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본당 연산 공소(1967~1968년)
논산부창동본당의 관할인 연산공소의 옛 모습.'공소집'으로 사용되던 공소 회장의 집과 내부 모습이다. 지금도 연산역 앞에 공소가 자리하고 있으며,주변에 '역전 마을'이 조성 되어 있다.
+ 요한 복음 18,33-37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의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말씀의 향기>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오신 왕 - 옥순보 바오로 병원사목 전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1년이라는 기간 안에 질서 있게 배치하여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이것을 전례주년이라고 하는데 대림 시기부터 시작하여 성탄 시기로 이어지고 그리고 연중 시기가 얼마쯤 계속되다가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시기를 맞이하게 되고 이어서 부활 시기로 연결이 됩니다.
부활 시기가 끝난 다음에는 다시 긴 연중 시기가 다음 대림 시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대림 첫 주일은 교회로 봐서는 새해 첫날인 셈이며 연중마지막 주일은 이를테면 섣달그믐 주일인 셈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연중 마지막 주일을 특히 교회는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경축합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지금도 왕이시며 그리고 끝 날에 왕으로 오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믿는 분,하느님 사랑의 최고 현현(顯現)이실 뿐만 아니라 믿기 위해서 우리가 일치되어야 할 분"임을 다시금 새겨야 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신앙의 빛』18항)
오늘 복음 안에서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하고 심문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왕이라고 하지 않고 왕이 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빵의 기적을 베풀었을 때 군중들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 때에도 그분은 다른 곳으로 피해 가셨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왕들과는 거리가 먼 초라한 삶을 사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로 오지 않고 섬기러 왔다"(마르10,45)는 그분 말씀대로 병자와 세리,어린이와 과부 같은 힘없고 가난한 이들과 어울려 살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우리는 온누리의 임금으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다'고 고백하며 만군의 주님으로 모시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권위로 백성을 억누르고 살았다면,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는 말씀처럼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사셨고 최후만찬 석상에서는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겨 주시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온몸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 안에서 늘 우리와 함께 살아 움직이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에 관한 말씀은 성경으로 기록되어 세상의 역사를 바꾸는 생명의 책으로 남아 있으며,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을 넘어서 우리의 구원자이시오,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분명 우리가 따르는 왕이신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왕들 중의 왕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머리에 얹힌 관은,백성을 힘으로 내리누르고 거짓과 음모,위선과 가면으로 얹혀진 금관이 아니라,위를 쳐다볼 시간조차 없도록 사랑으로 겸손으로 섬김으로써 얻은 가시관일 뿐입니다.
남을 짓밟음으로써 얻은 금관을 쓰고 있는 빌라도 앞에서,재판을 받기 위하여 사랑으로 섬김으로써 얻은 가시관을 쓰고 서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들은 빌라도의 금관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선택하시겠습니까?
via의 시선(기도하는 이유)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좀더 건강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까? 가슴에 품고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질문입니다. '이렇게 일찍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학교 정문을 통과할 때,선생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생각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 느껴지는 긴장감과 불편함,몸의 반응은 그 시절을 지워야 하는 시간이라고 알려 줍니다.
위선으로 가득찬 사람들의 말을 사실이라고 믿고 지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처럼,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역사 선생님의 찬가는 나라를 빼앗기 위해 민중에게 총구를 겨눴던 한 인간의 품성과 인격을 지상의 신처럼 숭배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해서 본 영상은 다른 이야기를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자국민에게 곤봉을 내리치며 총검을 들고 사람들을 쫓는 누군가의 아들과 길에 방치된 국민들의 주검 옆에서 무궁화와 별이 새겨진 옷을 입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인간을 보는 내내힘이 들어간 주먹은 펴지지 않았습니다. 기만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분노했고 그래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좀더 건강한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너무 강고했습니다. 기만의 시대에 동의했던 사람들은,기만의 정체성이 발각되고도 아무런 문제없이 기만을 양산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만의 구조에 새로운 회원으로 가입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달리고 또 달립니다. 그리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야할 곳은 오직 한 곳으로 정해지게 됩니다.
생각은 금지됩니다. 아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무엇이 옳은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삶의 목표가 한 곳으로 정해진 곳에서는 생각과 판단보다는 통제와 지시가 더 편하고 쉽습니다. 도전은 실패의 가능성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도전에 대한 실패의 가능성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도전에 대한 실패의 책임을 짊어져야 합니다. 한 곳으로 가야만 하는 곳에서,갈 수 있는 다른 곳이 없는 상태에서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디.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가야한다고 강요한 누군가가 져야 되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그때'가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그 때, 그 독재의 시대로 돌아가면 어떨까?' 대통령에게 욕하거나 정부정책에 반대하면 감옥에 가두거나 아무 것도 하지 못하도록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감시하면...
독재는 어떤 결과를 맺으려고 할 때 민주주의 보다 더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창조라는 신앙적 관점에서,독재는 하느님 창조의 완전한 거부로 수용할 수 없는 반신앙적 행위입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쉽고 간단한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사람의 성장과 성숙을 방해합니다. 지난하고 어려운 길이 있습니다. 궁극적 성장과 성숙이 있는 길,그러나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외롭고 힘듭니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이전보다 더 자주 떠오릅니다.
기도합니다. 견뎌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지난하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 이들이 지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지구를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 분리배출 열심히"
지구라는 커다란 집이 쓰레기통이 되지 않기를 프란치스코 교왕님과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의 힘과 빛으로 저희를 붙잡아주시어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 받으소서. 아멘
한국천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핑크 다이아몬드 정도쯤은...
얼마 전 '핑크 레거시'라는 다이아몬드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약 567억이 넘는 천문학적 가격으로 낙찰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순도,색상,크기 모든 면에서 이 '핑크 레거시'는 최상급의 다이아몬드였으니 어쩌면 낙찰가격은 예상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다이아몬드의 엄청난 가치는 그 '희소성'에 있었습니다. 10캐럿이 넘는 핑크 다이아몬드는 200년이 넘는 경매 역사상 단 네 번밖에 거래된 적이 없는 극히 보기 드문 보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핑크 레거시'도 감히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희소성에 관한 한 끝판 왕이라 할 매우 귀한 존재들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매일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나무들을 보면 그 어떤 나무도 완벽히 똑같은 나무가 없고,나뭇잎들도 서로 모양과 색에 있어서 저마다 하나하나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도 생김새,목소리,표정,성격에 있어서 비슷해 보일 순 있어도 완벽히 동일한 사람들을 찾는 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하느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임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세상에 생명이 있는 수많은 존재 가운데 단 하나도 똑같지 않는 그 고유한 희소성을 어떻게 일일이 부여하셨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그 값을 매길 수 없는 생명의 소중함은 망각한 채,무거운 금고 안에 깊숙이 넣어 둘 물건들을 얻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가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기도해 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살아 있는
날들은
순례(巡禮)입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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