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8년 주보

연중 제30주일 2018년 10월 28일 (나해)

모든 2 2018. 10. 28. 21:00

 

보드뱅 신부 회갑 기념(1957)

1926년 한국으로 파견되어 경상도에서 활동을 시작한 보드뱅(정도평 에밀리오)신부는 예산본당에서 회갑을 맞았다. 건축에 능했던 그는 대구교구 언양 성당을 비롯하여,대전교구 삽교성당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당을 지어 봉헌하였다.

 

  +  마르코 복음 10,46-52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 무렵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다윗의 자손 예수님,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그를 불러오너라,"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용기를 내어 일어나게,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하고 말하였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그 눈먼 이가 "스승님,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하고 이르시니,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말씀의 향기>

 

  교회 안에서 상석(上席)을 없앱시다  -황영준 시몬 덕명동 주임

 

  많은 단체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가장 높은 사람이나 중요한 사람을 중심으로 자리가 배치됩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직책이 높은 사람 등등. 그러다 보면 저 멀리,저 구석에 앉게 되는 누군가는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발언 기회도 없이 모임이 끝나는 일도 있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도 상석에 계신 높은 분들의 대화에 끼어들어갈 자신도 없고,방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길을 떠나시는데, 예수님 바로 곁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비록 길위이지만 거기에도 보이지 않는 상석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변에는 실세,곧 열두 제자들을 포함하여 뭔가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거나 영향력 있는 이들이 그분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들이 눈먼 바르티매오를 멀리 쫓아내려 합니다.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중요한 분이시니 신변 보호를 위해서? 늘 바쁜 분이시니 피곤케 하지 말라고? 그가 율법에 따라 죄인으로 취급되었기에?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바르티매오가 예수님 옆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섰고, 바르티매오는 상석에 계신 분들 때문에 예수님을 못 만날 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르티매오를 불러 당신 바로 앞에 세우시고,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시고,그의 청을 들으시며 그것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그렇게 행동하셨습니다. 와달라 하면 가 주셨고,누군가 당신 곁에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상석에서 기꺼이 내려오셔서 모든 이들을 가깝게 만나주셨습니다. 가까이 만나면 들어줄 수 있고,알게 되고,도와줄 수 있습니다. 멀리 있으면 들어줄 수도 없고,알수도 없으며,도와줄 일은 더더욱 없게 됩니다.

 

  교회 안에도 상석이 있었습니다. 특히 사제 주위에 많습니다. 자주 그 자리는 가진 자들이,풍요로운 자들이 차지하곤 합니다. 사제가 곧 상석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 상석은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고 서로 간의 만남을 차단하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상석을 없애면 서로 간의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제거되고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본당 잔치나 식사자리에서 사제들이,사목 위원들이 먼저 밥그릇 들고 저 구석에 있는 분들,한 번도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분들에게 다가가 함께 식사한다면,그래서 그분들의 말씀을 듣게 된다면,바르티매오의 기적만큼은 아니어도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들이 훨씬 많아질 것입니다. 본당의 단체장들께서 친한 이 사람만 늘 챙겨 앉히지 말고,모르는 저 사람을 불러 가까이 앉힌다면 더 풍요로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상석(上席)을 없앱시다.

 

 

  via의 시선(세상 속에 살다)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서로 다르게 삽니다. 이렇게 혹은 저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들었는데,살다보니-많은 시간은 아니지만-올바르다는 말 속에 내재한 폭력성을 느낍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 않지만,'이렇게'혹은 '저렇게'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가끔 분노가 존재를 흔들 때가 있습니다. 몸과 사고의 익숙함에서 벌어지는 광대짓이지요. 창조성으로 견인된 수많은 생각과 이런 생각들을 하나로 엮어서 각본을 만들고, 존재는 각본의 행간에 밑줄그어진 감정의 지시에 충실하게 반응하고,때로는 춤을 추기도 합니다.

 

  내 안에 새겨져 있었던 규범과 새롭게 경험하는 현실 사이의 간격이 주는 충격과 갈등. 생각하게 됩니다. 옳고 그름이 기준이 무엇일까? 아니 옳바르고 틀림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묻고 또 묻습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생각이 굳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생각이 굳어지면 가슴도 닫혀지게 되고 더불어 몸은 익숙한 것 이외의 것을 시도하지 않게 됩니다. 열려 있는 존재로서 깨어짐을 통해서 세상에 열려 있는 나를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나는 창조된 세상이 주는 좀더 고양된 숨을 쉬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불면의 진리에 몸과 마음을 맡기게 됩니다. 새로움이 없는 오늘을 사는 "나"...,참 지겨운 "나"입니다.

 

  "한 번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를 살아본적이 없음을 깨달으며 죽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책 노트에 적혀 있는 글을 다시 읽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기록한 노트를 반복해서 읽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했는지 그리고 지금 원하고 있는지,떠올리고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가야 하는 길을 찾습니다.

 

  만남과 만남이 잉태하고 있는 결과 속에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사람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서 사람이 되어 가고,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서 성숙되어져 갑니다. 타인이 배제된 개인화는 자유를 선물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타인이 배제된 상태의 자유에서 삶의 성장과 통합이 가능할까? 저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장과 통합은 강화된 에고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자존감이 확장된 상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배웁니다. 새로운 경험이 주는 충격을 받아들입니다. 깨지고 부숴져서 세상에 열려진 나를 꿈꾸며,길을 찾고 그 길 위에서 타인(인연)들을 만납니다.

 

 

행복 낱말 사전 9

 

 

# 돋보기안경


  돋보기안경은 때때로 슬픕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이용할 때 자주 한숨을 내쉬기 때문입니다.
잘 안 보이는 걸 잘 보이게 해 줘서 기뻐할 줄 알았는데,사람들은 흘러간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만 생각하는 것 같아 돕보기안경은 서운해집니다.


  지금 누리는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 예전에 누렸던 것이 사라진 아쉬움으로 돋보기를 쓰면 사물은 크게 볼 수 있어도 마음 안의 행복은 거꾸로 작아 보입니다.


  행복의 돋보기를 쓰고도 행복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안경 탓이 아니라 오늘에 대한 감사함을 잊고 있는 마음 탓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 꽃병


  꽃병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꽃밭입니다. 흙 한 줌 바람 한 점 담을 수 없어도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꽃병은 분명 누군가의 꽃밭입니다.


  꽃병에 물을 채우고 그 안에 꽃을 꽂는 사람의 마음은 꽃밭에 씨를 뿌리고 가꾸는 사람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어 있는 꽃병만큼 쓸쓸한 것도 없을 겁니다. 꽃이 없는 꽃병은 황량한 황무지와 다름없습니다.


  꽃 한 송이라도 꽃병 안에 담을 수 있는 마음이 행복의 시작입니다. 인생은 욕심을 담는 큰 그릇이 아니라,한 송이 꽃이면 충분한 예쁜 꽃병이기 때문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하늘을 나는 새

땅을 기는 애벌레

숲을 나는 나비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반짝이는 시냇물........

 

저는 지금

이 모두를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고맙습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