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위험한 식사/ 최문자

모든 2 2018. 6. 17. 16:26

 

위험한 식사/ 최문자

 

무서운 일이다

50년 이상 매일 매끼니

저 불량한 밥을 위하여

세상에다, 끝도 모서리도 없는 둥근 밥상 하나 차리는 노동.

거품 물듯 흰 밥알 한 입 물을 때마다

이빨과 이빨 사이에서 와와, 흩어지던 으깨진 희망.

산다는 건

세상이 나를 질겅질겅 밟고 지나가는

아, 말발굽 같은 식사.

산다는 건

아주 벙어리인 나로 깔릴 때까지

밥상 하나 차리며, 밥상이 나를 차리며

서로 반질반질하게 길들이는 노동.

 

무서운 일이다.

50년 넘게 이렇게 매일 매끼니 밥을 이기며

아슬아슬하게 밥을 먹어치우는 위험한 식사

저 불량한 칼 같은 밥을 먹기 위하여

꼭두새벽

나는 숟가락을 들고 나선다.

 

- 시집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랜덤하우스,2006)

 

 

  한 때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라는 좀 유치하다 싶은 화두가 입에 자주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더러 먹기 위해 산다고 답하는 돌출 인사가 있긴 했어도 대개는 살기 위해 먹는다는 모범의 답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켰다. 먹는 것은 오직 살기 위한 수단으로, 이 명백한 진리를 거스른다면 인간의 존엄을 포기한 궤변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어떤 태도를 보면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오늘은 무얼 먹지?’라는 고민도 세 종류가 있다. ‘안 먹고 살 수 없나’라며 먹는 행위 자체를 아예 귀찮게 여기는 부류가 있고, 정말 궁핍하여 매 끼니의 밥을 해결하기가 버거운 사람도 있는가 하면 먹는 즐거움을 위해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식도락가들도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끼니가 무섭다고 한다. ‘위험한 식사’라고 한다. 시작 당시 지방의 한 사립 대학교 총장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개인적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 정도의 궁색한 환경은 아닌 것 같고,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거룩하지만 ‘불량한 밥’을 방기하지 못하는 무서운 숙명 같은걸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 숟가락으로 자기 생을 파먹고 살아야하는 생의 계략을 어쩌란 말인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은 먹고 사는 일에 일평생을 다 바친 사람"이라고 지적했지만 간당간당한 가계로 품위 있는 삶과는 무관하게 아슬아슬한 밥의 ‘위험한 식사’를 정말로 할 수 밖에 없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생도 적지 않은 것을 어쩌란 말이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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