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7년 주보

사순 제2주일 2017년 3월 12일(가해)

모든 2 2017. 3. 12. 22:30

당진수청성당(당진지구)

본당설립:2011.1.12

 

+ 마태 복음.17,1-9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하나는 모세께,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하고 명령하셨다.

 

 

via의 시선(나는?)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오전 모임이 일찍 끝났습니다. 그런데 참 애매한 시간입니다. 10시 40분,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고,근처에 도착해서 먹으려니 너무 늦습니다. 근처로 가다가 시간이 되면 눈에 띠는 식당에 들어가 혼밥을 먹기로 마음을 잡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식당에 들어왔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차림안내판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긴숨이 뱉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짬뽕을 주문하고,주변을 살펴봅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주문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편안한 옷을 입은 것을 보면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 같습니다.

 

저는 '무엇을 먹을까'를 생각하고 들어왔는데,제가 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와 먹을까'를 생각하고 온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사람은 밥을 먹지만 사실은 밥을 매개로 관계를 먹고 사는 존재라는 생각을 합니다. 혼자 배불리 먹는 밥은 복부의 팽만감을 줄 수는 있어도 가슴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채워지지 않는 밥상에서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듭니다.

 

   현대 세계는 이상한 믿음을 강요합니다. '인간은 서로 분리된 존재."라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분리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생명은 피조된 순간부터 관계의 망 안에서 살아갑니다.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생명의 바닥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창조의 시작부터 모든 피조물은 하나의 뿌리로부터 성장했습니다. 삶과 삶이 창조의 끈으로 이어지고 연결되어 살림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나를 위해서 먹거리가 되는 또 다른 삶이 나를 살립니다. 나 또한 그럴 것입니다.

 

관계의 망 안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협력이 살림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존재에게 중요한 주제는 "함께"입니다. 그리고 '함께"란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공동체적 존재로 창조되었고,공동체적 존재의 최고의 절정이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오늘 행복하소서.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51)>

 

'퀘렌시아'를 향한 마음차림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최근 신간을 출판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낯선 단어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퀘렌시아'(Querencia)라는 스페인어였습니다.

 

   '퀘렌시아'는 투우용어로 '피난처' 혹은 '안식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투우사와 사투를 벌이는 소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찾는 장소가 있는데,그곳이 바로 '퀘렌시아'였던 거죠.

 

   '퀘렌시아'는 특별히 고정된 장소가 아닙니다. 지치고 힘겨운 순간이 찾아오면,소들은 각자 가장 편안하게 힘을 모을 수 있는 자신만의 비밀 공간을 본능적으로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투우사가 승자가 되려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퀘렌시아'를 찾아서 소가 그곳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안식처를 찾지 못한 소는 전의를 쉽게 상실하고 마니까요.

 

   투우장 안을 거칠게 질주하는 소에게만 '퀘렌시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복잡하고 숨막히는 현실을 견뎌내야 하는 우리들에게도 그곳은 절실한 장소입니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직장인들 10명 중 8명은 퇴근 후에도 계속해서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해야 하고,젊은 직장인 68%는 퇴근 후 너무 지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만의 '퀘렌시아'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가장 따뜻한 안식을 얻고 또다시 용기를 내어 삶의 한가운데를 뛰어들 수 있을까요?

 

   작가는 취미에 몰두하는 것도,여행을 훌쩍 떠나는 것도,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모두 '퀘렌시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겐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퀘렌시아'입니다. 그런데 발길이 종종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일상의 걱정거리를 내려놓지 못하고,마치 퇴근 후 집에까지 일거리를 가져가는 사람처럼 복잡한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러 갈 때입니다.

 

   화창한 봄날 옷차림만 가벼워질 것이 아니라.마음 차림부터 가볍게 하고 저만의 '퀘렌시아'를 향한 행복 산책에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평화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길이라시면

어디든

언제든

 

가겠습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