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불에 타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25]

모든 2 2019. 11. 3. 22:00






 성 라우렌시오 알 베리노 성당 내부

8세기와 13세기.로마



  몇 해 전 로마여행 중에 성 라우렌시오 성당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몸을 실은 적이 있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성당이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성당의 규모와 아름다움에 놀랐었다.

  성 라우렌시오 성당은 박해시절 그리스도교인에게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30년 성 라우렌시오의 무덤이 있었던 알베라노 카타콤베 위에 지어 봉헌했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8세기에 재건축한 성당에 13세기에 또 하나의 성당을 증축함으로써 두 개의 성당을 길게 붙여 놓은 모습이다. 오늘날에는 신자가 줄어 성당이 박물관이나 레스토랑 등 문화공간으로 변신해 가는 추세인데 중세시대에는 로마의 변두리에 위치한 성당을 증축까지 하여 확장했다니 라우렌시오 성인에 대한 공경과 당시의 신앙 열기를 짐작케 한다.

  라우렌시오 성인에 관한 이야기는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분인 성 암부로시오가 389년에 쓴『성직자 직무론』에서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당시 교황 식스투스 2세는 카타콤베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발각되어 사형에 처해졌는데 사형장으로 가던 길에 부제였던 라우렌시오에게 "3일 후 너도 나를 따르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당시 교회의 박해자였던 황제가 교황으로부터 받은 보물들을 내놓으라고 하자 라우렌시오는 3일의 말미를 달라고 한 후 그 사이 교황 식스투스 2세로부터 받은 교회의  보물들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3일 후 라우렌시오는 황제 앞에 가난한 이들을 데리고 나타나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이후 성인은 불에 타는 순교를 당했다고 하는데 성 암브로시오는 순교의 순간 라우렌시오가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다른 쪽도 마저 구워서 먹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성 라우렌시오의 상징이 대형 석쇠가 된 이유다.




티치아노「성 라우렌시오의 순교」1554~67,440×320cm,에스코리알,성 라우렌시오 수도원


  티치아노의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

  이 그림은 활활 타오르는 불 위에 놓인 철판에서 한 남성이 죽어가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바로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다. 성인을 불로 밀어 넣고 있는 무자비한 사형집형인,불쏘시개로 불길을 살리는 병사,백마 탄 현장 책임자와 병사들,불 앞에서 놀라는 아이와 개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화형장 주변은 혼란의 도가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고  횃불도 보이니 때는 한밤중이다.

  그림 속 죽어가는 라우렌시오는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환희에 찬 모습으로 보인다. 위를 향한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 보면 두 명의 천사가 보이는데 이는 라우렌시오가 굳건한 믿음으로 불에 타 죽는 순간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는 암브로시오의 기술(記述)을 보여주고자 등장한 천사들로 보인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베네치아의 거장 티치아노로 동시대 미켈란젤로와 맞장을 뜰 수 있는 곳은 스페인의 에스코리알 궁전의 성 라우렌시오 수도원 교회다. 이 궁을 지은 필립페 2세가 1554년 티치아노에게 그림을 주문하였고 작가는 베네치아에서 제작하여 15667년 스페인의 에스코리알 궁 내부에 있는 성 라우렌시오 수도원 교회의 제단벽에 설치했다. 높이가 무려 4미터가 넘는 대작이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화가도 주문자도 세상을 떠났으나 그림은 원래 자리를 지키며 감동을 주고 있으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격언에 딱 어울리는 명작이다.



-고종희 마리아 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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