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데메테르, 엄마의 집착
어느 날 갑자기 기습적으로 닥쳐온 불행의 그림자를 뒤집어써본 일이 있나요?
이혼을 했든지, 파산을 했든지, 감옥에 들어가 앉게 됐든지, 원치 않는 이별을 했든지, 소중한 것을 잃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광장에 서 있는 기분, 아파서 너무 아파서 어찌해볼 수 없는 상실의 하데스에 우울하게 갇혀 있다 보면 하데스의 로마 표기가 왜 플루톤(Pluton)인지 알게 됩니다.
플루톤, 풍요를 가져다주는 자란 뜻입니다. 하데스의 로마식 표기 플루톤은 단순히 죽음과 상실에 대한 혐오를 감추기 위한 이름이 아닐 겁니다. 모두에게 버려진 채 희망도, 기대도, 사랑도 마침내 좌절까지도 내려놓게 되면 의외로 그 세계가 새로운 시작을 잉태한 어둠이었다고 고백하는 시간이 옵니다.
왜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데스를 찾고, 프시케의 마지막 과제가 하데스로 내려가 페르세포네의 상자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는지 어렴풋이 잡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세계는 모든 모험의 마지막 통과의례, 모험의 완성입니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지옥의 하데스를 겪어내야 하지만 만만치 않은 그곳에 내 딸이 갇혀 있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찾게 되지요, 그리고 찾아야지요.
더구나 엄마의 이데아 데메테르라면! 지옥의 왕 하데스의 납치로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의 아내가 됐을 때, 어머니 데메테르는 딸을 찾아 미친 듯이 온 세상을 떠돕니다.
9일 밤 9일 낮을 헤맸다고 합니다. 9라는 것은 10진법에서 제일 큰 수입니다. 9일 동안만 찾았다는 뜻이 아니라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며 세상 끝까지 목숨을 걸고 딸을 찾아다녔다는 뜻이겠습니다.
자식을 찾지 못해 속이 탄 데메테르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녀는 엘레우시스의 왕자 데모폰의 유모가 됩니다. 그녀는 데모폰에게 신의 양식을 먹이며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핍니다. 그녀에게 데모폰은 남의 자식이 아니라 자기 아이였던 거지요? 자기 아이를 사랑했던 힘으로 다른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어머니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어쨌든 딸을 찾지 못한 데메테르의 안타까움과 분노는 만만치 않아 대지에서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습니다.
곡식의 신이 뜨거운 분노로 자기를 태우며 세상을 태우고 있으니 쩍쩍 갈라진 땅엔 가뭄이 들고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는 거지요. 하늘을 찌르는 데메테르의 분노는 드디어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찾은 일이 없었던 남편 제우스에게로 향합니다. 우리 딸을 찾아달라고.
데메테르와 코레, BC 620년~BC 480년경, 고대 그리스·로마 유적, 구운 진흙, 루브르박물관 소장
그녀의 절규가 제우스를 움직인 건 땅이 온통 황무지가 된 후였습니다. 목마르고 굶주리고 황폐해진 인간들이 하늘에 경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은 영원하다지만 인간의 경배를 받지 못하는 신들은 존재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음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을 싫어했던 제우스였지만 마침내 금기를 깨고 페르세포네 구출작전을 폅니다. 페르세포네가 지옥의 양식을 먹지 않았다면 어머니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겁니다.
헤라가 결혼의 원형이라면 데메테르는 어머니의 원형입니다. 자식이 곁에 있어야 따뜻해지고 화기가 도는 여자, 남편의 일에 덤덤하고 자신의 일에는 울지 않아도 자식의 일이라면 세상 끝까지 가는 어머니. 자식 때문에 겪는 고통이라면 기꺼이 고통까지 감내해내는 어머니의 이데아, 그녀가 데메테르입니다.
매 순간 마음을 다해 사랑을 흘려주고, 자식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자식 때문에 꿈을 꾸고, 자식 때문에 넘어지고, 자식 때문에 일어나는 어머니, 죽어도 탯줄을 끊지 못하는 그런 어머니가 있는 한 ‘나’의 삶은 온전히 ‘나’만의 것일 수 없겠습니다.
데메테르 같은 엄마가 있는 한 아이들은 어머니가 곧 사랑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또 그런 사랑은 쉽게 집착으로 변해 자식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기 쉽지요? 내 인생은 나의 것인데 왜 엄마 마음대로 하려 하느냐고 반항하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데메테르 입장에서는 미칠 일입니다.
하데스에 갇혀 있는 페르세포네를 찾아 목숨을 걸었는데, 하데스의 석류를 먹은 페르세포네가 하데스를 감옥이 아니라 자기 집으로 여겨 데메테르를 외롭게 할 때 딸을 찾아 방랑한 시간이, 딸을 향한 사랑이 엄마의 집착이 된 거지요? 그녀의 삶의 고통은 바로 그녀가 집착하고 있는 거기에서 왔습니다.
변화는 내가 매달리는 것, 없으면 안된다고 집착하고 있었던 것, 집착인 줄로도 몰랐던 그것을 제물로 일어납니다. 페르세포네를 찾은 데메테르는 이제 페르세포네가 없는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엄마를 떠나 하데스를 경험하는 페르세포네의 시간, 그 겨울을 기다려줘야 합니다. 데메테르는 자식이 없는 시간, 사랑을 바칠 대상을 잃어버린 겨울의 시간을 통해 기다림을 배울 것입니다.
그러나 또 아시지요? 자기 세계를 찾아 멀어진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어머니 때문에 결국은 봄이 온다는 것을. 기다림 끝에서 보게 되는 봄이야말로 ‘나’의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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