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신화,내마음의 별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아폴론의 여인들

모든 2 2019. 3. 10. 04:53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아폴론의 여인들

  따뜻한 봄 햇살에 꽃들이 환하게 피어납니다. 창문을 열었을 때 문득 눈에 들어오는 꽃들의 설렘, 그것이 공감이겠지요? 태양을 향해 다투어 피어나는 꽃망울들의 설렘에 나도 설레며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룹니다. 운동화를 신고 봄볕 속을 걷고 또 걷습니다. 
 

저 봄볕은 어디서 올까요? 동쪽으로 동쪽으로 걸어가면, 남쪽으로 남쪽으로 걸어가면 태양마차를 모는 아폴론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면 나는 카산드라가 될까요? 시빌레가 될까요? 잠시 아폴론에 매혹된 죄로 고독한 운명을 살아야 했던 여인들이 실재보다도 더 실재인 것처럼 나를 자극합니다.

  원래 시빌레는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그녀에게 매혹된 아폴론은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일 경우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제의합니다. “나는 한 줌의 흙무더기를 움켜쥐며 이 흙 알갱이 수만큼의 생일을 갖고 싶다고 했어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가 전하는 그녀의 말입니다. 영원한 삶을 꿈꿨던 그녀, 그녀는 어떤 모습으로 그 꿈을 이루었을까요? 웬일인지 그녀는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아폴론은 사랑을 심술로 갚습니다. 흙 알갱이 수만큼의 생일을 허락하면서 청춘은 허락하지 않은 거지요. 청춘을 잃어버린 채 천년을 살아야 하는 시빌레, 영원한 삶의 무게에 짓눌린 그녀가 고백합니다. “어느새 행복한 시절은 내게 등을 돌리고 병약한 노령이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오랫동안 참고 견뎌야 해요…. 아폴론 자신도 나를 몰라보거나 나를 사랑조차 한 일이 없다고 하실 겁니다.”

 

 

미켈란젤로, ‘쿠마이의 시빌레’, 1510, 프레스코, 375 × 380㎝ 아카펠라 시스 티나, 바티칸

 

  천년의 세월이 오히려 저주가 됐습니다. 그녀는 늙어가며 작아져가며 마침내 왜소해지며 죽기를 소원하는 볼품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나요? 영원한 생명을 구할 게 아니라 영원한 젊음을 구해야 했다고 훈계하시렵니까? 꿈을 꿀 때는 확실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요? 존재하는 것이나, 잃어버리지 않은 것은 꿈꾸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것이 모든 꿈이 나사가 하나 빠진 채로 이뤄지는 이유입니다. 

 

  이루지 못한 꿈은 집착으로 남고, 이루어진 꿈속에선 내 삶의 허방이 보이지 않나요? 그러니 그 삶의 허방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쿠마이의 시빌레’가 시선을 끄는 것은 시빌레를 불행에서 구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림 속 저 여인은 여인 같지 않지요? 나이가 있으나 여전히 힘이 센, 믿음직스러운 남자 같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쿠마이의 시빌레를 왜 저렇게 그렸을까요? 사실 늙는 것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젊음에 집착하여 늙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미켈란젤로에게 그녀는 아폴론과의 만남에서 시간이 멈춰버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곰팡이 피우며 울분만을 토로하는 불쌍한 여인이 아닙니다. 그녀는 젊어지겠다고 발버둥치지 않고 여인임도 잊은 채 늙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편안히, 운명의 서책을 들여다보는 현자입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빛내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말을 빛냅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마침내 나는 눈이 보이지도 않게 되겠으나, 운명이 내게 목소리를 남겨놓아 사람들이 그녀를 목소리로 알아보게 될 거라고. 어쩌면 그녀가 감당하고 있는 외로움은 빛나는 말을 간직하고 있는 자의 숙명이 아닐까요? 아니면 빛나는 말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초라해지고 왜소해지는 상황을 덤덤히 넘길 수 있는 것인지도.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는 어떤가요? 아폴론을 만나 예언의 능력을 얻었으나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역시 심술이 난 아폴론은 그녀의 말에서 신뢰성을 거둬가버립니다. 아무도 그녀의 예언에 주목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무시하는 거지요. 카산드라건 시빌레건 아폴론이 사랑한 무녀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폴론, 태양의 신과의 만남이 빛나지 않았다는 것, 아니 그로부터 받은 빛나는 선물이 그들을 영원히 외롭게 만들었다는 것! 그들에게 아폴론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여 사랑을 하는 것이 완전한 행운을 잡는 방법이었다고 훈계할까요? 천만에요. 그런 강요, 그런 계산으로 사랑할 수 있는 값싼 존재들이었다면 아폴론이 그들을 사랑했을까요? 

 

  아폴론이 사랑했던 여인들은 계산으로 시작한 사랑을 꾸역꾸역 구겨 넣고 초라해진 삶을 보상받고자 화려하게 꾸미는 여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유한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아폴론을 긴장시켰던 직관의 여인들, 디오니소스적 감성을 가진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성의 신, 아폴론이 끌리고 있는 것이 보이지요? 그것은 감성이고, 직관입니다.


  죄는 예언에 힘이 붙지 않는 것도, 젊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고 싶지 않는데 사랑하지 않는 것도 죄가 아닙니다. 죄는 사랑을 거래한 것입니다. 나는 늘 엄친아 아폴론이 연애를 못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사랑을 살 수 있다고 믿는 그 성정 때문에 모든 것을 갖춘 엄친아 아폴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갖지 못하는 거, 아닐까요? 자기 느낌을 존중하고 직관이 발달된 사람들은 사랑을 거래할 수 있다고 믿는 아폴론 같은 존재에게 굴복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