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원성동 성당(천안 동부지구)
본당 설립: 1986.8.18/주보성인:성 김대건 안드레아
+마태 복음 10,37-42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사제들의 주보 성 김대건 안드레아 - 이상규 야고보 정하상 교육회관 관장
1846년 8월 말 즈음, 옥중의 김대건 신부님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두 통의 편지를 쓴다.
먼저 "교우들 보아라!"로 시작한 편지는 목자를 잃고 슬퍼할 양들에게 전하는 '참 목자'의 애틋한 사랑의 권고문이다. 다음 편지는 동료 선배 신부들에게 "안녕히 계십시오. 천국에서 뵙겠습니다."라는 하직인사로 이 서신의 마지막 부분은 자신의 동료요, 벗인 최양업 부제에게 한 당부의 말이다.
"벗이여, 내 다만 걱정하는 것은 33년 동안 목자 없이 있다가 이제 조선 사제 달랑 나 하나 있었는데.. 목자를 잃고 아파할 조선 교회가 걱정이네, 조선의 뒤를 부탁한다. 벗이 있어 내 갈 길을 떠날 수 있음이니, 교회를 부탁한다. 형제여, 그리고 또 천지간에 혼자 남아 우실 내 어머니 우술라를 위로해 달라는 부탁을 함세. 양업아, 네가 있어 그대가 있어 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서둘러 가니, 벗은 부디 천천히 오시오. 벗을 기다리는 마음만으로 천국이 천국일 수 있으니, 다시 한번 한 명뿐인 목자를 잃고 비통해할 조선 교회의 뒤를 부탁하오. 천국에서 봅시다. 천구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나에게 형제라는 두 글자를 가르쳐 주신 이여.. 부디 청컨대, 부디 나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말아 주시게나."
이 마지막 유언은 비단 소팔가자에 있던 최양업 부제만이 아닌 오늘을 사는 모든 사제들에게 조선의 첫 탁덕이 바랐던 소망으로 생각된다. "부디, 나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말아 주시게나."라는 부탁대로 최양업은 사제 김대건을 비롯한 79위 복자 조사서의 원안을 작성하게 되니 그 덕분에 친구 대건 신부는 성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 달라'는 청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자신이 펼치지 못한 목자로서의 충실한 삶을 대신 살아달라는 뜻일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김대건 신부를 한국의 모든 성직자들의 주보로 정하여 닮으려 노력하고 그의 전구를 청하는 것이리라.
최양업 가경자는 '피의 순교자'인 벗의 소망을 채우고자 혼신의 열정으로 사목을 하다가 길 위에 쓰러진 '땀의 순교자'가 되었다. 처절하면서도 치열했던 목자로서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소팔가자에서 쓴 두 번째 편지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저의 부모님들과 형제들을 따라갈 공훈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저의 신세가 참으로 딱합니다. 그리스도 용사들의 그처럼 장렬한 전쟁에 저는 참여하지 못하였으니 말입니다. 정말 저는 부끄럽습니다. 이렇듯이 훌륭한 내 동포들이며 이렇듯이 용감한 내 겨레인데, 저는 아직도 너무나 연약하고 미숙함 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저도 그분들의 엄청난 노고와 고난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 그리스도 수난의 부족한 것을 채워 구원사업을 완수할 수 있을까요?"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나 가경자는 우리 사제들을 위하여 빌으소서.
via의 시선(짧은 생각)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사랑하기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지속을 결정하는 것은 적절한 거리유지입니다. 그런데 저절로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사랑하기에 더욱 좋은 시간입니다. 에어컨을 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대신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이용합니다. 이른 새벽이면 창문을 통해서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싸고 지나갑니다. 도솔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 산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산을 깍고 부숴서 그 위에 아파트를 짓고, 막대한 전기를 사용해서 펌프를 돌려야 물이 순환되는 호수를 만들고, 그 옆에 아파트를 짓습니다.
눈으로 보는 호수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는 사이, 그 속에 살고 있었던 생명들은 삶의 자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창조의 순간부터 유지했던 자연의 곡선이 직선으로 바뀌고, 곡선 사이사이에서 자라던 수생식물들은 보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속에 자리 잡고 살던 작은 생명들도 그렇게 되겠지요.
더운 여름날, 사람들은 물가를 찾아서 집을 나섰습니다. 물가에 앉아서 낚시도 하고 삼겹살도 구웠습니다. 물가에 앉아서 서로의 넉넉함에 대해서 감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산과 강이 합작한 곡선이 주는 여유였습니다. 찌르지 않는 그리고 포근한 곡선의 품이 마주앉은 사람들의 마음을 품어내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사라져 갑니다. 직선만 존재하는 사회가 되어갑니다. 도시는 직선으로 채워진 공간입니다. 직선의 공간은 여유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시퍼런 단도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공간, 그래서 늘 불안하고 외롭습니다. 발전이라는 구호는 더 높은 직선을 세우기 원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수직은 수평을 이기지 못합니다. 땅의 낮음을 이겨낼 수 있는 유산은 없습니다. 바다가 바다인 이유는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오르고 싶다면, 자신이 디뎌야 하는 땅의 상태를 확인하십시오. 자신이 가야만 하는 궁극의 장소를 잊고 하늘만 바라보면, 땅은 자기 자신을 삼킬 무덤이 될 것입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67)>
소녀와 낡은 피아노
어느 중학교 강당 한구석에 낡은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습니다. 까만색 피아노 위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걸 보니 오랫동안 아무도 피아노를 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강당 청소를 담당하던 학생들 중 누구도 그 낡은 피아노에 관심을 보인 학생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2학년 유정이가 그 피아노에 관심을 갖고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손걸레로 피아노 위의 먼지를 닦다가 유정이는 문덕 궁금해졌습니다.
"이 피아노, 소리가 제대로 나긴 나는 걸까?"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유정이는 조심스레 피아노 뚜껑을 열어 봅니다. 하얀 건반 몇 개는 이가 빠져 있고, 까만 건반 몇 개는 눌린 상태 그대로 내려앉았습니다. 페달도 이미 망가져서 덜거덕 소리를 내며 헛돌기만 합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정이는 피아노 건반을 조심스레 두드려 봅니다. 역시나 영롱하고 맑은 소리 대신 마치 목이 다 쉰 것 같은 거친 소리가 귀를 자극합니다.
실망한 유정이는 피아노 뚜껑을 닫고 다른 곳을 청소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순간 유정이가 뭔가를 발견합니다. 악보를 올려놓는 위치에 낙서처럼 적혀 있는 짧은 문구였습니다. 거기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건반 하나가 사라지면 모든 음악이 사라진다."
그동안 늘 교실 한구석에 아무런 존재감 없이 앉아 있던 유정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다고 느꼈던 유정이의 얼굴에 처음으로 봄이 찾아옵니다.
평상시와 달리 유정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그 어느 때보다도 정성 들여 청소를 다시 시작합니다. 사라질 뻔한 건반 하나가 돌아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소리를 내는 순간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시련과 고통의
딱딱한 껍질을 뚫고
눈비 뜨겁게 받아내어
새벽녘
찢겨진 마음에서
숨결같이 활짝 핀
한 송이.
새남터에서
복음의 꽃은
그리 피었는데..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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