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토 「요아킴의 꿈」1302~05,프레스코 벽화,파도바,스크로벤니 경당
안나와 요아킴은 성모 마리아의 부모다. 이들의 이야기는 성경에서는 언급하지 않으나 <황금전설>이 전하고 있다.
나자렛 출신 요아킴은 베들레헴 출신의 안나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다. 부부는 자식을 주신다면 하느님께 봉사하면서 살겠노라고 기도했다.어느 축제날 요아킴이 예루살렘 성전에 제물을 바치려 하는데 사제가 "자식이 없는 자는 대를 잇지 못한 자로서 하느님의 벌을 받았으니 제물을 바칠 수 없다."라며 쫓아버렸다. 요아킴은 집에 돌아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자신의 목동들이 있는 들판으로 갔다. 며칠 후 빛이 가득한 천사가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나는 주님이 보낸 천사다. 네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으셨고, 네가 바친 제물도 옥좌까지 닿았다.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아이가 욕망의 결실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임을 보여주기 위함일 때다. 네 아내 안나는 마리아라 불리게 될 딸을 낳아 하느님께 바치게 될 것이다. 네 아내의 배에는 벌써 성령이 임해 있을 것이며,아기는 세상이 아닌 하느님의 성전에서 키워지게 될 것이다. 마리아가 불임 여성의 몸에서 잉태했듯이 태어날 인류의 구원자가 될 예수님이라 불리게 될 저 높은 분은 기적에 의해 태어나게 될 것이다. 너는 어서 예루살렘의 황금문으로 가서 아내를 만나거라. 안나는 네가 없는 동안 많은 걱정을 했으나 너를 만나 기뻐하리라."
한편 천사는 안나에게도 나타나서 요아킴에게 했던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한 후 황금문으로 가서 남편을 만나라고 했다. 그리하여 안나와 요아킴 부부는 황금문에서 만나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아이에 대해 기뻐했고,주님을 찬미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안나는 마리아를 잉태하였다.
<황금전설>이 전한 이 이야기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조토라는 화가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대성당이 있는 파도바의 스크로벤니 경당 벽에 이들 장면을 포함한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이므로 두곳 다 둘러볼 수 있다.
위 그림은 흰 머리에 흰 수염의 요아킴이 들판에서 몸을 바짝 웅크린 채 잠이 들었을 때 천사가 나타나 아기를 갖게 될 것임을 예언하는 순간이다. 요아킴 앞에 있는 두 목동의 자세가 생동감이 넘친다. 이들이 입고 있는 모자 달린 옷은 이후 프란치스코 수도회인 작은형제회의 수도복이 되었다. 조토는 그림 속에 이들 목동을 그림으로써 그림을 더욱 실감나게 만들었다. 각기 다른 포즈로 그려진 양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화가가 자연과 사물을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중세 천년의 신 중심의 상징주의에서 인간 중심의 사실주의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떼고 있는 순간이다.
조토「천사의 예언을 받는 안나」 1302~05,프레스코 벽화,파도바,스크로벤니 경당
가브리엘 천사는 안나도 찾아갔다. 위 그림은 천사가 안나에게 나타나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장면이다. 방에는 침대와 장궤,커튼 등 당시의 일상을 재현하는 소품들이 보인다. 침실과 거실을 겸하여 썼기 때문인지 침대에 커튼도 쳐 놓았다. 화가는 중세 천년 동안 그림에서 사라졌던 인간의 일상을 이 그림에 담았다. 이 그림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안나도,천사도 아닌 그림 왼편의 실 잣는 하녀다. 그녀는 이 그림에서 없어도 아무 지장 없는 엑스트라지만 화가는 정성을 다하여 그려 놓았다. 르네상스 사실주의의 혁명은 이곳 파도바의 작은 경당에서 조토에 의해 이렇게 시작되었다.
- 고종희 마리아 / 한양여대 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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