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신화,내마음의 별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헤르메스, 자유, 오, 자유!

모든 2 2019. 3. 10. 06:06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헤르메스, 자유, 오, 자유!



루벤스, ‘아르고스를 잠재우는 헤르메스’



  헤르메스, 태어난 그날 도둑질을 한 신이지요? 이복형 아폴론의 젖소를 훔치고도 태연자약, 어머니의 동굴 속으로 돌아가 놀던 바로 그 신입니다. 

  태어나 어머니 마이아의 동굴 밖으로 나온 헤르메스가 처음 본 것은 거북이였습니다. 가만가만 거북이를 관찰한 헤르메스가 처음으로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거북이 등짝으로 수금의 울림통을 만들고 갈대로 현을 만들어 수금을 연주한 일입니다. 그다음으로 한 일이 바로 아폴론의 소를 훔쳐 구워 먹고는 흔적을 지우고 동굴로 돌아와 시치미를 떼고 논 것입니다.


  헤르메스의 첫날이 재밌습니다. 동굴 속에서 태어나고,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고, 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화가 난 아폴론에게 거짓말을 하고! 헤르메스의 첫날은 지난 70만년 동안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진화해온 인류의 발자취를 요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불을 발견한 호모 에렉투스는 고기를 구워 먹은 덕택에 머리가 좋아졌겠지요? 동굴 속에 살면서 손으로 악기를 만들어 신에게 음악을 바치며 스스로도 위로를 얻은 예술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까지, 헤르메스는 인류가 걸어온 길을 첫날에 요약하고 있는 내면의 우리입니다.


  헤르메스는 어린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자, 차라투스트라의 ‘어린이’ 같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이는 순진무구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이며, 놀이다. 어린이는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며, 신성한 긍정이다.”


  딱, 헤르메스입니다. 상처를 모르는 아이처럼 경쾌한 그 신의 이미지는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걸까요? 어쨌든 그는 눈치 보지 않는, 내면의 아이가 우리 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돌탑입니다. 실제로 헤르메스라는 이름은 돌무지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왔음에 감사하며 돌 하나 올려놓는 나그네의 기도가 모인 곳, 그곳은 길을 가는 나그네들이 제대로 길을 가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이정표이기도 하고, 그 길에 들어설 미래의 나그네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소를 잃은 아폴론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지요? 그는 헤르메스를 찾아가 조목조목 따지지만 이성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능청스러운 헤르메스는 만만치 않습니다. 결국 제우스가 중재에 나섭니다. 헤르메스는 아폴론에게 아폴론이 탐을 내는 수금을 건네주고, 아폴론의 소떼에서부터 영혼을 인도하는 지팡이까지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습니다. 참 장사를 잘하지요? 그래서 그는 장사의 신이기도 합니다.


  생을 도둑질로 시작한 교활한 신 헤르메스는 이 세상의 질서를 옹호하거나 질서에 위배될까 전전긍긍하는 신이 아닙니다. 그는 놀이하는 어린이가 다양한 놀이와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때그때 세계를 창조해내는 자유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숙제를 놀이처럼 즐기는, 도무지 심각할 줄 모르는 신, 지하세계에서 천상세계까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한계를 모르는 신, 그래서 스스로의 한계에 막혀 주저앉은 이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 신입니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요? 세상이 감옥 같고,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나를 손가락질하는 세상과 맞서 싸우느라 만신창이가 된 때, 그 누구와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막막하기만 한 때, 그때 내 안의 헤르메스를 불러내야 합니다. 나를 정죄하지 않고 온전히 내 편이 되어 괜찮다며 피리를 불어 주고 수금을 연주해 주고 날개를 달아 주는 신을. 


  헤르메스는 우리 사는 세상의 법이 전부가 아님을, 아니, 우리를 규정하고 판단하고 우리에게 그렇게 살도록 요구하는 ‘선’이 단지 하나의 선입견이고 색안경임을, 아이들이 장난치듯 알려주는 우리 안의 어린이입니다. 


  헤르메스는 이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사랑합니다. 그의 이성은 감각입니다. 그를 자유롭다 할 때 그 자유는 그 어떤 규범에도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규범을 만들어내는 자신감이며 상황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능동성입니다. 태어나자마자 거북이를 관찰하고, 아폴론의 소를 관찰한 그가 아닙니까? 아폴론의 성향을 간파하고, 제우스의 성향을 간파해서 스스로 누울 자리를 만들었던 꾀돌이가 바로 헤르메스입니다. 


법의 의지가 아니라 자기의 의지를 세우고, 이성의 칼로 재단하기보다는 감각의 호기심과 노는 일을 좋아하는 헤르메스가 영혼의 안내자라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가 인도하는 길에서 챙기게 되는 것은 착하게 살았는가가 아니겠지요? 아폴론의 ‘이성’이나 ‘규범’도 아니겠습니다. 제우스나 헤라의 ‘권력’도 아니겠지요? 그와 함께 챙기게 되는 것은 자유롭게 살았는가, 자기의지를 내고 살았는가일 것입니다. 자유롭게, 자기 의지를 내며 살고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