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리본당 흔티 공소(1967년)
공세리본당 관할이었던 흔티공소(아산시 영인면 신봉리 2구)의 옛 모습이다. 공소 강당을 짓기 위해 해외 웑조를 청하며 공소의 어려운 사정을 적은 편지를 구 미카엘 회장의 이름으로 보냈다.
+ 마르코 복음 12,38-44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말씀의 향기>
시노드와 함께 평신도 희년의 정신으로 새롭게 출발합시다 -김광현 안토니오 대전교구 평신도사도직 단체협의회 회장
교형 자매 여러분,
오늘은 교구설정 70주년의 뜻깊은 해에 맞이하는 제51차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 주일은 세상이라는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우리 평신도들이 평신도의 신원과 사명을 되새기며,그에 합당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격려하는 날입니다. 이런 의미와 다짐을 새기며 우리교구 형제자매님들께 평화와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바라볼 때, 한국교회의 평신도 역사는 그 자체로 한국교회 역사의 핵심입니다. 선교사의 도움 없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수용한 분들도 평신도였고 박해로 사제가 없는 기간 동안 교회를 지켜온 이들도 평신도였습니다. 민주와 정의가 훼손된 상황에서,예언자적 소명의 불을 밝힌 한국교회의 현대사도 평신도의 놀라운 참여와 함께 전개되었습니다. 남북 대립 속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만이 통용될 때,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깃발을 올리고 인도주의적 활동과 일치를 위한 기반을 준비했던 한국교회의 업적도 평신도들의 노고에 크게 힘입었습니다. "내 탓이요"운동, "아름다운 가정,아름다운 세상"운동, "답게 삽시다"운동 등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구체적인 삶 안으로 침투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해 12월 8일에 교구설정 70주년과 시노드 본회의 시작을 알리는 미사에서 시작한 '평신도 희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교구 시노드와 함께 하느님나라 건설과 복음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우리는 지금 변화되어야 하고 변화된 모습으로 신앙여정의 후반전을 평신도 희년 정신에 맞게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평신도 희년을 지내고 있는 우리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삶을 더 충실히 살아갈 것을 결심하여 봅니다. 지난 7월 21일 각 교구 평협과 단체의 대표들이 50년 전 한국 평협이 출범한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기념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대표들은 '50주년 선언문'을 통해 앞으로 더욱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서 복음화의 길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짐의 마음을 평신도 희년을 지내면서 모든 교유들과 함께 되새기고자 합니다.
평신도에 의해 세워진 한국순교 선조들의 얼을 이어받아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용기를 내어 일어나서,사랑의 마음으로 자신과 이웃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힘입어 새롭게 출발합시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삶을 새롭게 살아갑시다.
교구 시노드의 성공적인 구현을 위하여 관심과 기도로 모두가 함께하기를 희망하며,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늘 가득하기를 기도드립니다.
via의 시선(어떻게 살아야 하나)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마음을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회색으로 채워진 하늘입니다. 보이는 것 모두가 한가지 색을 입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에게 가까이 다가서야만 그가 지니고 있던 본래의 색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환기를 위해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냄새,이내 문을 닫습니다.
숨쉬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도로 위에 차는 넘쳐납니다. 미세먼지로 가득 찬 거리,숨쉬기가 힘들고 어려워서 그래서 차를 이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맞는 말인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딘가 좀 불편합니다. 차 안에 깨끗한 공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이 다녀야 할 곳은 더 숨쉬기 어려운 공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없고 차만 다니는 거리,상상이 되시는지요.
기계는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여름에는 추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겨울은 더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경제성장이라는 환상에 빠져 사는 경제적 인간들은 자신의 외부에 있는 모든 것을 '그것'으로 인식합니다. 언제든 사용가능하고 효율이 떨어지면 폐기가능한 '그것',존재하는 것을 존재가 아닌 그것으로 인식하는 경제적 인간이 만들어 낸 결과가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그리고 요양병원과 웃기지도 않는 현실이지만 전원주택이라는 아이러니입니다.
도심에 있는 산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겠다고 합니다. 잘 흐르고 있는 물길을 돌려 신규 아파트 단지에서 독자적으로 사유하고 감상할 수 있는 인공호수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외칩니다. 도심에 있는 공원을 이어붙이는 개발사업으로 도심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합니다. 한심합니다. 저의 이해수준이 짧은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뒤틀려서 그런지 제 귀에는 이렇게 들립니다.
"도심의 산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어서 돈을 벌겠다."그리고 "공원이어붙이기 공사를 통해서 더 큰 돈을 벌겠다." 그리고 그들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말할 것입니다. "이런 토건공사를 통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고."
어떤 운동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한,그 운동은 운동으로 머물지 않고 철학적인 것이 됩니다. 그 운동의 철학은,그 운동이 추동하는 균형과 조화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운동은 보고 판단하고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 체제가 지향하는 전통적(?)인 사유와 행동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대안적 삶을 찾습니다.
하느님 창조의 감탄인 "보시니 좋았다"에 배제된 피조물은 없습니다. 실제 세계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접촉합니다.(슈즈,모르). 나의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칩니다. 회색 빛으로 가득찬 오늘,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지구를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일 스마트폰 사용 줄이기"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의 힘과 빛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어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 받으소서. 아멘
-한국천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등산보다 입산이다
저는 산에 오르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누가 등산을 가자고 하면 늘 미적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올 가을은 달랐습니다. 늘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저 산을 바라보기만 하던 구경꾼인 제가 산을 향해 스스로 걷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챙기기 위함도 아니고 등산 애호가 친구들의 성화가 더 극성스러워진 것도 아닌데,그런 변화가 생긴 건 등산보다 '입산'이 취미라는 어떤 분의 글을 일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산 정상을 목표로 오르는 등산보다,산속 이곳저곳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입산이 더 좋다는 그분의 글은 제게 등산에 대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 글에서 가장 마음이 와 닿는 부분은 등산로에 있는 길 안내판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잘 닦인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여기엔 다람쥐가 많이 살아요.' '쪽동백나무가 울창한 곳이에요.'라고 써 놓을 순 없었을까? 그랬다면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순간을 즐길텐데.."
어쩌면 우리는 인생이란 산에 등반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나는 지금 여기의 아름다움을 잊은 채,저기 멀리 높은 곳만을 목표로 정하고 조바심 내며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됩니다.
인생은 견뎌야 할 고행길이 아니라,하루하루 감사한 행복길임을 기억하며 등산보다 입산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오늘 하루를 기쁘게 살아갑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꽉 찬
완벽보다
한두 개 빠진
아름다움
사람.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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