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강진영 신부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로마5,18)
+ 마태오 복음,4,1-11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을 단식하시고 유혹을 받으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사탄아,물러가라.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말씀의 향기>
한 박자 쉬면서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김경호 바오로 충남법인 회장 겸 전의요셉의마을 원장-
사회사목을 하는 사제로서 "신부님(형제,자매님)저희 좀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평소 저의 머릿속에는 하느님,복음,선교보다 어르신들 잘먹여드리고 기관을 잘 운영하며,지역 내에서 기관의 명성을 잘 유지하고 원장으로서 적절하게 권위를 가지며,사제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음을 우선시 여길 때가 많습니다.
"돌더러 빵을 되게 하라.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 보라,엎드려 경배하라."
예수님이 겪으신 악마의 유혹들입니다. 우리도 세상사 안에서 재물과 안전,자기과시와 명예,권력과 부귀영화에서 자주 직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족과 절제를 잊고 이런 것들을 유혹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죄로 기울어져 갑니다. 유혹은 내가 묻어두었던 상처와 약함 속으로 교묘히 파고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강하게 저항하다가도 자존심과 욕샘으로 인해 넘어갑니다. 한 박자 쉬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악마의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십니다. 악마도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잘 알고 계십니다. 악마도 내가 나를 아는 것 보다 더 나를 잘 알고 계십니다. 악마도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주 한적한 곳으로 떠나시어 혼자 기도하십니다. 악마는 또 다른 유혹의 기회를 엿보며 사람들 곁에 있습니다. 평소 우리는 바쁘게 지내면서,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주님 말씀을 읽을 시간,기도할 시간,봉사할 시간,하느님을 찾는시간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때 유혹은 마치 집착처럼 인간을 급하고 강하게 반응하도록 부추깁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머리에 재를 얹습니다. 내 삶에 있어 생각과 말과 행위의 중심이었던 머리에 재를 얹으며 회개를 통해 흙으로 돌아갈 운명과 영원한 생명을 다시금 되새겨 보고 고해성사를 통해 새로나게 됩니다.사순시기 안에서 오늘도 악마가 펼쳐놓은 달콤한 유혹들과 주님께서 펼쳐놓으신 십자가 은총들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 박자 쉬면서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고,내 이웃을 생각하며 절제와 희생의 삶을 선택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순시기는 성령께서 우리를 구원의 은총으로 유혹(!)하는 시간입니다.
<청소년 바로보기(65)>
'청소년이해'를 위한 꼭지⑧
-'청소년과 인터넷 문화'
'문화' 자체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하였기에 이미 설명과 이해가 된 것으로 간주하고, 일단 한국사회의 사회적,교육적,문화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부터 이해하고 그들을 어떻게 교회 입장에서 이해하고 도와줄 것인가를 생각하고 고민해 보기로 한다.
오늘날의 청소년 M(Met - work)세대는 브라운관의 TV를 넘어서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공중파 방송을 수신하고,뿐만 아니라 인터넷도 간단하게 접속할 수 있으며, 게임도 할 수 있다. 결구 그 복잡하고 덩치 큰 미디어 기기들이 이미 청소년들의 손 안에 다 들어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복잡한 기기조작이 아닌 다순히 엄지손가락의 키 버튼 동작 몇번으로 가상공간과의 연결이 가능해 졌으며(엄지족), 혼자만의 시간이나 여가시간을 다른 사람과의 인격적 대화가 아닌 기계(핸드폰)을 통해서 이루고 있다. 즉,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기계와의 대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컴푸터와 스마트폰을 통한 게임은 큰 문제로 떠올랐다. 이미 청소년들 사이에서 온라인 게임은 보편화 되어 있고, 게임을 통해 패배를 맛본 아이들은 상대방을 이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이미 게임중독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성세대인 부모와 신세대는 갈등을 겪고 학업에도 지장을 초래해 청소년의 미래에 부정적으로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 이미 생활 속에 있다. 인터넷은 '놀이'이다 놀이공원 같은 환타지가 가득한 공간은 아니지만,3D로 실제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이다. 단지 어린이들의 놀이에 머물던 '게임','인터넷'이 디지털시대의 핵심 사업으로 성장하고 있고 성인들에게도 하나의 놀이공간이 되었으며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프로슈머(pro-sumer)'라는 신조어가 있다. 이는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 이다. 즉 사이버공간에서 싸이트가 제공되던 내용(컨텐즈)만을 소비하던 청소년들이 UCC(User Created Contents)를 만들어 올리는 사이버공간의 생산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문화적,예술적 가치를 매기거나,평가하는것은 중요치 않다. 다만,즐거움과 소통이 그 가치를 대신할 따름이다. 따라서 사이버문화는 그 자체가 '놀이'이다. 그러나 온라인 놀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통한 '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신현문 발렌티노 신부 대전 정림동 살레시오 청소년 수련원 원장-
<미사 속 숨은 보화>
축성기원(Epiclesis conserationis)2-의미②
축성기원 기도문을 에피클레시스라고 부르는데,이 말은 어원상으로 이름,별칭,부름,등을 뜻 합니다.전례상 의미는 사람이나 사물을 축성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능력을 청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물로 바치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되게 해달라고 청하는 축성기원 기도문은 성령을 부르고 그 능력을 정하여 성령의 힘으로 성변화가 일어남을 보여줍니다. 로마전문의 축성기원은 성령을 간접적으로 청하고 있으나,새로운 감사기도문 안에서는 뚜렷이 성령을 부르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2)>
미세기도 주의보
기도의 반경이 축복의 반경이다
천사들이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편안한 자세로 하늘나라 TV를 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마침 9시 뉴스에서 뉴스 캐스터 천사가 지상의 리포트천사와 이런 내용으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캐스터 : 미세기도 주의보가 발령중인데오.어떻게 된 일인지 지상에 내려가 있는 안젤라 리포터 연결해 보겠습니다.안젤라리포트?
리포트 : 네,요즘 지상엔 연일 미세기도 농도가 짙어지고 있는데요.
캐스터 :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리포트 : 사람들의 삶이 너무 힘들고 팍팍해진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캐스트 :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리포트 : 지나친 경쟁사회 속에 살다보니 이웃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근시안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인데요.
캐스트 : 네,그렇군요.
리포트 : 기도 안에 섞여있는 미세한 욕망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점점 건조하게 하고 있어서 많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캐스트 : 그럼,언제쯤 기도가 맑고 투명해질까요?
리포트 : 글쎄요... 아직은 예측하기 어려운데요. 우선 겸손한 마음부터 갖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뜻한 봄날을 그렇게 기다렸건만 미세먼지 때문에 너무도 마음이 답답해 혼자서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내 기도로 혹시 미세먼지로 오염된 것은 아닐까?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그리고 홰 그리도 미운 사람들은 많아지는 건지 툴툴거리며 오늘도 침묵의 마스크를 쓰고 혹시 주님 앞엣 내 편안함만을 위해 기도한 한 것은 아닐까?
코와 목이 뻥 뚫리는 그런 기분으로 개운하게 기도해 보고 싶은데 참 쉽지 않습니다. 자꾸만 '난 소중하니까!'라는 분심이 들어서 기도가 참으로 쫀쫀해지고 맙니다. 단 한 줄의 기도라도 푸멱이 있었으면 좋겠는데..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차마 용서해 달라고 할 대범함은 갖지 못할지라도,그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을 찾아보는 겸허함은 가져 볼 수 있을 것 같은데..기도의 반경을 넓히는 것,그것이 곧 축복의 반경을 넓히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내려놓습니다!
내 욕망의
큰 덩어리.
하나,둘..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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