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산에서 헌법 제12조를 읽다 / 박칠근

모든 2 2018. 5. 19. 14:39

 

 

산에서 헌법 제12조를 읽다 / 박칠근

산에선 뒤엉킨 갈등조차
헌법 제12조처럼 술술 풀린다
나지막한 풀 한 포기도
키 큰 나무와 조화를 이루고
동떨어져 무관할 것 같은 먼 산도
어울려서 말쑥한 풍경이 된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헌법 제12조처럼 제 몫을 다 하는 큰 바위
홀로 서 있어도 소외되지 않는 소나무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이들을 수색 또는 심문할 수 없노라
능선 타며 흐르는 야릇한 빛
나는 비로소 신체의 자유를 느낀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여
휴식을 미룬 채 나를 바라보는 오리숲이여
내 어찌하여 오늘 하루도
옹졸하고 쪼잘하게 내 것을 베풀지 못하고
도둑고양이처럼 남의 행복을 탐했던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이 흘러간다
저토록 탐스러운 절경을 남긴 채, 헌법 제12조처럼.

<현대시> 2007. 10월호 

 

 

  영화나 드리마 등에서 하찮은 실수를 꺼집어 내어 까발리는 '옥의 티' 찾기 프로그램이 있다. 분명히 목욕탕에서 나왔는데 발바닥이 좀 까맣다고 옥에 티라 하고, 연속 장면에서 앞에서는 소매를 걷었는데 뒤의 장면은 소매가 내려졌다며 그것도 옥에 티라 우긴다. 심지어는 지난 해 상영되어 화제를 모았던 '색계'의 한 베드신에서 여배우가 겨드랑이 털이 보였다고 그걸 또 '옥에 티'운운하는 작자도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나.

 

  아무튼 이 프로그램을 보면 제작상의 실수 혹은 치밀함의 부족이라고 인정될 만한 지적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과잉 투시에서 비롯된 쪼짠함의 결과물이거나 황당 그 자체다. 만약에 시를 감상할 때도 이런 눈으로 본다면 '옥의 티'는 천지삐까리로 널려있을 게 뻔하다. 일일히 예를 들지않더라도 아마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생각한다. 하기야 그래도 좋으니 방송에서 '시에서 찾은 옥의 티' 같은 것도 좀 취급해 준다면 얼마나 근사할까만.

 

 박칠근 시인의 기발함이 돋보이는 이 시도 그런 옥의 티 찾기 식으로 돋보기나 현미경을 들이대자면

할 말이 없지는 않다. 헌법 제12조는 모두 7개 항으로 구성되어 '죄형법정주의' 정신을 담은 것인데

'산에선 뒤엉킨 갈등 조차 헌법 12조 처럼 술술 풀린다' 로 시작되는 대목이 우선 그렇다. 중간에 '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이들을 수색 또는 심문할 수 없노라'며 이 조문의 1항을 요약 부연하였지만 헌법에 명시된 조항 자체만으로는 사실 그 어떤 갈등도 술술 풀리게 할 수는 없다.

 

 그나마 산에서의 여러 풍경들이 법의 보호망처럼 느껴져 위안을 얻는다는 설정은 이해가 가지만 다시 바위와 소나무가 헌법 제12조의 보호  대상이 되는 양 표현된 대목은 아무래도 시적 비약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시가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로움으로 받쳐져 읽히는 이유는 뒷부분의 자성과 자각으로 귀결되는 미덕의 공감대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산에 오르기 전 아마도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 상황이거나, 모종의 오해와 갈등에서 비롯된

번뇌가 깊은 처지였을 것이다. 그게 산에 올라서 본 큰바위와 소나무, 코끝을 스치는 바람, 숲이 품어내는 '피톤치드'로 인해 일거에 해소되었다. 책상에 앉아 열람한 헌법 제12조 보다 더 강력하고 확실한 우군을 만난 것이다. 변론비를 지불치않고 실력있는 변호인의 조력을 얻은 것이다. 이성부 시인도 '

산을 배우면서부터 참으로 서러운 이들과 외로운 이들이 산으로만 들어가 헤매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공사다망하여 유리창을 닦는 일이 잦은 박칠근 시인 역시 어쩌다 본의 아니게 유리창 한 두장 깨뜨릴일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시인은 늘 그것을 상처라 여기지않으며, 서럽다고도 하지않아 스스로 해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가령 산의 그 깊은 품속으로 가만히 영혼을 맏기며 산새가 되고 꽃잎이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