도시 최고의 학자들을 소집하여 그녀와 맞장 토론을 하게 했다. 이때 모인 학자들이 5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가타리나는 주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기로 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토론에서 그녀가 이길 것이며 그곳에 모인 학자들은 전부 개종한 후 순교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과연 천사의 예언대로 성령의 힘으로 학자들은 모두 개종하였고, 황제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다. 그러고 나서 황제는 가타리나에게 자신과 결혼하면 온갖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며 청혼했다.
"생각만으로도 죄가 될 그런 얘기는 하지 마시오. 나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신부일 뿐이오."
그녀는 어떤 고문도 자신을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가 난 황제는 그녀를 감옥에 가두고 음식을 주지 말 것을 명하고는 자신은 다른 도시들을 둘러보기 위해 떠났다. 그 사이 감옥에 있는 그녀에게 비둘기가 음식을 날라 주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황제는 비쩍 말랐을 것으로 생각했던 가타리나가 살이 포동포동 쪄 있는 것을 보고 간수를 추궁하니 비둘기가 음식을 날라다 줬다고 했다.
굶겨도 죽지 않자 황제는 그녀를 뾰족한 못이 박힌 바퀴에 깔려 죽게 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못이 달린 바퀴를 산산조각 내는 바람에 많은 로마병사와 이교도들이 파편에 맞아 즉사했으나 가타리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이에 황제는 가타리나를 참수형에 처했으며 잘려진 목에서는 피 대신 우유가 나왔다고 한다. 가타리나는 교회의 진리를 증명하였고 이교도 학자들을 개종시킨 공로로 학자들의 주보 성인이 되었다.
<순교하는 가카리나>
루카스 크라나흐「순교당하는 성녀 가타리나」1510년,
112×98cm,패널에 유채,부타페스트,프로테스탄트 교회
<순교하는 가타리나>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는 가타리나와 그녀의 뒤에서 목을 치기 위해 한 손으로 그녀의 가냘픈 목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장검을 들고 있는 병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늘에서 쏟아진 시커먼 불구름으로 인해 못이 달린 바퀴가 부서지고 있으며,바퀴의 파편을 맞은 병사들이 고꾸라지고 있다. 놀라운 기적 앞에서 혼돈에 빠진 인파들과 동요하지 않는 성녀의 모습이 대조를 보이고 있다. 바퀴가 부서진 순간과 성녀가 참수당한 순간은 시간차가 있으나 화가는 성여의 일화를 한 화면에 다 그려 놓는 재치를 발휘했다.
이 그림을 그린 루카스 크라나흐는 독인 최고의 화가로 루터의 전속화가였다. 개신교는 성화를 배척하였으나 개신교의 설립자인 루터는 전속호가를 두고 성화를 제작하게 하였음을 이 그림은 보여주고 있다.
코레조의 <성녀 가타리나의 신비의 결혼식>은 가타리나가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고백한 것을 근거로 성모마리아의 무릎에 앉은 아기예수가 성녀 가타리나에게 결혼 반지를 끼워 주는 순간을 그렸다. 여기서도 가타리나는 공주라는 신분에 걸맞게 값비싼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었다.
-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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