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병상 일기/ 이해인

모든 2 2018. 6. 17. 16:30

 

병상 일기/ 이해인

 

아플 땐 누구라도 외로운 섬이 되지

하루 종일 누워 지내면 문득 그리워지는 일상의 바쁜 걸음

무작정 부럽기만 한 이웃의 웃음소리

가벼운 위로의 말은 가벼운 수초처럼 뜰 뿐

마음 깊이 뿌리내리진 못해도

그래도 듣고 싶어지네.

남들 보기엔 별것 아닌 아픔이어도

삶보다는 죽음을 더 가까이 느껴보며

혼자 누워 있는 외딴 섬

무너지진 말아야지

아픔이 주는 쓸쓸함을 홀로 견디며 노래할 수 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삶을 껴안는 너그러움과

겸허한 사랑을 배우리.

 

 

 오늘이 ‘세계 병자의 날’이다. 그런 날도 있나 싶겠지만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이들을 돌보는 의료 종사자들에게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고자 1992년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께서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기념일인 2월 11일을 병자의 날로 제정하여 우리나라에도 가톨릭계 병원을 중심으로 매년 행사를 해오고 있다.

 

 병고로 시달리던 이들을 고쳐주시면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세계 병자의 날은 이런 예수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이들의 끊임없는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회이자 은혜의 장이기도 하다.

 

 평생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헬렌켈러 여사가 어느 날 보송보송한 병아리 한 마리를 손안에 담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촉감을 통해 '생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오금이 저리도록 기뻐하며 '이것이야말로 황홀한 생명이야!'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 황홀한 생명을 가장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질병으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과 절망이다. 대표적인 사망 원인이자 공포의 대상인 암의 경우만도 매일 340명이 진단을 받고 180명이 그것으로 사망한단다.

 

 병상일기의 이해인 시인 역시 지난 해 암 수술을 받은 후 지금 투병 중이시다. 깊은 종교적인 신앙과 영감으로 사람들이 겪는 고독과 슬픔, 고뇌와 갈등을 진솔하게 나누면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던 수녀님도 도리 없이 ‘외로운 섬’이 되었다. ‘가벼운 위로의 말은 가벼운 수초처럼 뜰 뿐’이어도 ‘그래도 듣고 싶어’진다고 하시는 수녀님의 솔직한 마음이 오히려 더 진한 사람의 체취로 다가온다.

 

 병의 치유 못지않게 그 고통을 품위 있게 견디는 것 또한 중요하다. ‘아픔이 주는 쓸쓸함을 홀로 견디며 노래할 수 있을 때’ ‘겸허한 사랑’을 배울 수 있다는 말씀은 그래서 솔깃하다. 고통 가운데 불안해하는 모든 병자들과 함께 민초시인 수녀님의 쾌유를 빈다. 민들레 솜털 같은 희망으로 견디시며 우리 앞에 다시 그 환히 웃는 모습 보여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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