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4년 주보

사순 제3주일2014년 3월 23일(가해)

모든 2 2014. 3. 23. 03:52

참된 양식」김진철 신부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요한4,42)

 

 

  + 요한 복음.4,5-42<도는 4,5-15.19-26.39.40-42>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네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말씀의 향기>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양희창 세례자요한 대화동 주임-

 

 주일학교 아이들이 한참을 뛰놀다가 들어와서는 물 한잔을 들이킵니다. 정신없이 뛰논 만큼 정신없이 들이키고는 말합니다. '아 ~ 살 것 같다.'말하는 품새가 우스웠는데,생각해보니 그 느낌이 어떤 것이니지 오늘 복음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살 것 같다.'이 말은 오늘 만나게 되는 사마리아 여인의 입에서도 나노는 말입니다.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있는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만납니다. '야곱의 우물'이 표현하는 것처럼, 덥고 비가 잘 오지 않는 팔레스타인 기후에서 '우물'은 생명수나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우물이라는 장소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만큼 지키거나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일어나는 자리였고,중요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성경에서도 구원역사의 중요한 사건이 시작되는 곳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니 오늘 예수님을 만나는 이곳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얼마나 중요한 곳이 될지 알게 해줍니다. 지금 이곳에 예수님께서 머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머물고 계셨던 이유는 길을 걷느라 지치셨기 때문이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더구나 가장 뜨거운 '정오 무렵'이라고 하니 목마름은 더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목마르고 지쳐있는 한 여인이 다가옵니다. 복음의 설명처럼 이미 다섯 남편을 두어야 할 만큼 고단한 삶을 살고 있던 터라,그녀가 얼마나 지쳐있는 상태인지는 충분히 가늠케 해줍니다. 그래서 여인에게 '쉼(休)' 안으로 들어오듯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4.14)

 

  이 말씀으로 여인은 자신의 고통,영적 갈증,목마름 등이 무엇인지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마름은 사람이 아닌 하느님을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 당신 자녀에게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 귀한 것입니다. 더구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끊임없이 만나게 됩니다.

 

  사제도 미사의 성찬례 감사기도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오늘도 우리는 거룩함의 샘이신 주님을 만나 우리의 메마름을 치유 받고,주님의 '쉼(休)'으로 초대받습니다. 그렇게 오늘 우리 안에 샘솟는 말씀의 샘물은 '아~살 것 같다.'라는 감탄과 찬미가 되고, 우리는 날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우물가로  나가 물을 긷는 신앙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 보라보기(67)>

 

'청소년이해'를 위한 꼭지⑩

-'사이버 공간의 청소년'

 

사이버공간에서 청소년은 어떨까,청소년들이 인터넷에 친화성을 느끼는 이유는 열린 공간이며,개방적인 공간이라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매개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특징(3가지)을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 있다.

 

상호작용성: 생산자와 수용자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탈대중성: 보편타당하거나 공통화된 문화가 아닌 개인에 기반을 둔 커뮤니케이션임을 의미한다.

비동시성: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비동시적 위치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럼 이제 한국사회의 배경과 청소년의 인터넷몰입을 살펴보기로 하자,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인터넷,즉 가상공간에 몰입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입시위주의 교육정책과 여가/문화공간의 부재

② 청소년기의 특성(독립성,자율성,자기표현력,비판적사고력,개성문화)이 인터넷의 기술적 요인 및 사회적 요인(개별성 보장 등)들과 결홥하여 쉽게 융화됨

③ 청소년기의 과중한 스트레스부터 탈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함(사이버공간은 시성세대와 분리된 배타적인 공간이며,스마트폰 사용 역시 같은 맥락이며 또래 친구들과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

 

  이런 점에서 기성세대가 사이버 공간에서의 청소년을 바로 보아야 할 이유가 3가지가 있다.

 

모방과 카타르시스: 즉 모델링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현실공간에서의 억눌린 욕구를 사이버공간을 통해 표출함을 의미한다.

카타르시스 효과: 현실공간의 규제,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움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창조와 자율성을 통한 효과를 맛본다.

유희와 정보: 청소년들은 인터넷을 TV와 같은 메스미디어의 기능으로 사용하며 여가도구로 활용한다. 한편 인터넷을 감각적,유희적 도구로 인식하는 것은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니다. 상업성을 이용한 성인들의 불건전 정보제공이 청소년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청소년에게 인터넷을 문화로 인식시키는데 필요한 몇 가지 요소를 정리해 보자.

 

인터넷을 문화로 인식시키는 마인드가 필요함.

생산자로서 문화를 창조하게 하는 것.

인터넷으로서의 삶이 기술적 능력보다 문화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

인식의 변화,즉 현실과 연결된 사이버 문화를 인식하고 어떻게 인간으 좋은 공간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함을 알게 하는 것.

 

-신현문 발렌티노 신부 대전 정림도 살레시오 청소년수련원 원장-

 

 

<미사 속 숨은 보화>

 

축성기원(Epidesis concrationis)4

-성령의 활동

 

  새로운 양식인 2,3,4양식의 감사기도문에서 "축성기원" 기도는 모두 성령께서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변화시키는 축성의 주인공이라고 명백히 말합니다. 사제는 성령을 청원하며 예물 위에 손을 펴 얹으며,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해달라는 간구를 바칩니다. 축성기원은 성찬 제정문의 직접적인 준비인 동시에 성령이 활동하는 거룩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순간 복사는 종을 침으로써, 모든 교우들이 성령께서 활동하는 이 신비에 함께 하며 경건한 마음을 갖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간구합니다.

 

오늘의 생명과

내일의 영혼이

한 가닥까지도

투명하기를...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 이해인 수녀님 -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긷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당신이 하신 것처럼

주님,제게도 당신이 먼저

한 잔의 물을 청하시듯

조용히 말을 건네 오시렵니까

저는 죄인이기에

용기가 부족함을 당신은 아시오니-

 

제가 누구인지

당신이 누구신지

우리의 만남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오늘도 직접 당신께 듣고 싶사오니

어서 말씀하여 주소서

 

 언제나 일상의 우물가에서

작고 초라한 두레박으로

당신께 물을 길어 드린 저에게

이제는 두레박 없이도 물 긷는 법을

거듭 깨우쳐 주시렵니까

 

당신이 깊고 맑은 우물 자체로

제 곁에 서신 순간부터

저의 매일은 새로운 축제입니다.

긴 세월 고여 왔던 슬픔과 목마름도

제항아리 속의 물방울처럼

일제히 웃음으로 춤추며 일어섭니다.

 

당신을 만난 기쁨이 하도 커서

제가 죄인임을 잠시 잊더라도

용서해 주시겠지요?

주님, 당신을 사랑하는 기쁨은

참으로 감출 수가 없습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나간

우물가의  그 사마리아 여인처럼

저도 이제는 더 멀리 뛰어가게 하소서

더 많은 이들을 당신께 데려오기 위하여

그리고

생명의 물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