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4년 주보

연중 제 28주일 2014년 10월 12일(가해)

모든 2 2014. 10. 12. 22:30

「예복」김택민 신부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응할때

우리는 어떤 예복을

차려입어야 할까요?

부디 참회의 예복을 입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를-

 

 

 + 마태오 . 22, 1-14<또는 22,1-10>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그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치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말씀의 향기>

 

하느님의 초대 "모든 일을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하십시오."-강진영 요셉 천안두정동 보좌

 

    오늘 하느님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를 하느님 나라 잔치에 초대하시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은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였고, 이 초대를 거부한 사람들과 참석은 했으나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초대란 부르심,곧 소명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았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소명이 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소명일까요?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혼인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혼인이 무엇입니까? 혼인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합일의 성사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혼인잔치란 하느님과 사람의 합일,그리스도와 교회의 합일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계명을 준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만이 아니라,그리스도와의 합일을 통하여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특별한 소명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신앙의 목표는 지옥을 면하고 천당에 가는 것이라는 이기적인 계산이 아닙니다. 실상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교회와 하나가 되어 나아가 세상과 하나가 되는 복음의 삶의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초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는 사람들은 이 소명을 외면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왕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고 했듯이 죄인이든 악인이든 배웠든 못 배웠든, 젊든 나이 많든,모든 이가 초대를 받은 것을 상징하는 말씀인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혼인잔치에 초대할 때는 예복도 함께 보내는 당시 관습에 비춰볼 때,혼례복이란 초대하신 분의 선물에,거저 받은 삶에 감사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순전히 선물인 초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선물한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바로 혼인 예복인 것입니다. 초대가 고마운 마음에 내가 가진 것이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정성스럽고 소중하게 잔치에 가지고 가라는 당부입니다.

 

  내 안에 있는 선과 악,자랑스러운 것과 부끄러운 것을 가리지 말고, 있는 그래도 받아들이고 낮은 마음으로 자비를 청하여 주님 앞에 내어 드리는 것이 곧 예복을 준비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을 간직하며 다시 한 번 우리의 전부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간직합시다!

 

 

 

<청소년, 꿈을 꾸다(2)>

 

부모님의 태도는 청소년의 꿈을 키우게도 잃게도 합니다.

 

  또 다시 FIAT 이야기를 꺼내야 하겠습니다. FIAT을 떠나기 전에 3번의 준비모임을 갖습니다.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 가든지 미리 그 문화와 기본예의를 갖추고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준비모임 때 많은 부모님이 아이들과 함께 옵니다. 그러면 아이의 어머님께 이런 부탁을 자주 받곤 합니다. "우리 아이는,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요. 신부님이 신경 좀 써 주세요."

 

  사실 이런 부탁을 받으면 신경이 당연히 쓰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좀 더 유의깊게 살펴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FIAT프로그램 8박9일 동안 그 아이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부족한 것이 있다면 챙기는 것도 그 아이의 몫입니다. 현지 아이들과는 손짓 발짓 해가면 웃고 즐거워합니다. 도대체 아이의 어머님은 무엇을 보고 아이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FIAT을 다녀온 지 한 달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FIAT프로그램을 다녀오고 한 달 뒤 feedback모임을 합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자신이 FIAT모임을 합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자신이 FIAT프로그램을 하고 난 후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달라져 있습니다. FIAT프로그램에 함께 갔던 유쾌하고 밝은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아이 옆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걱정하며,챙겨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풀이 죽어 있고, 즐겁지 않습니다. 이미 판단 능력도 있고,나름대로의 가치관도 잘 정립되어 있는 그 아이를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갓난아이로 만들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아이의 어머니였던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부모님들께 너무 힘겹고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 드린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체험을 하며 느낀 것은 아이들은 스스로의 동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나친 부모님의 아이사랑은 아이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아이에 대한 판단도 결정도 모두 부모님의 몫이 되어 버립니다. 그럴 때 아이는 흥미를  잃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감독관이 아니라 응원자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아이 스스로 동기가 생기며,우리가 예상한 그 이상의 모습으로 보답합니다. FIAT프로그램에서 매일 저녁에는 생활 나눔을 갖습니다. 그 때마다 많은 아이들이 말합니다. '부모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멀리 떨어져 있으니 즐겁기도 하지만,부모님이 보고 싶네요.'

 

  존경하는 부모님들.쥐고 있던 자녀의 손을 믿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잠시 놔주시면 어떨까요?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꿈을 고민하고 키울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이상수 사도요한 .청소년사목국차장-

 

 

<미사 속 숨은 보화>

 

전구 Intercessiones2- 역사

  초세기 미사 전례문 안에는 전구가 없었지만 2세기 이후부터 보편지향기도를 통해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해 바치는 기도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다가 4세기 경에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감사기도 안에 등장하게 되었고, 그 후 동서방의 감사기도 안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전구를 바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세기에 발달한 청원 사상의 영향으로 감사기도 안에 전구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고, 미사 전문을 개정하며 감사기도 안에 전구를 존속시키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전구를 바치는 것이 감사기도의 본질적인 의미인 찬양과 감사의 특성을 흐리게 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성사인 미사 때에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기에,감사기도의 의미를 방해하지 않도록 일치기원 기도 이후에 전구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34)>

 

꽃집 아가씨의 대박비결

꽃향기 보다 사람 향기

 

 병원 앞에 꽃가게 두 곳이 있었습니다. 병문안 오는 사람들을 위해 가게 주인들은 정성스럽게 꽃을 가꾸고 포장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곳 가운데 규모가 작은 꽃집만 유독 손님들로 붐볐습니다.

 

  규모가 큰 꽃집 주인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도무지 손님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작은 꽃집보다 더 많고 다양한 꽃을 보유하고 있는데 어째서 손님들이 자신의 가게가 아닌 그 꽃집으로 가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큰 꽃집 주인은 큰 결심을 했습니다. 자존심과 시기심 모두 내려놓고 대체 어떤 이유로 장사가 그렇게 잘 되는지 작은 꽃집 주인에게 한 수 배워 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손님이 뜸한 저녁 무렵 그녀는 작은 꽃집 가게 문을 조심스레 열였습니다.

 

  작은 꽃집 주인이 들려준 성공 비결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꽃을 포장할 때 그 안에 작은 카드한 장을 함께 넣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카드 안에는 환자들에게 밝은 빛과 위로가 될 따스한 글들이 그녀가 직접 쓴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적혀 있었습니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분이 꽃을 받게 될지 알게 되고,그분의 사정을 마음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며 짧게나마 진심을 담아 몇 자 적은 것은 꽃보다 더 고마운 선물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큰 꽃집 주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점부터 들러 보기로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글을 직접 쓸 수 없다면 책부터 읽어 보라는 작은 꽃집 주인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적어 놓은 말 한마디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선물이 된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독서는 나의 영혼만 살찌우는 독서가 아니라,내가 읽음으로써 그 누군가도 함께 행복해지는 그런 독서가 아닐까요? 사랑을 하든 사업을 하든 "진정성'만이 나와 상대방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대박비결인 것 같습니다.

 

 

 

태어남과 자람과 삶

그리고

이 계절을 주신

 

주님!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Amazing Grace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but now I see.

 

T'was Grace that taught My heart to fear

And Grace,my fears relieved.

How precious did that grace appear...

The hour I first believed.

 

Through many dangers, toils and snares...

We have already come.

T'was Grace that brought us safe thus far...

And Grace will lead us home.

 

The Lord has promised good to me...

His word my hope secures.

He will my shield and portion be...

As long as life endures.

 

When we've been here a thousand yers...

Bright shining as the sun.

We've no less days to sing God's praise...

than when we've first begun.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but now I see.

 

놀라운 은혜, 얼마나 듣기에 듣기 좋은지

놀라운 은혜는 나 같은 불쌍한 사람을 구했습니다...

나는 한때는 잃었었지만 지금은 찾았습니다. 

멀었었지만 지금은 봅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르쳤던 것도 바로 은혜입니다.

그리고 나의 두려움들도 없애게 한 것도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나타났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내가 처음으로 믿은 시간입니다.

 

많은 위험들, 힘든 일들과 유혹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왔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이끄셨던 것도 은혜입니다...

그리고 은혜는 우리를 집으로 이끌 것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좋은 약속했다...

그분의 말씀은 나의 희망은 보호합니다.

그는 내 방패와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한 생명이 영속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만년동안 있을 때...

놀라운 은혜는 나 같은 불쌍한 사람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찬양의 노래를 할 적지 않은 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처음으로 시작할 때였습니다.

 

놀라운 은혜, 얼마나 듣기에 듣기 좋은지

놀라운 은혜는 나 같은 불쌍한 사람을 구했습니다...

나는 한때는 잃었었지만 지금은 찾았습니다.

눈이 멀었었지만 지금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