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신화,내마음의 별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제우스, 연애의 신

모든 2 2019. 3. 10. 05:51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제우스, 연애의 신



클림트, 다나에, 1907~1908, 캔버스에 유채, 77×83㎝, 개인 소장


  직업이, 직위가 곧 남성적인 매력이라고 믿는 남자들은 매력이 없습니다. 그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그가 상대하는 여자들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는 제우스가 아닙니다.


  제우스, 하늘의 신입니다. 당연히 힘이 세고, 지위가 높은 남자들 속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신입니다. 그러나 단지 지위가 높다고 해서 제우스인 것은 아닙니다. 제우스의 매력은 변신에 있습니다.


  연애를 할 때 그는 거침없이 자기를 던집니다. 온전히 자기를 던지는 그는 ‘썸’ 타는 법이 없습니다. 신분도, 윤리도, 생각도, 약속도, 내일도 마침내 ‘자기’까지도 끼어들 여지없이 그는 맹목적 의지에 자신을 맡기며 거침없이 최적의 상태로 변신합니다.


  강으로 흐르고 싶은 구름이 비로 변신하듯 자연스럽게, 그는 하늘의 신의 보좌에서 내려와, 뻐꾸기가 되고 황소가 되고 백조가 되고 황금비가 됩니다.


  아버지가 연애하지 못하도록 탑에 가둔 딸이 있지요? 다나에입니다. 그녀에 대한 열망으로 제우스는 황금비가 되어 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청동탑에 갇혀 있는 여인에게까지 비가 되어 온몸으로 스밀 줄 아는 그를, 온전하게, 한맘으로 거침없이 자연스럽게 연애를 할 줄 아는 그를 누가 피해갈 수 있겠습니까? 


  <레드북>에서 융이 말했습니다. “의지는 맹목을 낳고 맹목은 그 길로 이끈다.” 딱, 제우스에게 어울리는 명제입니다. 왜냐고, 왜 그렇게 책임질 수도 없는 연애에 빠지느냐고 물어본들 뭐하겠습니까? 맹목적인 욕망이 낸 길인 것을. 그 넘치는 생명력이 권력의지로 변신한 자, 그가 제우스입니다.


  제우스에게는 사랑에의 의지와 권력에의 의지의 모양이 같습니다. 그러니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하느냐고 물을 수 없겠습니다. 지배하려는 욕망이, 그 맹목적인 욕망이, 그를 최고의 자리로 올려 놓았습니다. 


  제우스의 신조는 독수리지요? 제우스는 독수리입니다. 멀리서 목표물을 정확히 포착한 후에 잽싸게 달려들어 목표물을 거두는 하늘의 새, 그가 바로 독수리입니다. 의지가 생기면 한순간도 목표를 잊지 않고 목표를 정확히 조준하는 능력, 으레 마주하게 되어 있는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고 온몸을 던지는 원시적 투지, 제우스의 힘입니다.

 

  힘이 곧 정의인 그는 자기 영역을 침해하는 자를 두고 보지 않습니다. 벼락을 내려 보복하지요. 데메테르의 연인 이아시온은 데메테르와 동침했다는 사실 때문에 제우스의 벼락을 맞아 죽습니다. 힘을 가진 자, 자기와 닮은 자를 두고 보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으세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냉혹하고 자기 영역을 침해하는 자에게 가차 없는 제우스가 도대체 왜 헤라와의 관계는 청산하지 못하고 그리 집착하는 걸까요? 그가 연애하는 여인마다 해코지를 넘어 목숨을 빼앗기도 하는 헤라를 그는 왜 두고 보는 걸까요?

여러 명의 여인과 바람을 피우면서도 헤라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건 제우스의 불안 심리일 것입니다.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는다고 말하며 마치 특혜를 인정하는 듯하는 남자들의 심리 속에는 안전과 안정에 대한 욕구가 있는 거지요? 거기서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데 헤어질 수도 없게 만드는 공생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새로운 사랑을 향해 불나비처럼 달려들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이 병적인 기반이 제공해주는 ‘안정’ 때문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함께 살게 만드는 힘은 사랑이나 신뢰뿐이 아닌가 봅니다. 미련과 집착일 수도 있고, 두려움일 수도 있고, 관성일 수도 있고, 분노나 복수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제우스는 아내의 눈을 피해 몰래 바람을 피우면서도 아내를 바꿀 생각도, 또 아내 없는 인생을 살 생각도 없습니다. 헤라는 남편이 늘 딴 데를 쳐다본다는 사실 때문에 비참했겠지만 그렇다고 남편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남편의 여인들을 괴롭힙니다. 그런 점에서 제우스는 가부장제의 신이고, 가부장제하에서 제우스와 헤라는 찰떡궁합입니다.


  제우스는 가부장제하에서 하늘의 신입니다. 가부장제가 무너진다는 것은 제우스의 하늘이 무너진다는 거고, 제우스가 쫓겨나간다는 것입니다. 가부장제의 신 제우스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계속 제우스가 설치는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가위눌릴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제우스라면 평화의 시대를 살기 위해서는 당신 혼자가 아니라 백 개의 팔의 도움으로 티탄족을 물리쳤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평화로운 세상이 요구하는 건 힘대로 맘대로 하는 유능한 한 명의 독재자가 아니라 힘과 마음을 조율할 줄 아는 백 명의 난쟁이들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