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반성 704/ 김영승

모든 2 2018. 5. 19. 14:33

 

반성 704/ 김영승

 

 밍키가 아프다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눈엔 눈물이 흐르고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며칠째 잘 안 먹는다부억 바닥을 기어다니며여기저기 똥을 싸 놓은 강아지들을 보면낑낑낑 밍키를 보며 칭얼대는네마리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나는 꼭 밍키의 남편 같다.

 

 - 시집 『반성』(민음사, 2007개정판)

 

 

 몇 해전 매일신문에 흥미있는, 그러나 재미로만 볼 수 없는 짠한 사진 다섯 장이 나란히 실렸다. 한 무리의 개들이 대구 달성군의 어느 마을 앞길을 건너다 한 마리가 화물차에 치였다. 뒤따르던 다른 개들이 흔들어 깨워 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개는 화가 치민 듯 지나는 차에 달려들어 범퍼를 물어뜯으려 한다. 개들은 길 복판 친구의 주검 곁을 떠나지않고 서성인다. 그러다 비슷한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쫓아가며 사납게 짖어댄다.

 

 차가 개를 치고 그냥 달아났다해서 뺑소니로 취급받지는 않는다. 그 개가 현장에서 즉사를 해도 교통사고라 하지도 않으며, 물론 과실치사혐의로 기소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당사자인 개들의 편에 서서 생각해 보면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린가. 무단횡단이라는 피해자측 과실을 감안한다 해도 이건 아니지않나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들지만 개는 개일 뿐이라는 논리 앞에선 대책이 없다.

 

 이미 애견 인구가 엄청나게 불어난 상황이고, 개에 대한 인식도 소유의 개념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확실히 자리매김되어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난 어린이날 대구엑스코에 들렀다가 우연히 반려동물축제를 보게되었다. 적어도 그곳에서의 개는 애완 이상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개의 주인, 아니 개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처지에서 볼라치면 이런 '개죽음' 앞에서 그냥 태연할 수 있겠는지 묻지않을 수 없다.

 

 

 대구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 불리우는 도광의 시인(안도현 시인의 스승으로 더 알려진)은 한 가족이었던 '우슬'이 죽자 그의 주검을 평소 함께 산책했던 집 뒤 '소방산'에 묻었는데, 몇 삽 대충 파서 파묻었던 게 아니라 산주를 불러 거금 50만원을 치룬 뒤 정중하게 장례를 치룬 일이 있다. 그리고 그 '우슬'에게 바치는 송시를 너댓 편 함께 남겨 대구에서 그 '우슬'을 모르는 문인은 거의 없다.

 

 그러나 키우던 개가 죽었다고 식음을 폐하는 소녀가 있었고, 그 슬픔 가누지못해 함께 세상을 버린 여학생도 있는 반면에는 키우다 버려진 '예슬이' '미키' '재롱이' '또치' '뚜비' '푸푸' 아롱이, '쿠키' '흰눈이' '웅이' '쫑' 등등 수많은 '도쿠'들도 있다.

 

 오래 전 대구시의 의뢰를 받아 '자원봉사 체험사례' 공모 작품을 심사한 일이 있다. 그 가운데 유기견을 보호하는 곳에서 봉사를 했던 한 여학생의 글이 생각난다. 키우던 애완견을 버리는 이유는 대략 너댓가지로 갑작스레 병이 생겨 목돈이 들어가는 등의 유지비 부담, 개털이 천식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알러지에 대한 우려, 이사를 하며 달라진 환경에서의 사육 부담, 처음엔 귀엽기만 하던 것이 커면서 꼬락서니가 미워졌다거나 숫놈이 딸아이 발목을 붙들고 시도 없이 해대는 요상한 허그 따위가 그것이다.  

 

 

 최근엔 경제적 부담으로 내다버린 개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노벨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한 인간이 개와 우정을 맺는다는 것은 그 개를 잘 돌본다는 도덕적 의무를 지는 것”이라고 했다. 고의든 과실이든 인간이 개와 맺은 우정을 배신하는 행위가 도처에 널부러져 있는 한 인간의 내세가 밝을 리 없겠다. 개의 입장에서 보면 도광의 시인이나 이 시처럼 그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없고는 개와 동거할 자격을 의심받기 십상이다.

 

 김영승 시인의 아내뻘인 '밍키'는 추측컨데 우리가 흔히 애완견이라고 말하는 개와는 좀 다른 듯 하다. 성균관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58년 개띠인 시인은 오랫동안 아내도 없이 혼자서 방구석을 맴돌았던 백수였다.(지금의 처지는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해서 훨씬 나아졌지만 적어도 이 시를 쓸 때는 그랬다) 가난과 무능으로 일그러진 욕망의 고백을 일삼는 시인에게 '밍키'는 측은지심과 동병상련 이상일 수 있겠기에 그의 남편 같다는 말은 아무런 저항없이 들린다.

 

 반성 704는 시인의 반성 시집에 실린 83편의 시 가운데 하나다. 이 시집을 이남호 평론가는 "스스로 살아감의 난처함과 부끄러움을 이토록 까발린 시인은 이전에도 없었고, 시인의 뻔뻔스럽기까지 한 궤변(?)에 의거해 볼 때, 어쩌면 이후 한국시단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평했듯이 시집엔 유별난 시들이 많다. 장정일과 마광수의 경우처럼 검찰의 데스크에 까지 오른 건 아니지만 외설시비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시를 읽는 내내 그와 함께 상처투성이로 뒹굴었다. 자조와 위악, 오만과 일탈로 가득한 그의 시를 읽으면서 누군가 먼저 말했던 '아름다운 폐인'을 나도 보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