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4년 주보

주님 공현 대축일 2014년 1월 5일(가해)

모든 2 2014. 1. 5. 22:05

「동방박사의 경배」김진철 신부(2010),베들레헴 가타리나대성당 유리화)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2,2)

 

 

  +  마태오 복음.2,1-12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벌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말씀의 향기>

 

주님의 빛을 따릅시다! "주님의 빛은 고요하고 평화롭고 낮은 곳을 향해 비춥니다."-이의현 베드로 가오동 주임

 

  오늘은 주님공현대축일 입니다. 이방의 모든 민족을 상징하는 동방의 박사들이 이사야 예언서에 예언된 별을 좇아 아기 에수님께 경배를 드린 사건을 통해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세주이심이 공적으로 선포됨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동방박사들의 시선과 움직임이 그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대로 유난히 크고 반짝이는 별이 나타나자 새로운 왕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그들이 먼저 찾아 간 곳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이 아니라 예루살렘이었습니다.복음을 보면 '오다,가다,떠나다,돌아가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동방박사들이 곧바로 예수님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베들레헴이 아닌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됐을까요? 왜 그들을 인도하던 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상을 다스릴 왕은 분명 휘황찬란한 곳,성전이 있고 왕의 궁전이  있는 그런 높은 곳이 바로 새로운 왕의 탄생지일 거야.'아마도 이러한 생각이 그들을 이끌던 별을 끝까지 따르지 못했던 이유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화려함에 눈이 가리어져 정작 주님의 별빛을 끝까지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금 별의 인도로 베들레헴으로 가게 됩니다. 그들의 생각,인간적 판단을 따르지 않고 오로지 주님의 별빛만을 따라 그 빛이 인도하는대로 발걸음을 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드디어 주님을 뵙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 성사를 통해 주님의 별을 보았고 그 별이 이끄는 대로 살기로 다짐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주위의 수많은 인위적인 빛들이 가끔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듭니다. 남보자 더 높은 직위를 얻기 위한 열망,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한 노력,자녀들 뒷바라지,휘황찬란하게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거리들,텔레비전,인터넷,과도한 취미생활,배려 없는 교만함,자린고비 같은 궁색함,미움,분노,욕심,질투,게으름 등이 주님의 별을 놓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휘황찬란한 세상의 불빛에 속아 세속의 예루살렘에 들어가 있는지,구원의 빛을 따라 구세주께서 계신 베들레헴에 와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오늘 축일을 맞아 항구히 주님의 별만을 따라 생활한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청소년 바로보기(57)>

 

청소년들과의 소통을 위한 제안②

 

  우리는 드러나는 행동의 결과만 보는 데에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자녀들을 위해"그들을 나무랍니다. 혼날 짓을 했으니 혼내는 것이 당연하고,매번 혼나면서도 변화되지 않는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이게 혼날 짓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혼나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날 짓을 합니다.엄마한테 혼나고 싶어 안달이 나서 그러는 것일까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물어보려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철저하게 행동의 결과만을 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은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내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의 마음을 만나주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화가 나면 아이들에게 당신의 분노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성인인 부모님이 감당하지 못해 쏟아낸 그 무거운 감정의 덩어리를 10대인 아이들은 그 작은 가슴 안에 꾹꾹 눌러 담고 참아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음 안에 분노가 쌓일 수밖에 없고, 이 분노의 무게를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 '반항'이라는 형태로 분노를 드러내게 됩니다. 만일 이 때,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줄 수 있다면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얘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얘 때문에 속상해 죽겠다고 하시며 본인들의 감정만 보실 뿐 여전히 그 작은 가슴 안에 담긴 깊은 응어리를 만나주지 않습니다. 어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프다면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이 어른보다 훨씬 떨어지고 삶의 경험도 어른들에 한참 못 미치는 아이들은 그 상황이 얼마나 더 아플까요?

 

  우리가 하루동안 자녀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들 중에 격려와 지지와 칭찬이 많을까요? 아니면 잘못을 지적하고 훈계하는 이야기가 많을까요? 모든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멋진 대학생활을 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적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이 때 아이들은 죄절감을 느끼게 되지요. 그런데 부모님마저 자신을 무시하고 못마땅해 하며 야단을 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항심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요? 이 때 행동의 결과가 아닌 그 복잡한 마음을 읽어주고 토닥여 준다면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10대의 아이들이 40대처럼 판단하고 행동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을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이때부터 참된 소통이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종진 신부.복수동 주임-

 

 

<미사 속 숨은 보화>

 

거룩하시도다(Sanctus)9-공동체 성가

 

  오늘날 "거룩하시도다"는 온 공동체가 함께 부르거나 낭송하는 기도문입니다. 하지만 서방전례에서는 중세 후기에 성가대 전용 성가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화성악이 발달하여 많은 작곡가들이 곡을 만들었는데,웅장하며 긴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에 따라 전반부와 후반부가 나뉘어 불리기도 하여,과거 사용된 미사곡집을 보면 상투스(전반부)와 베네딕투스(후반부)가 분리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 1967년과 1969년 성음악 혼령과 미사 총지침의 영향으로 감사송의 마지막 부분에서처럼, 모든 천사와 성인과 온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6)>

 

빵집 주인과 아르바이트 여학생

 

 

  동네 구석진 곳에 빵집이 하나 있다. 가게도 작고 유명 빵집의  체인점도 아닌 그런 빵집이었으니 손님이 뜸한 건 당연했다. 빵집 주인이 창 밖을 보며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여학생에게 물었다.

 

빵집 주인 : 왜 이렇게 손님이 없지?

여학생 : 어제도 이랬는데요?

빵집주인 : 어제도 그랬다고 오늘도 그래야된단말이야?

여학생 : 아뇨,하루이틀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오늘따라..

빵집주인 : 주인이 아니라고 참 편하게 말한다. 네가 내 입장이 돼봐?

여학생 : 전 사실 늘 사장님 입장이 되는데요

빵집주인 : 뭐라고

여학생 : 전 항상 사장님 입장에서 생각한다구요!

빵집주인 : 무슨 말이야?

여학생 : "내가 사장이라면 일단 밀린 월급부터 주거나,아니면 월급주지 못한 걸 가장 먼저 진심으로 사과할 텐데.."라고 늘 생각한다니까요!

 

  빵집 주인은 집에 돌아가 밤새도록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자신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밀린 월급을 그 편지와 함께 동봉하여 여학생에게 건네주었다. 모두 새 돈으로 바꿔서..며칠 후,빵집에 손님이 더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얼룩 한 점 없이 빵집 유리창들이 모두 깨끗하게 닦여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유리창 너머로 본 빵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이기적인 태도에 종종 화가 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나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 사람을 바꾸려면 나부터 바꾸는 순서 바로 잡기,그게 바로 가장 간단한 평화의 지름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땅에 오신

아기예수님!

이 한해에도

항상 믿음과 사랑

피어나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향연  -삶의 기술 중에서(에픽테트스 강의)

 

  그대의 삶을 하나의 향연처럼 생각하라. 그 향연에서 그대는 우아하게 행동해야 한다. 음식을 담은 접시가 그대 앞으로 오면 손을 뻗어 자신이 먹을 만큼만 덜어 먹으라. 그 접시가 다음 사람에게로 지나가면 그대는 이미 그대의 접시에 덜어 놓은 것을 맛있게 먹어라. 그리고 만일 그 접시가 아직 그대 앞까지 오지 않았다면 참을성 있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라. 이것과 똑같은 겸허한 인내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그대의 자식과 배우자. 그리고 그대의 경력과 재산에 대해서도 갖도록 하라. 욕심내고 시기하고 가로챌 필요가 없다.

그대의 차례가 오면 그대는 정확한 분량만을 갖게 될 것이다.

 

  디오게네스(기원전 4백년경의 그리스 철학자,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이 갖고 있는 자연적인 욕망을 가장 소박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그런 삶을 실천했음)와 헤라클레이토스(고고하게 독자적인 길을 걸은 희랍철학자,만물은 유전하며 똑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을 남겼음)을 보라. 그들은 야비한 욕심보다는 그런 원리를 따라 인생을 산 최고의 스승들이다. 그들을 본받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