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신화,내마음의 별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아프로디테, 욕망의 자유

모든 2 2019. 3. 10. 06:14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아프로디테, 욕망의 자유


 



물에서 태어나는 아프로디테’, 테오도르 샤세리오, 1839년 파리 루브르박물관

 

img  삶이 폐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 안의 아프로디테를 억압하지 말아야 하며,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내 안의 아프로디테가 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프로디테 없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없으나 아프로디테에 사로잡혀서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없으니까요. 

  아프로디테, 바다에서 태어난 그녀는 원초적 생명력의 상징이겠습니다. 올림포스 여신 중에 아마도 가장 많은 아이를 두었고, 가장 많은 연애를 하고도 여전히 배가 고픈 존재일 것입니다. 그녀가 시선을 준 곳 어디서나 파도 같은 사건이 생기지만, 그녀는 파도를 삼키는 바다처럼 언제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뻔뻔스럽게 시치미를 뗍니다. 


  그녀는 자기 욕망에 충실합니다. 그녀의 욕망은 누구에게도 검토당하거나 점검받지 않습니다. 남편을 두고도 전쟁의 신 아레스와 사랑을 나누고, 그 사이에 아이를 셋이나 둡니다. 헤르메스와의 사이에서도 아이를 두고. 인간인 아도니스와의 비극적 사랑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남편 헤파이스토스 관점에서 그녀의 욕망은 분명히 올림포스 신들을 소환할 죄인데 정작 그녀에게 죄의식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녀의 욕망엔 죄의식이 없습니다. 그녀는 그저 욕망으로 빛납니다. 욕망의 아이콘인 아프로디테는 남의 욕망에 대해서도 정확합니다. 그것은 그녀가 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욕망을 파리스보다 더 정확히 간파했습니다. 아시지요? 불화의 여신이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보낸 사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그 매혹의 사과를 손에 넣기 위해 여신들이 바쁩니다. 파리스에게 헤라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무릎 꿇게 만드는 ‘권력’을 주겠다고 하고, 아테나는 세상의 모든 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의 ‘지혜’를 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대단한 유혹을 한순간에 내던져 버리게 할 수 있는 결정이 아프로디테에게서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


  아프로디테는 파리스를 꿰뚫어 본 거지요? 그것으로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됐습니다. 그녀를 느끼니, 아름답다는 것은 단지 눈, 코, 입이 예쁜 게 아니겠습니다. 그것은 나와 관련된 ‘그’의 욕망을 정확히 간파해내고, 나의 욕망과 그의 욕망이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 아는 것까지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 덕택에 파리스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되고, 그것으로 파리스의 나라 트로이는 바닥 모를 심연으로 떨어져 사라집니다. 


  아테나의 이성을 삼키고, 헤라의 권력을 삼키는 그 엄청난 힘의 소유자, 아프로디테 곁에는 언제나 불화가 있고 전쟁이 있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자비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욕망이고, 소유고, 편애입니다. 그녀의 사랑은 평화롭지 않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전쟁이고 폭력이고 무책임입니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바람을 피우는 그녀 때문에 초조한 얼굴로 화를 내는 남편 헤파이스토스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도 그녀의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녀를 멈출 수 있는 건 그녀 자신뿐입니다.


  언제나 파란을 만드는 그녀, 그러나 그 파란 속엔 성장의 씨앗이 숨어 있습니다. 프시케라는 인간 여인이 있습니다. 아프로디테보다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은 여인, 그래서 아프로디테의 저주가 걸려 있는 여인! 아프로디테의 저주 때문에 프시케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시케 삶의 균열은 모두 아프로디테가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십니까? 그 균열이 결과적으로는 프시케의 성장점이 되고 있음을. 에로스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도 아프로디테의 심술 때문이고, 떠나간 에로스를 그리워하며 헤맬 때 에로스를 찾을 수 있는 과제를 받게 되는 것도 역시 아프로디테의 심술 섞인 자비 때문입니다.


  사랑을 회복하고 싶은 프시케에게 아프로디테가 내준 과제의 시작은 알곡 고르기입니다. 쌀, 보리, 콩, 팥, 수수 등 온갖 잡곡을 섞어 놓고 쌀은 쌀대로, 보리는 보리대로, 콩은 콩대로 고르는 일, 어렵지 않지만 지루한 반복이지요. 단조롭고 사소한 일을 반복, 또 반복하면서 프시케는 자기 안에 눈물을 다 쏟아냈겠지요? 그러고 나서 순발력이라 믿었던 급한 성격이 차분해졌을 것입니다. 고요해져야 차분해지고, 차분해져야 직관이 살아나고, 직관에 힘이 붙어야 아프로디테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정을 가진 무책임한 자유주의자, 그 아프로디테가 내 마음속에서 눈을 떠야 문명이 만든 논리로 세상을 공격하면서 내 자신을 방어하는 아테나의 지혜나 헤라의 권력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