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구룡동 성당(천안 동부지구)
본당 설립: 2008.1.23/주보성인:성바오로
+ 마태 복음 18,19-22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은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말씀의 향기>
이 나라 이 땅에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게 하소서 - 박제준 토마 대전 교구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한국교회는 매년 6월 25일 전 주일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는 주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67번째 6.25를 맞이하는 오늘도 우리나라는 다양한 형태로 분단의 아픔을 겪어가고 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보내는 오늘, 남북의 화해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노력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공감하는 날로 보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보다 효과적이고 적극적으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활동을 펼쳐가고자 1984년 민족화해위원회(전 북한선교위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현재 전국 교구와 수도회에 민족화위원회가 활동 중이며, 대북지원사업과 북한이탈주민의 초기 정착을 돕는 일을 다각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통일 후 북한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모색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 대전교구 민족화해 위원회에서도 인도적 대북지원과 함께 대전, 천안아산, 보령을 중심으로 북한 이탈주민들의 초기 정착을 돕고 있습니다. 보다 큰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80년대 민주화를 일부분 이루고, 촛불혁명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발판을 맞이한 우리나라입니다. 하지만 많은 문제들이 분단체제 하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는 평화체제로 나아가기를 당부하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정전체제에서 비롯된 냉전 구도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에 영향을 주면서 많은 폐단을 낳고 있습니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냉전 논리를 악용한 기도 하고, 안보위기를 부추기며 온갖 적폐들을 양산하기도 합니다... 불완전한 정전체제 속에서 한반도는 늘 긴장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최근 북한의 핵과 미사일, 그리고 남한의 사드배치와 관련된 논쟁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 전쟁위기를 더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소통과 통합이라는 기치 아래 출범한 새 정부가 국민과의 활발한 소통을 바탕으로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참된 통합을 이룰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그리고 참 평화를 이루기 위한 외교적인 노력과 더불어 남북 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합니다... 우선적으로 종교와 민간차원에서 남과 북의 활발한 만남을 통해 서로가 한 형제임을 확인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을 당부합니다."(2017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주교회의는 지난해에 샤드배치 반대 성명서를 통하여 무력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남북관계를 지혜롭게 펼쳐갈 것을 우려와 함께 당부하였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보내면서, 한반도가 군비경쟁의 중심이 아니라 평화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화체제 추축을 위한 노력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via의 시선(천천히 살아도 충분한 오늘) -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가속기를 밟았는데 차의 속도가 떨어진다. 110킬로를 넘어가는 순간 발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느낌, 그리고 차의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러다 문득 조급함을 느끼고 있는 저를 봅니다. 빨리 가야 하는 이유도 없는데 왜 이렇게 가속기를 밟아대는지..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목적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약속시간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 전부일 것인데..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합니다. 더 빨리 갈 수도 없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리고 제가 도착해야만 모임을 시작할 수 있으니 약속시간에 늦지만 않으면 됩니다. 속도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좋습니다. 몸으로 전해지는 눈의 긴장이 사라집니다. 모임에서 해야 할 일을 위한 호흡도 가능해집니다. 바삐 가지 않으니 나를 보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서두르는 이유는 늦게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늦게 출발하는 이유는 이동을 위한 도구의 효율성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도구의 높은 효율성이 끼치는 영향성이 긍정적이지 않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자신에 대한 보살핌이 부족해집니다. 서두름의 상태는 삶의 여유, 공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공간이 없는 삶의 상태는 늘 바쁨(일)으로 채워집니다. 자신을 돌볼 여유가 사라집니다. 효율의 다른 이름은 인색입니다. 인색한 사람은 타인에게 자비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울타리를 정해놓고 포장된 의리 혹은 감춰진 두려움의 힘으로 선의 가면을 쓴 채 타인을 조종합니다.
아! 00일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른 아침, 밥통에 soup을 넣고 재가열 버튼을 누릅니다. 잠시 눈을 감고 기억해야 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신문을 읽고, 운동을 합니다. 간단한 아침, 몸의 조정을 위한 약을 먹고, 몸을 씻습니다. 가방을 준비해서 성당에 잠시 머물면서 기도를 합니다. "당신이 허락하시면, 잘 다녀오겠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천천히 움직여도 충분한 오늘이기에 그렇습니다. 천천히 움직이면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66)>
피할 줄 아는 용기
물건에 부딪히면 멍이 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흔적은 사라집니다. 사람의 마음에 부딪히면 겉으로는 멀쩡한 듯한데,가슴 속엔 시간이 흐르수록 멍자국이 선명해집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사람과 충돌하는 일은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근데 그게 어디 피한다고 피해지는 일일까요? 시도 때도 없이 그 충돌은 예기치 않게 어디에서나 쉽게 발생합니다.
어린 시절 또래 아이들끼리 서로 다투기라도 하면, 그 모습을 보고 동네 어르신들께서 가끔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별거 아니다. 싸우면서 크는 거야."
어르신들의 말씀대로 싸움은 어른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 나면 더 이상 다툼이란 건 필요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렸을 적의 다툼보다 훨씬 더 큰 상처를 주는 충돌이 어른들 사이에서 반복된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아이들은 다투면서 상대방을 알아갑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다투면서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쌓아 갑니다. 자신만의 아집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는 싸움 뒤에 더 친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한 번의 다툼만으로 마음의 문은 더 굳게 잠기게 됩니다. 자신만의 자존심이 그만큼 강해진 탓입니다.
부딪혀서 상처만 만들어 나가는 삶은 성장의 삶이 아닙니다. 가슴에 멍자국만 잔뜩 만들면서 나 혼자 고립되는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닐 겁니다.
용기란 싸움에서 이기고자 할 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만들지 않고 싸움을 피하려 할 때 진정으로 그 힘이 발휘되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상대방을 자극하기보다 상대방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최고로 용감한 사람은 아닐까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애련한 마음으로
참 보고 싶은데
그는 가끔
미운 소식만 전하지.
그래도
이제나
저제나
이쪽과 저쪽 해넘이
하늘
아래
살아온 햇수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서로의
안녕을 기도드리지.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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