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4년 주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2014년 9월 21일 (다해)

모든 2 2014. 9. 21. 10:01

조일식 스테파노(대전가톨릭사진가회)

 

거룩한 순교자들을

공경하여 축제를 지내며

다 함께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자.

천사들도 이날을 기뻐하며

하느님의 아들을 찬양하네.

-입당송-

 

 

   + 루카 복음. 9,23-26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말씀의 향기>

 

불합리한 삶이 가장 합리적인 삶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대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대는 ..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김택민 마태오 조치원 보좌

 

  아버지 : 죽어야 살 수 있단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렴.

  아   들 : 글쎄요...근데..너무 불합리하잖아요..

 아버지 : 진짜 네 속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구나!

 아   들 : 사실..십자가도,죽는 것도 싫어요. 그냥 십자가 없이 살 수는 없을까요?

 

  신앙생활에는 불합리한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 1945년 사제로 서품되지만 이듬해 1년여의 사제직을 마치고 순교 당하신 김대건 신부님의 삶도,그리고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셔야만 했던 순교자들의 삶도 너무나 불합리해 보인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또다시 우리에게 불합리한 삶을 요구하신다. 그냥 합리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는 걸까? 십자가 없이 기쁘기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는 걸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8월 방한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시복미사를 집전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해 타협하고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정신에 순응하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신앙을 양보하고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라! 3년이라는 짧은 공생활 끝에 십자가의 죽음으로 삶을 끝맺으신다.너무나 불합리해 보인다. 그러나 그 불합리함의 끝은 부활이었다. 그 불합리함을 받아들이기 위한 예수님의 노력을 바라보자. "아버지,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피땀 흘린 예수님의 기도 예수님의 고뇌!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얼마나 고뇌하고 있는가? 세속에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피땀 흘리며 기도하고 있는가? 얼마나 저항하고 있는가?

 

  예수님도, 김대건신부님도,수많은 순교자들도 그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고뇌 끝에 당신 목숨을 내어놓았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 목숨을 무엇에 내어 주고 있는가? 돈 따위에? 물질 따위에? 부디 귀하디 귀한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 주는 일이 없기를..

 

  적어도 날 위해 당신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 정도는 되어야,당신 목숨보다 나를 더 소중하게 여겨 주시는 예수님 정도는 되어야 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불합리한 일인가?

 

 

<프란치스코 교황님 메시지(3)>

 

청년들에게 들려주신 이야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4박5일간 우리나라에 머무르시면서 가장 기쁜 얼굴을 하고 계신 때는 아마도 청년들과의 만나는 시간이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다른 때에도 사람들과 함께 머무시는 것을 좋아하셨지만,청년들에게 해주신 말씀들이 교황님의 연설과 강론들 가운데 가장 생기있고 힘차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솔뫼성지에서 있었던 젊은이들과의 만남에서 교황님은 연설 중간에 젊은이들에게는 원고를 보고 말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며,원고를 치우시고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그런 자연스럽고도 진심어린 교황님의 모습은 청년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교황님께 이 세상 안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토로하고, 성소에 대한 고민을 묻기도 하고,참된 행복은 무엇인지,또 평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교황님은 그런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믿고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영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생명을 불어넣고,어떠한 절망적인 상황도 변화시킬 수 있기에,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세상 앞에서 주님을 증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무엇을 할 기도를 알려주셨습니다. 막막할 때,우리가 해야 할 기도를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길  원한다면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삶에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러한 기도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올바른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행복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참된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돈으로 사는 행복은 오래 가지 않음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사랑의 행복만이 지속되는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길은 단순하기에, 이웃을 사랑하며 마음 안에 미움이 없다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분단의 상황에 있는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기도해야한다고 하시며,우리가 한민족이기에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삶에서 어떠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또 정말 나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그러나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간직하고 하느님께 나아가길 권하셨습니다.

 

 청년대회 폐막미사 때 강론에서 "아시아의 젊은이여 일어나라."라는 주제에 따라 아시아,젊은이,일어나라라는 세 가지 주제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먼저 아시아 각각의 나라들이 갖고 있는 문화와 전통은 모두 아름답고 고귀하지만 그리스도교 문화와는 다른 점이 있다고 하시며,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복음을 통해 이 유산을 정화하고 승화시키고 완성시키길 당부하셨습니다.

 

  둘째로 젊은이는 낙관주의,선의,에너지로 충만한 때임을 상기시키십니다. 이 낙관주의를 그리스도교적인 희망으로,에너지를 윤리적인 덕으로,선의를 자신을 희생하는 순수한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시길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셋째로 일어나라는 말은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의미한다고 하십니다.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환호하는 삶으로 초대받고 있는 젊은이들에게,"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춤추거나,환호할 수 없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도록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 젊은이들에게 넘기신 말씀들은 교회와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당부입니다. 교황님을 통해 느꼈던 우리 젊은이드르이 어려움과 희망을 우리 모두가 가슴에 담아야 할 것입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31)>

 

삼각 마음

동심이 천심이다

 

  아주 오래오래전 아메리카 인디언 마을,추장으로 보이는 노인 한 분이 벽에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니,그림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도형에 가까운 형상을 그리고 계셨다. 드디어 그림이 완성되자 왼쪽에는 세모꼴 모양의 삼각형이,오른쪽에는 원 모양의 동그라미가 완성되었다.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던 마을 청년이 궁금한 듯 질문을 했다.

 

  청년 :이게 무슨 그림인지요?

  추장 :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청년 : 그런데 왜 그림이 두개입니까?

  추장 : 하나는 어린이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어른 마음이다.

  청년 : 동그라미가 어린이 마음인가요?

  추장 : 세모가 어린이 마음이다.

  청년 : 어른이 되면 세모가 동그라미로 변하는 건가요?

 

  청년이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을 짓자 추장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추장 : 죄를 짓는 순간 마음 안에 있는 삼각형이 한 바뀌 돌게 된다. 그때 마음은 뾰족한 모서리에 팔려 아파진다. 그런데 죄가 여러 번 반복되면 날카로운 모서리는 닮게 되고, 어른이 되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양심의 고통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된다. 결국 어른 마음은 뭉툭한 원형이 되는 것이다.

 

  어렸을 적 나쁜 일을 하면 밤새도록 잠이 안왔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죄를 지어도 쉽게 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잠만 잘 자는 이유 또한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작은 잘못에는 울면서 두려워하는데,어른들은 더 큰 잘못을 해도 웃으면서 큰소리 치는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자동차 엔진 오일 갈 때가 되서 정비소 가야하는데, 가는 길에 성당에 먼저 들러 오랜 만에 내 마음부터 점검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동그래지고 뭉툭해졌는지 그것부터 정비하는 게 올바른 순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순교성인들이여!

 

우리의 절실한 영혼

일깨우시어

정의와 평화의 땅

이루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김대건 신부님께 2       -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 -

 

하느님과 교회와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다

길 없는 길 위에서

 

칼을 받고 숨져 간 님

믿음의 겨레에게 처음으로

길을 열어 주신 이여

 

낯선 항구도시 상해를 지나

출렁이는 그리움으로

문 열고 들어선 외딴 성당에서

 

내 마음의 닫혔던 빗장을 열고

문이 되어 서 계신 님이여

100년이 지났어도 힘차게 살아 오는

 

그 푸른 음성에 목메어

오늘은 흐르는 눈물만이 기도입니다.

 

한국인 첫 사제로 희망의 닻을 올리신

님의 제단 앞에 우리도 함께 꿇어

 

사랑의 서원을 새롭히며 출항하는

작은 목선이 되어 봅니다.

 

순교자의 땅에 살면서도

순교자의 고뇌를 잊어버리고

 

순교 정신을 삶 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의 잘못을 용서 청하며

 

님이 건네 주시는 오늘의 편지를

다시 읽습니다.

 

"믿음으로 솟아오르는 산이 되십시오

사랑으로 흐르는 강이 되십시오

 

겸손으로 부서지는 흙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뿐인 모국을

가장 아름답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