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성당(대전중부지구)
본당 설립:1919.3.3/주보 성인: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 마태 복음 28,16-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말씀의 향기>
전교,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 배효순 베드로 궁동 주임-
전교 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고자 이날을 제정하였고,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선교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파견 설교로 전교의 시작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까지도 섞여 있는 불완전한 사람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시며 그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당신의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서','세례를 베풀고','가르치면서 지키게 하여',제자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마지막 말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것은 그 어느 때든지 '만민을 제자로 삼아야만'함께 있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여정에 있다하여도 '지금까지 그러한 것처럼 영원히'당신께서 함께 있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힘입어 교회는 어느 시대에나,어떠한 조건과 차별도 없이 하느님 구원에로 만민을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복음은 결코 억지스러운 것이 아니기에,그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기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이 기쁨을 교회안에만 가두어 둘 수 없어,세상 끝 날까지 세상 속으로,교회 밖으로 가져가길 외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교 주일을 맞아 우리 자신을 들여다봅시다. 주님께서 "가라"고 명하셨지만,우리는 쉬이 그 길을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서의 참된 기쁨을 우리 자신이 완전하게 맛보질 못했기 때문일 것이고,늘 세례를 베풀고,가르친다 하여도 그저 찰나의 기쁨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는 그들의 일상 속으로,그들의 문화 안으로 '들어가야'합니다. 거기서 그들보다 먼저 그들의 마음과 생각,삶 안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하시는 주님을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거기서 또 다시 당신의 기쁨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복음의 기쁨을 잊지 않고 주님의 현존을 바라보려 선교의 길을 떠날 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전교 주일을 맞아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선교를 위해선 먼저 각자가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고,주님의 말씀과 그분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믿고,신앙의 여정을 충실히 걸어가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인 선교,그 길로 기쁘게 떠나는 제자가 되어봅시다.
via의 시선(다시 처음부터)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수많은 소리를 듣고 살고 있습니다. 경험하는 것이 모여져서 오늘의 내가 되었고,각각의 경험은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 전체 안의 부분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경험한 나이고 내일 주어지는 경험을 통해서 또 다른 내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완성을 향해 나가는 과정의 종합입니다.
오늘 내가 먹는 것이 내 안에 들어와 내가 됩니다. 오늘의 나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생명을 몸안으로 받아들입니다. 내 안에 들어와 내가 되는 생명,그래서 오늘 내가 만나는 수많은 생명은 나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영원이라는 기나 긴 시간 속에서 서로 결합되어 있는 존재의 인드라망은 내가 경험하는 존재가 결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만남 속에서 깨닫게 되는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합니다.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경험하는 만남은 언제나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없는 만남은 없습니다.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이어짐입니다. 그리고 그 필연은 언제나 하느님 안에서의 성숙으로 연결됩니다. 지금의 나와 내일의 나를 위해서 준비되어진 만남,그래서 만남은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서 준비하신 구원역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관계 속에서 기억하는 질문입니다.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의 만남으로 내일의 나를 변화시키려고 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가끔 아니 자주,나의 거울인 타자를 만나면서 내 안의 불안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숨죽여 울고 있는 내면의 어린아이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이 목적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언제나 꿈꾸는 나의 모습입니다. 커다란 쇠구슬이 달린 족쇄를 다리에 묶은 채,사각의 감옥에서 꿈꾸는 세상을 허공에 그리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꿈꾸는 세상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족쇄를 끊어내고 감옥의 벽을 부숴야 하는데,그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족쇄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감옥벽을 깨뜨릴 망치도 제게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만남의 역사를 통해서 꿈을 현실화 시킬 수 있도록 나를 단련시키십니다. 타자의 거울을 통해서 비춰진 나를 경험하면서,내 안에 있던 열쇠를 꺼내서 족쇄를 풀고,감옥의 벽을 깨뜨리기 위해서 망치를 들었습니다.
하느님 섭리를 믿습니다. 이제 그 섭리에 다시 내 자신을 내어맡길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83)>
온통 행복일 뿐인데
내 앞에 행복
내 뒤에 행복
내 아래에 행복
내 위에 행복
내 주위 모든 곳에 행복
북아메리카 인디언 부족 나바호족이 아름다운 대지를 찬양하며 불렀던 노래입니다. 노래의 리듬은 모르지만 이 아름다운 계절에 노랫말 한 줄 한 줄이 유독 마음에 와닿습니다.
산과 들을 흐르는 바람을 맞으며 나바호족 사람들은 과연 어떤 행복을 느끼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단지 주변 경관의 뛰어난 아름다움만을 예찬한 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듭니다.
내 앞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려면 무엇보다 멀리 봐야 합니다. 코앞의 나뭇잎만 보면 곧 떨어질 낙엽 생각에 슬픔만 가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낙엽보다 산을 먼저 봅니다.
내 뒤의 행복은 꼭 옆 사람과 함께 돌아봐야 합니다. 걷다가 힘들었던 순간에 서로에게 의자가 되어 준 그 길목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봅니다.
내 아래에 있는 행복은 무릎을 낮춰야 느낄 수 있습니다. 무릎이 땅에 닿아야 세상 모든 존재가 하나의 뿌리로 얽혀 있음을 실감하고 풀 한 포기라도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내 위에 있는 행복은 두 손을 모아야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쪽 손만으로 결코 손이 따뜻해질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하느님께서 내밀어 주신 나머지 한 쪽 손의 무한한 사랑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온통 행복일 뿐인데 저만 혼자 고집스럽게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계절 늦게 피는 꽃은
경계를 허물고 핀다.
이제
너와 나의 길에도
경계를 허문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말씀의 꽃을 피워야 한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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