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동 성당(대전 북부지구)
본당 설립:1997.1.20/주보성인:성 토마스
+ 마태복음. 11,25-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말씀의 향기>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김찬용 베드로 해미 주임
오늘 예수님께서 복음을 통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즈음 우리들을 가장 힘들게 하고 버겁게 하는 무거운 짐, 멍에는 무엇인가? 어쩌면 실제로 무엇인가 힘들어하는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미래에 대한 지나친 불안과 걱정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 어린이 미사 때 "혹시 어린이 여러분들은 걱정이 있나요?" 했더니, 한 어린이가 대답하기를 "당연하지요." 그래서 "걱정이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나중에 커서 돈을 벌어서 힘들게 살면 어떻게 하나 그게 큰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한 어린이는 이번에 첫 영성체를 한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였습니다. 초등하고 3학년 10살 어린이가 벌써 2-30년 후의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걱정들을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걱정의 9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걱정들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많은 걱정들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도 내놓고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를 통해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영 안에 사는 분들은 비록 고통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가장 큰 멍에는 다른 어떤 외부적인 요소가 아닌 제 자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인간적인 내 눈으로 바라보면 불안하고, 걱정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영의 눈으로 바라보면 비록 죽음의 상황이 벌어져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복음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를 하느님의 영안에 있지 못하고 모든 것을 내 방식과 힘으로 힘들게 해결하려 하기 때문임을 상기시켜 주시고, 하느님의 영께서 내 안에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살아갈 때 우리들의 멍에와 짐이 분명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정년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via의 시선(내가 보는 하늘)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땅 위에서 삽니다. 당연히 하늘을 머리 위로 두고 살고 있지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다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저 하늘이 깨져서 땅에 떨어진 적이 있었을까?" 저의 경험 속에는 땅에 떨어진 하늘의 파편들을 보거나, 깨진 하늘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을 보면 하늘은 하늘은 태초의 상태 그대로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경험하는 하늘은 너무 열정적입니다. 땅과 하늘이 구별되지 않는 오늘입니다. 땅과 이어진 하늘, 땅 위에 세워지고 자리잡은 피조물 바로 뒤로 하늘이 보입니다. 오늘의 하늘은 너무 푸릅니다. 앉았다가 일어납니다. 앉아 있을 때의 하늘과 일어났을 때의 하늘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20층 아파트에서 경험하는 하늘은 어떤 하늘일까? 아니 더 높은 곳에서 경험하는 하늘이 궁금해집니다.
높은 곳에서 하늘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사회에서의 많은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하늘을 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더 높은 곳에서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적당하게 섞인 시멘트와 철골을 굳혀서 높게 세우고, 일정한 공간을 뚫고 연결해서 안전과 편리시설을 갖춘 거주지를 형성한 후, 땅과 분리된 '닫힌하늘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는 선전문구에 가슴이 뛰는 사람들, 그런데... 그 높은 곳에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하늘일까요.
20층 건물에서 보는 땅의 모습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뭔가 묘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도로와 건물 사이로, 존재의 움직임이 보입니다. 그런데 구별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한 사람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커다란 풍경의 아름다움 속에 그 아름다움을 구성하고 완성하는 구체적인 존재가 보이지 않습니다.
낮은 자리로 내려옵니다. 구체적인 사람이 보이고, 그 사람들 이어진 하늘도 보입니다. 하늘을 본다는 것의 전제는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고개를 들어서 보니 나와 함께 살아야 하는 그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와 이어진 하늘도 보입니다. 그 하늘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겠지요.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68)>
현정이가 발레를 싫어하게 된 날
초등학교 3학년 현정이 엄마, 발레 감상이 아이들 정서에 좋다는 정보를 접하고 때마침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레단의 내한 공연 표를 딸을 위해 과감하게 예매합니다.
공연 보러 가기 하루 전, 현정이 엄마의 모습입니다.
"내일 공연 보려 갈 건데 숙제 다 해 놨어? 준비물은 다 챙겼지? 학원 빠진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어?
내일 발레 공연단이 어떤 팀인지 인터넷으로 좀 찾아봐."
공연 당일 날, 공연 보러 가는 길에 현정이 엄마 모습입니다.
"공연 보러 가서 졸면 안 돼, 이게 얼마짜리 공연인지 알지? 엄마가 티겟 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알았어?휴대폰만 만지지 말고, 엄마 말 좀 들어!"
공연 관람 중, 현정이 엄마의 모습입니다.
"엄마가 뭐랬어" 졸지 말고 잘 보라고 했지? 지금 잠이 와? 이게 얼마짜리 공연인데?"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현정이 엄마의 모습입니다.
"공연 어때? 재밌지? 어떤 장면이 제일 좋았어? 발레 학원 다닐래? 팜플렛 잘 챙겼지?"
발레가 아이의 정서발달에 좋은 건 맞지만, 발레를 보러 가는 과정이 어떠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현정이에겐 발레 그 자체보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이 더 중요했을 겁니다.
발레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이에게 발레를 좋아하게 만드는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하는 시간을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부모가 되는 첫 번째 비결은 아닐까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그래
꽃이라 했지.
한 겹 한 겹
그 씀씀이가
마음이랬지.
그 마음 오래도록 담아낸
기도가
꽃이라 했지.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핀다 했지.
사람꽃.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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