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멤링「성녀 우르술라의 순교」(성녀 우르술라 유골함의 부분)
1489,37.5×25.5cm,패널에 유채,브뤼헤,한스 멤링 미술관
<황금전설>이 전하는 성녀 우르술라 이야기
성녀 우르술라는 4세기 영국 브레타냐의 왕 마우로의 딸로 태어났다. 당시 영국의 또 다른 왕국이었던 잉글랜드의 왕은 자신의 아들을 아르술라와 결혼시키고 싶어했는데 열심한 신자였던 우르술라의 부친은 딸을 비신자와 결혼시킨다는 것이 영 맘에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강대국 왕의 뜻을 거스르면 나라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기에 근심도 컸다. 그러자 공주인 우르술라는 부친에게 잉글랜드 왕자와의 결혼을 승낙하되 3년의 말미를 얻어 자신이 열 명의 처녀들과 함께 로마를 순례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할 것과 그 사이 신랑감이 교리를 공부하고 세례를 받는다면 결혼을 승락한다는 제안을 하도록 권했다.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우르술라는 열 명의 처녀들과 그들이 데리고 온 하녀들과 함께 로마로 성지순례를 떠났으며 돌아오는 길에 쾰른에서 훈족에 의해 이들 모두가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한스 멤링 「성녀 우르술라의 유골함」
1489,91.5×99×41.5㎝,오크나무,브뤼헤,한스 멤링 미술관
<성녀 우르술라의 유골함>
벨기에의 대표 도시 브뤼헤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 하나일 것이다. 뾰족한 지붕으로 정돈된 시가지는 정결하고, 운하를 따라 이어지는 아담한 거리는 작은 베네치아를 옮겨 놓은 듯하며, 해가 없는 잿빛 하늘은 북유럽 특유의 냉정함이 배어 있는 듯하다.
몇 년 전 한스 멤링(1430~1494)이라는 벨기에의 거장이 제작한 성녀 우르술라의 유골함을 보기 위해 이 도시를 방문했다. 유골함은 브뤼헤 중심가에 위치한 한스 멤링(1435/40~94)미술관에 영구 전시되어 있다. 이 미술관은 원래는 1150년 성 요셉 병원으로 세워져서, 19세기 초까지 병원으로 쓰이다가,1990년에 한스 멤링 미술관이 되었다. 관광객들이 이 미술관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르술라 유골함을 보기 위해서다.
멤링은 종교 단체의 주문을 받아 성 요한 병원을 위해 우르술라의 유골함을 제작했고, 1489년 10월 21일 성녀 우르술라의 축일에 성녀의 유골이 새로 제작된 멤링의 유골함으로 옮겨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가 방문 했던 날에는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이곳에서 환자와 의사 배역을 맡아 상황극을 하고 있었다. "산교육이란 저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유골함은 뾰족한 고딕 교회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교회의 벽에 해당하는 부분에 <황금전설>에서 소개한 우르술라의 순례여행과 순교 장면을 6개 장면으로 그려 놓았다. 한쪽 면에는 성녀 일행이 쾰른, 바젤,로마에 도착하는 장면을, 다른 쪽 면에는 "쾰른에서 순교당하는 처녀들"과 "훈족에게 순교당하는 성녀 우르술라"등을 그려 놓았다. 그림으로 보는 유골함인 것이다.
화가는 유골함에 그린 그림의 각 장면에 우르술라 일행이 방문한 도시의 특색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그려 놓았고, 이들을 수송한 배, 일행들이 입고 있는 의상 등도 실감나게 그려 놓았다. 마치 여행 중 유적지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보는 듯하다.
그중 우르술라가 쾰른에서 순교당하는 장면은 훈족의 왕자가 우르술라에게 화살을 쏘기 직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쾰른까지 진격한 훈족의 막사와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성녀의 모습과 그녀를 지켜보는 하얀 개, 궁사의 포즈 등이 흥미롭다. 화가는 멀리 배경에 이 도시의 상징인 쾰른 대성당을 그려 놓은 것을 잊지 않았다.
신앙과 예술이 만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성녀 우르술라와 화가 멤링이 만나자 병원이 미술관이 되었고,미술관 덕분에 성녀 우르술라는 공경을 많이 받는 성녀가 되었다.
- 고종희 마리아 (한양여대 교수, 미술사가) -
한스 멤링,「쾰른에 도착한 우르술라 일행」(성녀 우르술라 유골함의 부분)
1489,캔버스에 유채,37.5×25.5cm,브뤼게,한스 멤링 미술관.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한 순례
3년간 로마 순례 떠난 우르술라와 처녀들
쾰른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는 모습 그려
멀리 보이는 대성당 앞 주택 창문의 천사
성녀가 순례 후 쾰른에서 순교할 것 예고
영국의 브레타냐에 마우로라 불리는 그리스도교를 열심히 믿는 왕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아름다움,지혜,정직함에서 무엇하나 빠지는게 없는 우르술라라는 딸이 있었다. 잉글랜드는 브레타냐보다 더 강한 나라였는데 이 나라의 왕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로서 자신의 아들을 우르술라와 혼인시키려 했다. 그리하여 대사를 통해 온갖 보석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면서 자녀들끼리 혼사를 맺을 뜻을 밝혔다. 그는 이 혼인이 성사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위협도 가했다.
브레타냐의 왕은 딸을 비신지의 아들과 혼인시킨다는 것이 영 맘에 내키지 않았으나 그리할 경우 닥쳐 올 위협도 걱정되었다. 우르술라는 부친에게 결혼을 승낙하되 그녀가 3년 동안의 말미를 얻어 열 명의 처녀들과 로마에 가서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다는 조건을 내걸으라 하였다. 하지만 황금전설에서는 이들 열 명의 처녀들이 각각 천 명의 처녀들을 데리고 가서 모두 11,000명이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사이 남편감은 교리 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다. 우르술라는 약혼자가 세례를 받지 않으면 결혼이 성사되지 않아도 되니 손해 볼 일이 없었고, 만일 세례를 받는다면 동행한 처녀들과 함께 자신을 하느님께 바칠 결심이 서 있었다. 왕자는 이 조건을 기꺼이 수락했으며, 스스로 세례를 받았고, 부친에게 우르술라의 청을 들어줄 것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브레타냐에 로마로 순례여행을 떠날 수많은 처녀들이 모여들었다. 배를 탄 이들을 바람은 쾰른으로 인도했다. 쾰른에서 밤에 주님의 천사가 우르술라에게 나타나서는 로마에 다녀 온 후 다시 쾰른에 들러 순교하게 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들 일행은 바젤을 거쳐 목적지인 로마로 향했다. 로마에 도착하자 브레타냐 출신의 교황 치리아쿠스가 마중을 나왔으며 교황은 세례 받지 않은 처녀들에게 모두 세례를 주고 자신도 이후 이들 처녀들과 함께 쾰른에 간 후 거기서 순교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전설이기 때문에 이들 이야기가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길 뿐이다.
이 그림은 우르술라의 일행이 배로 쾰른에 도착한 후 배에서 내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도시의 성문이 보이며 그너머로 유명한 쾰른 대성당이 보인다. 성당 바로 앞의 한 주택 창문에 천사가 우르술라에게 나타나 쾰른에 돌아와 순교할 것을 예고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가톨릭신문,발행일:2011-01-30[제2732,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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