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 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 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히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 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내게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곧 삶의 기록이고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노래였다며 극작가 이윤택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이바구>란 글에서 어머니와의 일화를 이렇게 술회했다.
하루는 집에서 텔레비전 드라마 원고를 치고 있는데 옆에서 물으셨다. “이거 한 장 치는 데 얼마고?”
하고. “십만 원 정도 하요” 했더니 “뭐라꼬?! 그리 많이 주나? 그라믄 내 이바구 받아쓰라. 한 장에 만 원씩만 나 주고” 하셨다. 타이핑된 원고 한 장이 십만 원쯤의 돈으로 환급된다는 말에 어머니는 놀라셨다. 그리고 당신의 이바구를 드라마로 꾸미면 우리 집안이 졸지에 벼락부자가 될 거라고 믿으셨다. “니가 쓴 드라마를 봤는데 재미없더라. 시시콜콜한 월급쟁이들 사랑 타령이 이바구거리나 되나? 니는 내 이바구 대서방 노릇이나 하믄 되는기라” 하면서 어머니는 이번 기회에 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털어놓으려고 하셨다.
나는 아차 싶어서 엉뚱한 꾀를 내어 “나한테 털어놓기 전에 녹음기에 대고 이바구를 하소” 했더니 “사람이 사람한테 이바구를 해야지 녹음기에 대고 무슨 말을 하노” 하여서, “아, 어무이 말을 어째 다 받아 치요. 우선 녹음기에 대고 말을 해놔야 내가 듣고 또 듣고 하믄서 이야기를 꾸밀 꺼 아니오” 했다. 그날부터 어머니에게는 새로운 말동무가 생겼다. “아, 아, 내 말 들리나? 잘 들리나? 예예, 제가 황두기올시다. 그라믄 마 녹음합니다……”로 시작된 어머니의 이바구는 벌써 테이프로 몇 십 개가 되었다. 이 테이프는 고작 한두 달 사이에 녹음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녹음기와 그보다 더 오래는 친하지 못하셨다. 아무래도 사람한테 말을 해야 신명이 나지 기계에 대고는 그러지 못하며 재미도 없고 생각도 잘 안 난다는 것이다.
내 어머니도 그랬다. 했던 얘기 하고 또 하고 재미없는 꽃노래가 되어가는데도 아랑곳 하시지않는
어머니의 이야기. '애비야 시 그거 하면 돈은 좀 되나' 나는 입도 벙긋한 바 없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식이 '시인'이란 얘기를 전해들은 노인네가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나에게 한 말씀이다. ' 어무이 나 시 쓰고있는 거 아녀요, 그라고 우리 같은 사람이 시를 쓴다해도 돈 될 일은 없구마' 그러나 돈도 안되는 데 와 그 짓 하노 소리는 안하신다. 대신 '돈도 좀 되고 그라믄 울매나 좋겠노' '지 하고집은거 하믄서 돈도 벌민야 그보다 더 좋은 기 어디 있겠노만...' 어머니 말씀에 기운 빠질까봐 (뭐 그렇게 썩 하고집어 하는 것도 아이고 그럴 능력도 못되구마)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참고 넘긴다.
'그래도 글 쓰가 묵고 사는 사람도 있을 거 아이가, 테레비에서 보이 소설인가 테레비 연속극인가는
쓰믄 돈도 잘 번다고도 카든데, 내 살아온 이바구도 글로 쓸라카믄 쓸 기 좀 있을끼라' '일본서 처녀때 식구들 믹이 살리느라 소녀가장 노릇할 때 고생했던 이야기 말할라 카능거 아잉교?' '그거말고도 쓸라하믄 천진기라, 전쟁을 두 번 겪고 난리를 몇 번이나 당했는데...' '그런 건 그 시대 사람 누구나 겪은 건데 무슨...'
'동란 때 니 아버지 찾아내라꼬 인민군이 따발총 들이대고 집에까지 닥치질 않나, 난리중엔 니 아부지가 차고있던 권총 꺼집어내 소지하다가 실수로 총알을 발사시켜 내 바느질 한다꼬 앉은 자리 바로 앞에 그 총알을 쑤셔박지 않았나, 그때 쪼매마 치켜올�시마 나도 없고 니도 이 세상에 없는기라 ...그라고 동란 끝나고는 객식구들이 어디 한 둘이라야지, 매일 열댓명 밥 해믹이니라...' '아무튼 그런 거 안 겪은 사람 별로 없구마, 그라고 꼭 소설이란 게 뭐 사람 고생한 얘기만 갖고 되는 것도 아이고요' 서둘러 길어지는 얘기를 끊어볼 요량으로 슬쩍 화장실로 자리를 피했다.
결코 공손히 말상대를 해드리진 못했지만 사실 그렇다. 우리 시대 어머니는 누구나 그런 장강같은
이야기를 가슴팍에 묻고있어 박경리 선생처럼 글재주와 체계적 사유가 없어 그렇지 쓰려고 한다면야
왜 소재가 아니되겠나. 이해인님의 시에서와 같이 우리는 누구나 '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을 보고 듣고 자라왔으며, '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이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A4한장에 10만원 쯤은 받는 아들과 시 한 편 써봐야 거의 돈이 안되는 아들의 차이, 그리 많이 주나 하고 속으로 대견해 하시는 어머니와 돈도 되면 좀 좋겠노 하시며 속으로 서운한 어머니의 차이,
그리고 재탕 삼탕 수십 번을 넋두리로 혹은 아들의 잔꾀에 속아 쑥스럽게 녹음기에 대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들과 박경리 선생처럼 우뚝한 어머니와의 차이일 뿐, 뭉뚱그려 그 육즙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아들 딸들이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또한 악보는 각자가 달라도 가락이야 무슨 차이가 있겠나. 내 어머니는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보다 딱 한 살이 적은 또끼띠시다. 선생의 영정 위에 추념의 정과 함께 흐릿하게 내 어머니의 모습이 비쳐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걸까. 두달 여전 하나 밖에 없는 어머니의 여동생인 이모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실 때도 그랬었다. 어제 어버이날, 큰 호강을 시켜드릴 자신은 별로 없어 염치 또한 없지만, 그래도 마냥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기도 드렸다. 지금의 모습 '푸른 어머니'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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