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8년 주보

연중 제 31주일 2018년 11월 4일(나해)

모든 2 2018. 11. 4. 21:00

 

강경성당 봉헌식(1961년 2월 13일)

강경본당은 1946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분의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설립되었다. 1961년에 현재의 성당을 봉헌하면서 본당 주임 베르몽(목세영,1881년 2월 12일생) 신부의 팔순 잔치도 겸하였다.

 

  +  마르코 복음 12,28-34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말씀의 향기>

 

  하느님 나라에 다가서는 방법  - 권지훈 베드로 세종도원 주임

 

  예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풀이해 주시며 우리가 어떻게 진실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다고 하시며 계명에 따른 실천을 말씀해주십니다.

  하나의 공동체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이 한마을이 되어 이 말씀에 따른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머리로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입으로도 되뇌이지만,막상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려면 머뭇거리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면허증을 취득한 후 한번도 운전하지 않은 사람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남들에게 스스로는 면허증 소지자라고 자부할 수는 있지만,막상 운전을 해 보라면,'다 잊어 먹었다"고, "무섭다"고 말하며 정작 운전을 꺼리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이 그 의미를 잘 알고 있고,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면,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동기들과 차를 타고 먼 길을 가게 되면, 중간중간 묻습니다. "졸리지 않냐"고, "괜찮냐"고,"운전하기 힘들면 이야기 해. 내가 해줄게"라고 말을 해 줍니다. 나 혼자 편하자고 옆 자석이나 뒷좌석에 앉아 편히 가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면,자칫 좋은 여행을 망칠 수 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본당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나도 할 수 있지만, 누가 하겠지'라는 생각에 뒤로 물러서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모든 분들이 아시겠지만,이러다 보면 소수의 신자분들이 한개 이상의 역할을 하며 쉴 새 없이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시간이 지나 과부하가 걸려 그분 역시 주저앉게 됩니다. 가야할 차가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차가 서게 되면 누눈가 갑자기 나타나 다시금 그 차를 움직이게 해 주기도 합니다.

  어느 날 저희 팀이 단장님이 저에게 오셔서 "신부님,이번에 저희 팀이 1,000차 주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와서 축하해 주세요"라며 말씀을 하시고, 또 조심스레 자신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하시고 말을 꺼냅니다. 단장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 바람에 그 레지오 팀이 어수선해졌다고 합니다. 회합 당일날 가서 훈화와 강복 그리고 1,000차 주회를 축하하며, "이제 누가 단장을 하게 되었습니까"라고 묻자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가 된 듯합니다. 이제 제가 '단장을 할 분이 계시지 않으니 팀을 해체하고 다른 팀으로 나누어 가시면 되겠습니다."라고 한마디 하고 방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그 팀의 단원이 쫓아와서 환하게 웃으며 단장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남은 단원들 중에서 누군가 용기를 내어 그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모습을 보면서, 사랑한다는 것, 일을 나선다는 것 모두가 용기가 필요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용기있는 자가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하느님의 나라 역시 이렇게 용기 있는 분들이 먼저 차지할 수 있을 것입 니다.

 

 

via의 시선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싸움과 도주의 기제에 충실한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도덕적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곤 합니다. 폭력은 발생하는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 나타나는 현상(파커 J 파머)입니다.


  인간은 이성을 자신의 감정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동시키려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을 지키고 살아야 한다면서,많은 이웃을 타자로 만들며,이들을 공동체 바깥 어둠 속으로 던져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낭만의 대상으로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 초심자가 아닌 전문가가 되려고 시도합니다. 그런데 초심자가 아닌 전문가의 마음으로 충만한 상태가 된 사람은 오히려 자신과 타인 안에 내재된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시켜버립니다.


  전문가가 된 인간은 가을이 계시하는 신비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붙어 있던 자리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모든 내려앉음이 새로운 시작의 준비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연은 알려줍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때,잎이 떨어져 퇴비가 되고 씨앗들은 파종된다는 것을.


  튼튼한나무는 땅위의 높이만큼의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외양이 멋지다고 해서 튼튼한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스펙이 좋다고 해서 의로운 것은 아닙니다. 시셋말로 능력이 좋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닌 능력으로 이룩한 성취가 그 자신을 파멸시키는 문이 되기도 합니다.


  정직한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직한 자기반성이 쉬울까. 경험에 의하면 쉽지 않습니다. 힘듭니다. 인간적 고통의 잘 알려진 원천이 정직한 자기반성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의지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만일 고통에 대해 다른 무언가를 하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인간은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 자신 안에 내재한 다른 가능성을 차단시켜 버릴 것입니다.


  생각합니다. 한 번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본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죽는다면.. 슬플 것입니다.
한 번인 삶,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 잠시 모든 일을 멈추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나를 뵈야겠지요.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행복 낱말 사전 10

 

 

# 단풍


  가을은 나뭇잎의 본색이 드러나는 계절,여름 내내 온통 초록인 줄 알았는데,나무를 떠나게 되는 순간 나뭇잎은 화려한 단풍으로 자신의 놀라운 본색을 드러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헤어지거나 떠나게 될 때가 되면 지금껏 몰랐던 그 사람의 본색이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구나 단풍본색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는 단풍처럼 영롱한 아름다움을 드러내지만,다른 이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추한 모습을 드러내며 떠나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에도 언젠가 가을은 찾아옵니다. 그때 헐벗은 민둥산에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아니라. 단풍으로 풍성한 숲으로 기억되려면 지금 이 순간 부끄러움 없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 야구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수비시프트'라는 진풍경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타자의 타격 성향에 맞추어 수비수들이 위치를 그때그때 변경하는 전력이 바로 수비스프트(shift)입니다.


  예전에는 수비수들의 수비 포지션이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에 대한 분석이 촘촘해지자 타자별 맞춤형 수비형태가 개발된 것입니다.


  수비스프트를 보면서 엉뚱하게도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웁니다. 상대방에 따라 내 자신이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기 때문입니다.


  내 자리를 고정하고 고집하면서 상대방을 대한다는 것은 실패가 예정된 무모한 자세일 뿐입니다. 인생을 즐기려면 늘 머물던 자리부터 바꿔 보는 용기가 먼저입니다.

 

 

 

사랑은 힘든것

그래도내려

놓을 수 없는 것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