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8년 주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2018년 11월 18일(나해)

모든 2 2018. 11. 18. 18:00

 

금사리본당 고당 공소(1968년)

금사리본당 관할이었던 고당공소(부여군 구룡면 용당리)의 교우들,공소 강당을 짓기위해 해외 원조를 청하는 편지를 이 방지거 회장의 이름으로 써서 동봉했다. 뒤에 보이는 초가집이 공소로 쓰이던 '공소집'이다.

 

  + 마르코 복음 13,24-32

 

  <사람의 아들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말씀의 향기>

 

  가난한 이의 부르짖음  -김다울 클레멘스 시장사목 전담

 

  어느 날 미사 후, 성당 정리를 하고 있는데 50대쯤 되어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에 얼굴도 좀 초췌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사무실로 가서 지갑에서 돈을 조금 챙겨 갖고 나왔습니다. 제가 있는 중앙시장성당은 노숙자나 어려운 분들이 오셔서 점심값이나 차비를 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번에도 친교실로 안내하였습니다. 인스턴트커피를 한 잔 드리고 나서 그 자매님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을 나온 얘기,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사창가를 전전긍긍했다는 얘기,또 거기서 도망쳐 나온 얘기,그 절에 있던 스님한테 성추행을 당한 얘기 등등...

  그런데 이 얘기들은 중구난방으로 하는 통에 제대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뭐라 맞장구를 치기도,대꾸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저 잠자코 듣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제 돈을 좀 달라고 하면 도와주고 이 자리를 정리해야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자매님이 "신부님, 시간 많이 뺏어서 죄송합니다. 사실 제 얘기를 누구한테 할 수도 없고,들어줄 만한 사람도 없어서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긴 시간 제 얘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는 부리나케 옷을 챙겨 성당 문을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가 꽁무니에 대고 인사하는 것으로 이 만남은 끝이 났습니다.

  오늘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가난은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만을 의미하지 않고,가난한 이들의 소외로 드러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담화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언가를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그 자매님에게 제가 돈을 주려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무언가를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그 자매님에게 제가 돈을 주려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가난한 이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주님처럼 우리도 가난한 이를 소외시키지 않고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가 무심하지 않고,깊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내려올 때,우리가 가난한 이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그분을 닮아 있다면 참으로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via의 시선(들어야 하는 이유)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방을 치웁니다. 이것저것 쌓여진 물건들이 많습니다. 적게 소유하고 길지 않은 시간 살겠다고 생각했는데,뜻대로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장롱 속을  뒤적거리면서 새것이 있는지 찾습니다. 새 것은 돈을 주고 구입한 신상품,그것이 유행하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가까운 시간 안에 어느 가계 진열대에 거치되었던 물건을 말합니다.

 

  새 것이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합니다. 최근에 사들인 물품이 무엇이 있는지 그러다가 한 달,일년의 기간으로 생각의 품을 넓혀 나갑니다. 그러고 보변 거의 대부분이 얻어진 것들입니다. 누군가의 호의로 주어진 것들을 입고 쓰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물품이 옷장과 방 안에 가득합니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은총이라고 하는데,은총을 덩어리 채 받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편합니다. 가슴 한 구석에서 느껴지는 불편함,내면의 얼굴을 가린 채 적당하게 웃고 우는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가면에 익숙해지고 싶은 충동도 느낍니다.

 

  가끔 산에 가면 정해진 길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럴 때면 정해진 길을 벗어나 길 없는 길 위에서 조용히 쉴 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소리를 듣기 위해서 눈을 감습니다. 길이 있는 이유는 멈출 수 있는 곳을 만나기 위해서 이고,그곳에 멈춰서 쉬는 이유는 다시 길을 걷기 위해서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쉽니다.

 

  멈춰 쉬고 걸으면 이전보다 더 가벼워진 나를 경험하게 됩니다. 쉼이 안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쉼은 외부로 분출되었던 숨을 가슴으로 돌리고,생각(thinking)과 봄)(see)에서 들음(hear)으로의 바꾸는 행위입니다. 역할에서 존재로의 전환,이 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쾌함을 경험하고,우리 모두 -인간과 모든 사물-는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얻어 먹고 삽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쌓아 놓고 지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좀더 가볍게 걷기 위해서 멈추고 , 숨을 안으로 돌리면 들릴 것입니다. 내어 놓아야 할 것과 지금 여기에서 짊어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밖이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저 걷기만 하라고 합니다. 멈춰서는 안된다고..멈추면 뒤쳐진다고 합니다.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 혹 내가 미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를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일 냉장고 여닫지 않기"

 

하루하루 전기에너지를 아끼는 습관,기도처럼 해주세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의 힘과 빛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어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 받으소서. 아멘

 

한국천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L-O-V-E

 

  "LOVE라는 단어 뜻이 무엇인지 알아요?"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한 분께서 건넨 이 질문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어리둥절했습니다. 누구나 아는 단어의 뜻을 새삼 묻는 그 의도를 잘 몰라서였습니다.

 

  그분께서는 한 심리학자가 소개한 LOVE의 뜻을 들려 주셨습니다. LOVE는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철자 하나하나에 심오한 의미를 담은 네 개의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L : Listening(경청)

  O: Openness(관대함)

  V :Verbal expression(말로 표현하기)

  E :Effort(노력)

 

  짧지만 사랑의 본질을 이보다 간단명료하게 정의할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일이고,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그 사람을 그윽하게 바라본다는 뜻일 겁니다.

 

  마음속 숨겨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언어로 그 마음을 전하고 서로가 끝없이 노력해야만 가능한 것,그것이 사랑일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자기 말만 하기에 급하고,자기 방식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인색하고,늘 옆에 있다고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걸 누가 사랑이라 느낄가요?

 

  쌀쌀해지는 날씨에 옷깃만 여민다고 추위가 사라지는 건 아닐 겁니다. 옆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교수-

 

 

 

 

쉼 없이 달리다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깊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