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상처
욕망은 인간적일까요? 비인간적일까요? 사실 ‘인간적’이라는 형용사는 욕망을 품어내기엔 그 품이 너무 작습니다. 차라리 욕망이 인간을 낳았다고 해야 할 겁니다. 인간을 낳은 욕망은 ‘인간적’이라는 형용사를 삼키며 스스로 인간적인 무늬를 만들어냅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엄청난 욕망의 소유자입니다. 어쩌면 그는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욕망에 휘둘리고 있는 존재라 해도 맞을 겁니다. 그의 아내가 된 암피트리테는 원래 포세이돈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미친 듯이 그녀를 쫓아다니고 찾아다녔고, 마침내 찾아내 결혼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 행복이 오는 게 아니라면서요? 이미 얻은 걸 원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포세이돈 역시 행복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욕망 때문에 결혼했으나 결혼도 그의 욕망을 가둘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는 제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욕망을 찾아 이리저리 바람을 피우고 다닙니다.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암피트리테는 늘 성이 나 있습니다. 지중해 바닷가가 늘 성이 나 있는 이유는 포세이돈과의 결혼으로 지중해의 여신이 된 암피트리테의 화 때문이라고 합니다. 포세이돈은 힘세고 감성적인 남자의 원형입니다. 그의 삼지창은 그가 얼마나 힘이 센 남자인지를 증명합니다. 물론 그는 단순히 힘만 센 남자가 아닙니다. 바다 밑에서 올라와 하늘을 나는 화려한 그의 말, 백마를 보십시오. 그 흰 말은 그가 얼마나 아름답고 감성적인 남자인지, 그의 힘의 원천이 감성이고 무의식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브론치노가 그린(1540-1550년경) ‘포세이돈’, 캔버스에 유채, 53X115, 브레라 미술관.
그나저나 포세이돈은 원래부터 감성적이었을까요? 힘을 좋아하고 힘을 지향하는 힘센 남자가 제우스를 넘어서지 못해 하늘의 지배권을 만져보지 못했으니 그 거침없는 생명력이 누구를 치고 때리고 파괴하겠습니까? 자기 상처를 어쩌지 못해 그 때문에 감성적으로 된 힘센 남자, 주변에 있지요? 가진 것 많고 감성적이기 때문에 이 사람 혹은 저 사람과 늘 연애를 하지만 자기 상처 때문에 한 사람과 지속적인 연애를 하지 못하는 바람둥이, 포세이돈의 원형에 시달리는 남자들입니다.
포세이돈이 아테네를 놓고 제우스의 딸 아테나와 싸운 것은 유명합니다. 아테네를 얻기 위해 그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샘물을 선물합니다. 그러나 아테네가 올리브 나무를 선물한 아테나를 선택하자 화가 난 그는 아테네에 홍수를 퍼붓습니다. 뒤끝 작렬하지요?
아마도 아테나와의 결투는 포세이돈에게는 ‘운명’이었을 것입니다. 대지를 떠나야 하는 운명! 대지에서의 지배권을 조카 세대인 아테나에게 넘겨야 하는 운명 말입니다. 에너지 많은 권력자가 대지에서 지배권을 상실하고 바다로 쫓겨가야 하는 엄청난 운명을 쉬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성질을 못 이겨 성질 더러워진 파괴적인 그 신은 건드리면 안 되는 폭탄이 되었겠지요. 뒤끝 작렬한 포세이돈이 조용히 ‘운명’을 받아들이고 흔적 없이 떠났을 리 없으니까요. 그의 이름 속에 ‘대지를 흔드는 자’란 뜻이 들어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기만 하다면 왜 바다의 신이겠습니까? 분명 그는 냉혹하고 위험하고 폭력적인 존재지만 그 이면의 포세이돈은 풍요롭고 다정하고 매혹적인 존재입니다. 바닷물의 깊이를 잴 수 있나요? 바다는 품이 깊고도 넓습니다. 집채만 한 고래에서부터 집요하고 강인한 상어는 물론 연약하기 그지없는 제비갈매기까지 바다는 그 모두를 품습니다. 무의식의 품이고 포세이돈의 품입니다. 마음속에 포세이돈이 사는 사람은 원시적인 사랑의 에너지로 만물을 품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는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본능의 힘으로 돌진하고 목숨 바쳐 싸우는 그는 계산 없이 베풀 줄도 아는 존재입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읽으셨나요? 거기 노인을 연상해보십시오. 그 노인 산티아고는 평생 바다에서 살고 바다에서 배운 고기잡이 어부지요? 그의 눈빛은 바다 빛이고 그의 피부는 바람의 감촉만으로도 남서풍인지, 북동풍인지를 알아냅니다. 돌고래가 물을 내뿜는 소리만 들어도 그것이 암컷인지 수컷인지를 분간할 줄 아는 그는 돌고래가 장난치며 사랑하는 모습에서 형제애를 느끼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바다와 닮아 있는 그는 바다를 잘 알고 사랑하는 포세이돈인 거지요.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 없다는 그의 의지는 바다에서 왔습니다.
마음속의 포세이돈에 휘둘리는 사람은 자기 상처를 어쩌지 못해 충동적이고 화를 잘 냅니다. 창조적인 에너지를 파괴적으로 쓰고 있는 거지요. 반면 마음속의 포세이돈을 잘 다루는 사람은 바다 노인 산티아고처럼 생사를 건 투쟁에 자기를 던질 줄 압니다. 생사를 건 투쟁은 모든 것을 지우지요? 거기엔 생각도, 감정도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고 나면 산티아고처럼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어쩐지 산티아고가 포세이돈보다도 포세이돈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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