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마르타의 집을 방문한 그리스도[12]

모든 2 2019. 7. 28. 21:09





작가 미상「라자로의 부활」

12세기,모자이크,시칠리아,몬레알레 대성당



  마르타가 길을 가시전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셨다. 그녀는 예수님을 대접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으나 동생 마리아는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었다. 마르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세요."

  하지만 주님께서는 마르타가 듣고 싶은 말씀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신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1,40-42)


  주님은 때로 냉정하고 야속하시다. 하지만 주님 말씀은 틀림이 없으니 그저 믿고 따를 뿐이다. 살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소한 것에 목을 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 구절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중요한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해도 해도 표가 나지 않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가정도, 사회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마르타가 중요한 이유다.


벨라스케스「마르타의 집을 방문한 예수님」1619~20,60×103.5cm,캔버스에 유채,런던,내셔널 갤러리


  이 그림은 마르타가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중인 모습이다. 작은 절구에 무언가를 갈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뾰로통해 보인다. 혼자서만 식사 준비에 분주할 뿐 동생 마리아는 부엌 저편에서 예수님 말씀을 듣는 데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는 비늘이 반들거리는 신선한 생선을 비롯하여 계란,마늘,고추,기름병 등이 놓여 있다. 화가는 좋은 요리를 위해서는 노인의 훈수 한마디도 필요함을 잊지 않고 마르타 옆에 노인을 한 명 그려 놓았다. 너무나 소박한 부엌 풍경이다.

  이 그림을 성화라기보다는 일상을 그린 한 폭의 풍속화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미술사에서 풍속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겨난 것은 바로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 초였다. 화가 베라스케스는 스페인의 왕 필립페 4세의 궁정 화가로 왕과 왕의 가족을 그리는 것이 주된 업무었으나 그 시대 서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은 당대 최고의 풍속화가이기도 했다. 이 그림에서도 대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라자로의 누이 마르타>

  베타니아라는 마을에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바로 그의 누이 동생들이었다. 오빠가 병을 앓고 있으므로 주님께서 오셔서 고쳐 주십사 하고 사람을 보냈으나 예수님은 라자로가 묻힌 지 3일이나 지나서여 무덤을 찾으셨다. 예수님께서 돌을 치우라고 하시니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고 마르타가 대답했다.

  "라자로야,이리 나와라."

  그러자 붕대로 칭칭 감긴 시신이 걸어 나왔다.

  그림을 보면 예수님과 죽은 라자로, 그리고 모여든 많은 군중이 보인다. 천으로 칭칭 감은 라자로의 양 옆에 고약한 냄새로 인해 코를 틀어막고 있는 두 여인이 보이는데 마르타와 마리아일 것이다. 익명의 이 중세 화가는 성경 말씀을 두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핵심만 간결하게 그려 냈다.


   -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마르타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언니이자, 죽었다가 부활한 라자로의 누이로 성경에 세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예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방문했을 때이다.

 

귀한 손님이 오셨으므로 마르타는 손님께 대접할 음식 준비로 분주하다. 그러나 마리아는 집안일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귀한 말씀을 듣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 보다 못한 마르타가 선생님께 불평한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참 야속하신 주님의 말씀이시다. 우리가 살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부수적인 것에 정신이 팔려 있다면 성경의 이 구절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다들 중요한 것만 추구하며 살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도외시 한다면 세상은 또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마르타처럼 일상에서 필요한 것을 해내는 그 누군가가 있기에 가정도, 교회도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마르타 같은 사람이 없다면 그들은 그 중요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타 역시 정녕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가정과 사회에서 꼭 필요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주부가 그러하듯이.

 

마르타가 등장하는 두 번째 사건은 라자로의 부활에서이다. 여기서 성경은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가 베타니에라는 마을에 살았던 세 남매임을 밝히고 있다. 오빠 라자로가 위독한 상태가 되었다. 다급한 상황을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 알렸으나 예수님께서는 소식을 듣고도 이틀이나 더 머무셨고, 라자로는 그새 세상을 떴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오셨더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르타도 마리아도 생각했다. 속으로 예수님을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시체에서 냄새가 나는 라자로를 부활시키셨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서 당신이 하느님이 보낸 분임을 믿게 한 사건이 되었다.

 

마르타가 등장한 마지막 사건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발라 드렸을 때에 그곳에 마르타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도 마르타는 잔치 준비를 하는 등 시중을 들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성경의 기록에 따라 마르타는 성화에서 보통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평범한 여인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은 대표적인 예이다. 마르타는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작은 절구에 무언가를 갈고 있는 듯하다. 혼자만 일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듯 얼굴은 뾰로통한 표정이다. 식탁 위에는 비늘이 반짝거리는 신선한 생선들, 계란, 마늘, 마른 고추, 기름병 같은 것이 놓여있다. 너무도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다. 부엌 저편에는 예수님이 의자에 앉아 있고, 마리아는 발치에 앉아 열심히 말씀을 듣고 있다.

 

바로크 시대에는 풍속화라는 이름으로 일상의 장면을 그리는 새로운 장르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 그림을 그린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필립페 4세의 궁정화가로 스페인 회화의 전성기를 연 장본인이다. 궁정 화가면서도 성경의 한 장면을 소박한 서민의 모습으로 과장 없이 그려낸 대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당대 최고의 걸작이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

[가톨릭신문, 201081]




성화에 담긴 영성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10,41-42)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Diego Rodrguez de Silva y Vela´quez)는 대개 디에고 벨라스케스로 불립니다. 벨라스케스는 스페인의 궁정화가로, 바로크 시대를 풍미한 유능한 초상화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포르투갈계 유태인 아버지와 하급귀족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하느님을 공경하는 법을 교육 받았습니다. 후에 세비야의 예술가이자 교사였던 프란시스코 파체코 아래에서 공부하였고, 그곳에서 세비야의 화풍과 비례와 원근법 등에 대해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상할 그림은 마르타와 마리아, 원제목은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찾으신 예수와 부엌 정경입니다.(루카 10,38-40 참조) 벨라스케스는 이 상황을 매우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화면 좌측의 젊은 여인이 마르타입니다. 그는 부엌에 있으며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매우 분주한 모습입니다. 탁자에는 아주 신선하게 보이는 물고기가 그릇에 담겨 있고, 손대면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달걀, 섬세하게 그려진 마늘과 고추 같은 재료들이 있어, 매우 귀한 분께 드릴 음식을 준비하고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러나 마르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무언지 모를 불만족과 불편함이 교차하는 모습입니다. 입술을 꼭 다문 채 원망에 찬 눈빛으로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벨라스케스는 마르타의 마음을 잘 읽고 있었습니다.

 

화면 우측에 창이 하나 있습니다. 그 너머 의자에 예수님께서 앉아 계시고, 그분 곁에는 마리아가 앉아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분의 말씀을 하나라도 빠짐없이 듣기 위해 집중하는 듯합니다. 마리아의 얼굴은 마르타와는 달리 밝고 경건하게 보입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에서 원근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마르타와 거리를 두어 예수님과 마리아를 뒤편에, 마르타를 가장 앞에 배치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주인공이 마르타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르타가 분주한 삶을 살아가는, 그래서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기보다 활동이나 격식에 더 마음을 빼앗긴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2)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예수님 곁에서 앉아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지영현 신부(가톨릭미술가협회 지도신부)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2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