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신화,내마음의 별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아르테미스, 직관의 활

모든 2 2019. 3. 10. 05:57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아르테미스, 직관의 활



루벤스, 사냥에서 돌아온 아르테미스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주지 않으면 나무는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다면서요?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들이 달빛에 빛나는 숲, 아르테미스의 숲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많은 숲은 물 흐르는 소리도 거칠고 시원합니다. 


  공주 태화산에서 며칠 묵었는데, 내내 비가 왔습니다. 떠나기 전날에야 비가 그치니 모처럼 태화산에 달이 떴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바람이 뺨을 스치고. 며칠간 내린 비로 계곡의 물소리 또한 거친데, 갑자기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달빛 아래서 춤추고 싶어졌습니다. 달빛이 숲에 들고 계곡에 떨어지고, 초목을 스치는 바람소리, 물소리에 귀가 열리면 숲이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연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달빛을 받으며 가만히 호흡에 집중하니 호흡도 행복해합니다. 그것이 곧 자연스러운 춤의 시작이겠지요. 바로 여기가 고향입니다. 태어난 곳이 도시든 어디든 진정한 우리의 고향은 숲! 우리는 달빛을 안고 춤을 추는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의 딸입니다. 그러고보니 왜 숲이 집이고 정원이어야 하는지 알겠습니다. 


  아르테미스는 산이 험하고 들에 나무가 많을수록 힘이 나겠지요? 활을 들고 다니는 그녀는 수렵과 채취 시대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생명력 있는 여신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정원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은 인간적이라기보다 자연적입니다. 


  사실 사랑은, 특히 남녀간의 사랑은 종종 인간적이라는 관형사를 배반합니다. 쓰나미 같은 정열은 인간적이라기보다는 자연적이니까요. 자연이 만든 그 정열을 아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은 환희를 완벽하게 알고서 파멸하는 것을 뜻한다”는 산도르 마라이 문장에 수긍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르테미스의 목욕 장면을 훔쳐본 죄로 죽음에 이른 악타이온에게 불쌍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숲속 계곡에서 처녀의 신 아르테미스가 달빛을 받으며 요정들과 함께 목욕을 합니다. 사냥꾼 악타이온은 우연히 달빛의 아르테미스를 보고 홀린 듯 끌립니다. 숲의 여신의 알몸을 봤다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한 열정의 세례를 받았다는 거지요? 죽어도 좋은 그 열정을.


  누구나 열정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악타이온은 아르테미스를 외면한 채 가늘고 길게 사는 삶보다 아르테미스를 본 죄로 당장에 죽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전부를 주고 전부를 요구하는 열정에 압도되어 산산조각이 나는 인생과 그런 감정의 세례를 받은 적 없어 지지부진 안락하게 자기를 유지하며 사는 인생 중 어느 인생의 길을 걷고 싶으십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딸로서 아르테미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녀의 자신감은 아버지의 사랑인 또 다른 딸, 아테나의 자신감과는 다릅니다. 아테나의 자신감이 가부장적인 도시에서 왔다면 아르테미스의 자신감은 자연에서 왔습니다. 숲의 여신답게 아르테미스는 어머니 레토와 사이가 좋습니다. 그 점에서 그녀는 어머니를 인정하지 않는 가부장제 문명의 여신 아테나와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생 아폴론이 태어날 때 기꺼이 어머니의 해산을 도왔고, 어머니를 강간하려는 타이티우스를 화살로 쏘아 죽이기도 했습니다. 화살을 든 그녀의 단호함이 니오베 눈물의 원천인 것은 유명합니다.


  3박4일이든, 6박7일이든 일단 숲 생활을 해보시지요. 숲속에서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나’ 자신에 집중하다 보면 아르테미스의 화살이 나를 겨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녀의 화살은 막무가내로 살생을 일삼는 화살이 아니라 무엇을 맞히고 무엇을 보호해야 하는지를 아는 직관의 활입니다.


  그 아르테미스가 처녀라면서요? 아르테미스는 정복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처녀여서 처녀인 것이 아니라 정복할 수 없어 처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현대인은 예전에 없던 병을 앓고 있지요? 만성 두통, 만성 소화불량, 강박증, 우울증, 분노조절 장애, 히스테리…. 현대인의 병은 우리가 정복했다 믿은 숲을, 정복되어서는 안되는 아르테미스의 숲을 회복하라는 신호입니다.


우리의 본능 속엔 숲에서 낮에는 과일을 따고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슬을 맞고 잠들던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내 속의 아르테미스가 깨어나면 복잡한 도시 생활에 두통을 느끼게 되고, 자연과 함께 살며 삶을 단순하게 꾸리라고 독려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단순하고 단조롭게 살아야 중요한 것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