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원 신부(2014)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 요한 복음. 2,13-22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도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말씀의 향기>
우리가 성전이며,감실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7)
-김준영 안드레아 홍성 보좌-
지난 추석 명절 전 "명절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설문 조사 발표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명절하면 조상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과 그동안 떨어져 지냈던 부모 형제들이 한 곳에 모여 가족애를 나누는 기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명절이 형식적인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느끼실 것입니다 부모나 가까운 이웃을 찾아가 서로 친교를 나누기보다,어떤 선물을 해야 좋을지에 대한 고민과 그로 인해 경제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또한 그렇게 가족을 만나더라도 행복하기보다 오히려 얼굴만 붉히고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슬프지만 설문조사에서 어떤 사람은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들뜨고 행복하고, 기쁜 명절이 아닌 부담을 주는 명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보시며 화나고,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인 성전은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부담없이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 위로를 받고,그간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하는 곳이지만,당시 유다인들은 잘못된 율법을 빌미로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가진 것이 없으면,성전조차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곳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라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는 오늘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성전을 허물어라,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하고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늘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기에 우리의 몸이 바로 살아 있는 성전이며,감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성전을 꾸미고 있는지,그리고 성체를 모시고 살아가는 감실의 모습을 지닌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 몸이 온갖더러움인 탐욕,시기,질투,미움 등으로 가득차 있다면,우리의 마음도 강도의 소굴과 같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거울을 보며 외형을 가꾸는 것처럼,우리 내면의 거울을 통해 영혼을 잘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거울에 비춰진 더러운 것들을 전례와 기도,그리고 성사생활을 통해 말끔히 닦아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신앙인이라면 신앙인답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아파하는 청소년(2)>
아버지가 필요한 아이들
소년원에 보내 달라고 울면서 사정한 효우리가 있었다.자신은 사람들이 많은것을 싫어하고,효광원은 다른 곳보다 자유로운 것 같아서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는단다.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해본 말이라 여기며 달래려고 애썼지만,효우리는 곧 판사님에게라도 연락해서 처분 변경시켜달라고 강요하듯 말하였다. 효우리에 대해 안쓰러웠던 마음이 괘씸함으로 변해 갔다. 아무런 권한도 없는 나는 소년원에 보내줄 테니 부모님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그때 독기를 품은 듯 쳐다보던 효우리의 눈에 눈물이 가득찼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흐느껴 울었다. 한찬 효우리는 말을 이었다. 집에 전화를 했는데,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소리만 들었다고 한다. 효광원에 들어오기 전 분류심사원에서 편지도 보냈는데, 반송되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느 형상으 전화번호를 건네주며 아버지를 찾았는지 알아봐 달라고 하였다.
효우리는 지나온 이야기를 꺼냈다. 효우리의 비행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가정에서 마땅히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효우리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였다. 학교에서도 다른 친구들과 비교를 당했던 효우리는 학교생활이 지겨웠고,집에 가는 것도 싫었다. 그것이 가출로 이어지면서 어긋난 판단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효우리는 아버지가 한 번 만 더 가출하면 다시는 집에 발들일 생각도 하지말라고 말했다는 것을 이제야 기억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아버지가 정신 차리라고 자신의 전화도 편지도 안 받는 거 같다며 꼭 알아봐 달라고 하였다. 나는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효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였다. 이사를 갔는데,아이의 행방을 몰라 연락할 수 없는 경우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효우리 담당선생님께 알아봐 달라고 하였는데,선생님은 우물쭈물 하기만 하였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적에서 판다는 말이 뭔지 알게 되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만나는 걸 원치 않았고, 오히려 아이의 소식을 알려 주러 간 경찰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때 동물과 비교하기로 한다...
효우리의 회개가 늦었던 것일까? 효우리가 많은 것을 바란 것인가? 그저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던 것일 텐데,옆에 있다는 존재 자체로 아이는 위로를 받을 텐데 말이다. 같은 해에 들어왔던 다른 효우리가 생각이 났다. 그 효우리의 아버지는 게임중독으로 매일 게임만 하였다. 게임머니가 떨어지면 효우리에게 강제로 게임을 시켜 게임머니를 채웠다고 한다. 효우리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실신할 정도로 맞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효우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보고 싶다고,그때 게임머니를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울었다. 효우리 아버지의 행동에 분을 삭히지 못한 나는 효우리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효우리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했는데 뭐가 보고 싶고,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효우리는 목멘 소리로 말했다. "아빠니까,아빠잖아요."
-변창수 시메온 .사회사목국 효광원 담당-
<미사 속 숨은 보화>
마침 영광송Doxologia fanalis 2-내용
교회는 자신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드릴 수 있지만 그러한 영광은 크나큰 자비를 베푸신 하느님께 더없이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자신의 머리이시자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하나 되어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제가 마침 영광송을 외면 교우들은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교우들의 응답은 사제의 영광송에 동의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감사기도 전체에 대해서도 응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아멘은 미사 전레 중에 가장 중요한 환호이자 성서적 응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엄한 미사를 거행하며 우리는 이 아멘을 노래로 마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38)>
셀카봉? 따봉!
멀리서 봐야 사랑이다
얼마 전 선물로 '셀카봉'을 받았습니다. '셀카봉'이 어떤 물건인지는 잘 앍 계시죠? 휴대폰으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할 때, 짧은 팔의 한계로 인해 생기는 여러가지 불편함을 간단하게 해결해 주는 기발한 발명품..
나홀로 셀카를 찍으면 항상 내 얼굴이 큰 바위 얼굴처럼 나오고,친구 여럿과 함께 촬영하다 보면 누군가는 자신의 얼굴 일부를 희생(?)해야 한는 억울함은 이제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셀카봉'만 있으면 그런 문제들이 간단하게 해결 되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모르시는 분이 계시다면 가제트 형사나 손오공을 떠올려 보세요. 쭉쭉 늘어나는 가제트 형사의 팔 같기도 하고, 마음대로 늘었다 줄었다하는 손오공의 여의봉 같은 거라면 '셀카봉'이 어떤 물건인지 상상이 되시나요?
혼자 놀기의 상징이었던 셀카 촬영을 혼자만의 자기만족이 아닌 여럿이 함께할 수 있는 기쁨의 놀이로 바꿔 준 '셀카봉'은 참으로 고마운 발명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홀로 아무리 예쁘게 찍은 사진이라도 여럿이 함께 행복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만큼 아름다울 순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둘만의 모습을 간직하는 일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최대한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싶어지는 겁니다. 더 가까이,좀 더 가까이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이 최고의 기쁨이라 믿게 됩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건 필연적으로 부분만 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닙니다. 그래서 사랑할수록 길을 잃기 쉽습니다. 사랑할수록 작은 것만 커 보이기 마련입니다. 사랑에는 좀 더 멀리서 볼 수 있는 '셀카봉'같은 신기한 도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할수록 두 사람 주위에 다른 사람들을 보라고,사랑할수록 여럿이 함께 '김치'하면서 행복한 순간을 누리라고 오늘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기적의 '셀카봉'을 선물하고 계십니다.
암담한 어두움에서도
한 줄기 빛으로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자기 안경 - 정채봉 "내 마음의 고삐" 中 -
한 마을에 지혜로운 노인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끼리 다툼이 있었을 때 또는 마을에 어려움이 있을때 사람들은 이 노인을 찾아가 지혜를 빌려와 해결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지혜로운 노인한테 먼 마을 젊은이가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노인은 눈을 감고 있다가 되물었습니다."자네가 살고 있는 그 마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젊은이가 자조적인 웃음을 띄며 대답하였습니다." 말도 마십시오.우리 마을 사람들은 자기 욕심에만 눈에 불을 밝힐뿐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란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의 대답은 금방 나왔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도 그렇다네,"그 젊은이가 대꾸 없이 돌아간 뒤 얼마가 지나자 이번에는 다른 마을의 젊은이가 찾아왔습니다.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 젊은이 또한 물었습니다."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노인은 이번 역시도 눈을 감고 있다가 되물었습니다."자네가 살고 있는 그곳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젊은이가 신나서 대답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죠.어린이들을 사랑하고,인정이 넘치며,누구에게나 친절하고요. 들꽃 하나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사람들이어요."
이 말을 들은 노인의 대답 또한 신이 났습니다. "이곳 사람들도 그런걸." 젊은이가 돌아가자 이제까지 곁에서 스승의 말을 듣고 있던 제자가 물었습니다. "두 젊은이의 마을 환경은 각각 다른 것이었는데 왜 우리 마을과 같다고 대답하셨습니까?"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만든 환경에서 살아가게 마련이라네. 자기 마을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 마을에 와서도 역시 좋을 리 없지. 그러나 자기가 살던 곳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곳 역시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지. 명심하여야 하네.타인이란 각자가 마음 속에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 > 2014년 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왕 대축일 2014년 11월 23일(가해) (0) | 2014.11.23 |
---|---|
연중 제33주일 2014년 11월 16일(가해) (0) | 2014.11.16 |
위령의 날 2014년 11월 2일(나해) (0) | 2014.11.02 |
연중 제30주일 2014년 10월 26일 (가해) (0) | 2014.10.26 |
연중 제 28주일 2014년 10월 12일(가해) (0) | 2014.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