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막노동을 하고 싶다는 후배에게 / 유용주

모든 2 2018. 6. 17. 16:24

 

막노동을 하고 싶다는 후배에게 / 유용주

 

일을 한다는 것은

쉽게 이야기하면 품을 판다는 것인데

우스운 것은 품보다

포옴을 파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야

정당하게 품을 팔아야

바른 삶을 일구어나갈 것인데

폼부터 먼저 팔려고 드니 한심한 일 아닌가

먼저 정직하게 품을 팔 것

품파는 데 자신없는 사람이

포옴을 먼저 팔려고 든다는 것을 명심하세

땀냄새가 얼마나 구수한 줄 아나

그 냄새를 진짜 맡을 때까지

치열하게 자신을 밀어붙일 것!

건투를 비네

 

  - 유용주 시집 '가장 가벼운 짐'(창작과비평사)중에서-

 

 

 폼을 잡는 일이 품을 파는 일이고, 품을 파는 일이 폼을 잡는 일이라면 얼마나 소망스럽겠나. 솔직히 막노동에 무슨 폼이 나겠냐만 그것도 요즘엔 아무나 마구 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닌 것 같다. 그저께 텔레비전에서 보니 노가다 새벽 인력시장에 몸을 내놓아도 팔려가는 사람은 네 명에 한명도 안 된단다.

 

 시인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네 살에 중국집에 ‘속아서 팔려 간’ 뒤로 안 해본 막노동이 없을 정도로 육체노동에는 도가 튼 사람이다. 하지만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절망의 순간도 있었고, 그 세월을 견디면서 우연히 이성복 시인의 시를 만났다. “그때 만난 이성복의 첫 시집은 전율이었다. 뒤에 만난 박상륭은 메가톤급 충격이었지만 말이다.”고 술회한다.

 

 그런 그가 막노동을 하고 싶다는 후배에게 진지하고도 유용한 조언을 한다. ‘폼부터 먼저 팔려’하지 말고 ‘먼저 정직하게 품을 팔’아라고. 그러면서 ‘땀 냄새’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운다. 육체노동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울울한 떡대를 과시할 요량이 아니라면 폼 잡을 일이란 전혀 없다. 진짜 구수한 땀 냄새를 맡을 때쯤에야 노동은 삶의 핵심이며, 세계의 근본 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인은 '시멘트'란 시에서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자신이 가루가 될 때까지 철저하게/ 부서져 본 사람만이 그것을 안다.'고 했다. 아무나 쉽게 자격 없는 사람이 말할 수 없는 말을 시인은 말한다. 막노동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거룩한 생업이고 보면 M.베버가 말한 '사람은 직업을 통하여 자아를 실현한다.'는 말에 조금은 고개 숙여 ‘포옴’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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