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달북/ 문인수

모든 2 2018. 6. 17. 16:29

 

달북/ 문인수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지만

고금의 베스트셀러 아닐까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만면 환하게 젖어 통하는 달,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데

괴로워하라, 비수 댄 듯

암흑의 밑이 투둑, 타개져

천천히 붉게 머리 내밀 때까지

억눌러라, 오래 걸려 낳아놓은

대답이 두둥실 만월이다.

 

  - 시집 ‘쉬!/ 문학동네’ 중에서 -

 

 1969년 여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실황을 위성으로 생중계할 때 지직대는 흑백텔레비전 수상기 앞에서 우린 모두 숨을 죽였다. 이태백이 놀던 계수나무와 떡방아를 찧는 토끼가 화면에 잡히지 않을까 숨죽였으나 신비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과학자들이 말해왔던 공기도 물도 없는 불모의 먼지 땅이었으며, 수없이 운석에 두들겨 맞아 곰보가 된 크레이터 투성이의 달 표면이었다.

 

 그 후 40년이 지난 지금 도시에 뜬 달은 더 이상 예전의 신비와 전설이 서린 공간은 아니다. 탐사선이 달에 착륙했을 때 인간은 달에 대한 사소한 지식을 얻은 대신 무한한 상상의 원천이었던 마음 고향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달나라에 옥토끼와 계수나무가 살고 있다는 전설은 어린이들에게도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대신 달의 크기는 지구직경의 약 1/4이고, 중력이 지구의 1/6이며, 낮의 온도는 섭씨 100도가 훨씬 넘고 밤은 -100℃ 이하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구의 위성이란 지식만을 익힐 뿐이다.

 

 그래서 꿈과 낭만이 점점 사라지는 세상에 시인은 ‘만개한 침묵’으로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의 행간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달을 북삼아 난타처럼 두들긴다. 순수하고도 행복했던 유년의 추억을 깨우기도 하고 ‘고금의 베스트셀러’를 다시 쫙 펼쳐 보이기도 한다. 물론 달밤 채석강에서 뱃놀이하다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뛰어든 이백도 다시 불렀을 것이다.

 

 달의 신비가 찢겨져나간 자리를 '괴로워하라‘고 한다. ’투둑 타개지면서‘ 천천히 떠오르는 ’두둥실 만월‘의 대답을 억누르면서 들어라 한다. 차고 기우는 28일의 주기가 몸속에서 오랫동안 함께 공전했던 어머니의 은은한 말씀을 덩어리째 들어라 한다. 정월 대보름 장독대가 있는 마당에서 보름달을 보자마자 땅에 엎드려 절을 하고, 바늘귀에 실을 끼우며 빌었던 어머니의 소원을 다 귀담아 들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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