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말씀
-총대리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님-
태초에 생명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생명들이 당신 안에서 완성되는 곧 구원에 이르는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역사를 미리 말씀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집트 탈출과 광야 여정 그리고 가나안 정복으로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서 주신 예언자들을 통해 유배를 예고하셨고,유배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그들에게 고국으로의 귀환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긴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깨달은 것은 인간의 구원이 결코 인간의 손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자신들이 가진 것 없이 유랑하며 힘겹게 산다고 느끼던 때가 오히려 하느님의 은총 안에 살던 시기였고,가진 힘을 자랑하며 의기양양 국가를 운영하던 때가 사실은 가장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살다가 결국 유배의 벌로 이어진 시기였다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키워갔습니다. 많은 예언자들의 후반부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 갈망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예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처지에 사시면서 하느님 아버지와의 깊은 친교를 이루시며 우리도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잘 섬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셨고,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우리가 어떻게 부활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길이요,진리요,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을 가까이 하시며 모든 이들이 부족함이 없이 살기를 원하셨고,세리와 창녀를 맞아 들이시며 어느 누구도 차별 없는 한 형제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이 일을 이루어가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는 첫 마디에서부터 우리 모두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것이고,마태오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은 고통과 궁핍 중에 있는 형제들을 위리가 어떻게 돌보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어떤 이들의 어려움을 돌보아 주었다고 해서 그 공로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형제의 고통을 진심으로 나의 것으로 여기고 돌보는 사람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는 희생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의 인사말을 건네시고,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실때(요한 20,21-22),'숨을 불어넣었다'는 동사는 태초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코에 숨을 불어넣었다는 것(창세 2,7)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고 성령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부활의 새 생명으로 재창조 곧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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