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참스승 / 목필균

모든 2 2018. 6. 17. 16:28

 

참스승 / 목필균

 

꽃 이름만
배우지 마라

꽃 그림자만
뒤쫓지 마라

꽃이 부르는
나비의 긴 입술

꽃의 갈래를 열어
천지(天地)를 분별하라

몸으로
보여주는 이

 

 - 시집 ‘꽃의 결별’ 중에서 -

 

 

 20년 전 모 항공사에서 일할 때 얘기다. 뉴욕 JFK공항으로 출장차 탑승한 비행기가 착륙을 앞두고 20여분간의 선회비행 끝에 공항에 내렸다. 그 곳 기상상태는 쾌청이었고 기체의 결함 또한 없었다. 그런데 왜 기장은 긴박한 공항 사정으로 인하여 착륙이 지연된다고 기내 방송을 했으며, 실제로 20분 이상 공중을 뱅글뱅글 돌았을까?

 

 공항의 활주로 사정이 좋지않다는 정보는 기내에서 접수하였으나 그 자세한 내막은 운항관리실에 도착한 뒤에야 제대로 풀렸다. 원인은 허드슨 강에 주로 서식하는 수천 마리의 새떼(펠리칸 종류)들이 각자 입에다 큼지막한 조개를 하나씩 물고와서 일제히 공황 활주로에 낙하를 하여 갑자기 활주로가 아수라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 새들은 썰물의 바닷가에서 껍질이 딱딱한 조개를 먹이로 취하긴 하였으나 그냥은 도저히 그 속살을 파 먹을 수 없어 시야가 훤히 터이고 바닥의 재질이 딱딱한 공항의 활주로를 이용해 조개를 떨어뜨려 깨진 조갯살만 물고는 날아가버려 활주로에는 그들이 남기고 간 조개껍데기로 그것을 소제하지 않고선 항공기의 이착륙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공항과 항공사 사무실에 왠 아이들이 잔뜩 진을 치고 앉아 노트에다 무엇을 열심히 적고 있거나 그 곳 직원들을 성가시게 붙들고 말을 붙이는 것이었다. 인근 초등학교 2개 학급의 아이들이 '인간의 구조물을 이용한 새떼들의 먹이 행위'를 현장 학습 나온 것이었다. 새떼들은 대개 한달에 한번 하현달이 뜰 무렵 그 공습을 감행하는 데, 학교의 한 교사가 그 사실을 알고 다음 또 그런 일이 생기면 바로 학교로 연락해 줄것을 요청해 그날의 현장학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이들은 그 신기한 자연의 에피소드를 취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조류에 의한 비행 안전의 장애, 항공기의 비행 원리, 항공기의 발달사, 승무원이 되는 길, 기내 서비스 등 각자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한 심도높은 현장학습이 직원들의 업무에 방해가 되지않는 한도 내에서 진행되었는데, 나는 이 기막힌 열린 교육과 현장 학습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갖지않을 수 없었다. 사실 공항이나 항공사 측에서도 홍보 효과와 미래 고객과의 선린 관계 차원에서 나쁠 게 없는 윈윈 교육인 셈이었다.  

 

 자연히 이게 과연 우리나라였다면 가능한 일이었겠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 때 교육계의 키워드처럼 대접받았던 열린 교육과 체험 학습에 대한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궁금해졌다. 과연 그런 프로그램들이 '대학'과 '입시'라는 현실 앞에서 맥이나 추고 있는지, 모두 고개 숙인 구호가 된 건 아닌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지난 해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나선 교사에 대한 징계수위가 해임 등 중징계로 결론지어진 현실을 보면 그 우려와 위기감은 더욱 깊다. 물론 그들이 절차와 조직에 반기를 든 행위가 고스란히 정당화될 수는 없기에 경징계는 예상했지만 아예 학교에서 쫒아내는 식의 처사는 정말 너무했다.

 

 열린교육이 루소로 부터 시작된 진보주의 교육실험이란 평가도 있으며, 이 실험이 그동안 주입식 교육과 입시위주 교육의 병폐에 맞서 아동을 속박하지 않는 자연적이고 자율적인 학습을 도모하는 창조적인 사고력 개발이란 이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학력저하를 초래한다는 일부의 비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미래를 짊어질 우리 아이들에게 인간의 전체적 발달을 강조하는 전인교육과 인성교육의 좌표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면 열린 교육의 실천과 그 정신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직 초등교사 시인이 시에서 보여주는 단출하면서도 적합한 메시지와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이가 바로 참스승이라고 정의한 것은 '열린 교육'이 다시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뜻하는 바가 크다. 선생님 개개인으로는 이를 지지하고 몸소 실천하고자 애쓰시는 분도 적지 않겠으나 교육 현장 역시 조직인지라 참 교육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에서 용기를 내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특히 이즈음의 졸업 시즌이면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란 오래된 영화의 마크 선생님(시드니 포이티어)이 꼭 생각난다. 온갖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해와 인내로서 학교에 밝은 빛을 불러들이고, 결국 그 노력과 포용력으로 천지 분간 못하는 문제의 아이들을 감화시키면서 결실을 거두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

 

 이 영화에 학생으로 출연한 루루가 클라이맥스인 졸업 파티에서 주제가 "To Sir, With Love"를 부른 압권의 장면과 함께 '꽃이 부르는/ 나비의 긴 입술/ 꽃의 갈래를 열어/ 천지(天地)를 분별하라'며 그것을 몸으로 보여준 마크 선생님과 같은 이 땅의 많은 참스승을 기억하며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To sir, with love"

 

비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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