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7년 주보

사순 제1주일 2017년 3월 5일(가해)

모든 2 2017. 3. 5. 22:30

연무성당(논산지구)

본당설립 : 1958.8/주보성인:요한 보스코  

 

+마태 복음. 4,1-11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을 단식하시고 유혹을 받으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사탄아,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via의 시선(하늘을 보며)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비내리는 밤입니다. 지글거리는 삽겹살에 한 잔의 소주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솔직히 생각나는 것은 삼겹살과 소주를 핑계삼아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가끔 소주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경험한 상봉의 기쁨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주는 관계.서로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으면 되어줄 수 있는만큼 되어 주는 것,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서로 할 수 있는만큼 되어 주었고,그것으로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비싸고 기름진 안주가 필요없습니다. 냇가에서 잡은 물고기로 어죽을 끓이고,묵은지로 끓인 김치찌개면 충분했습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안주와 소주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나누는 삶의 이야기 그리고 사로에 대한 공감입니다. 비난과 판단이 아니라"아! 그랬구나"로 채워가는 시간.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을 보냅니다. 할 수 있는만큼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요구 되어지는 것을 충족시켜주어야 합니다. 존재를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따라서 살면 안됩니다. 그보다는 역할수행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냐"를 묻지 않는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골몰합니다. 물음이 없는 행위가 일상이 되어야 하는 관계 속에서는 기능적으로 효율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치를 기준삼아서 계량화하고,통계를 근거로 결정의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면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고독 속에 스스로를 가둡니다. 나를 잊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성찰합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이 내가 믿었던 하느님과 같은 하느님인가?"

 

  해질녘,두 분의 형제와 산을 넘다가 다리가 걸린 형님인 태양을 안주삼아서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그냥 보내기 싫어서 손을 뻗어 바람을 붙잡으며 "참,좋다!" 노래했습니다. 막걸리 기운에 얼굴이 벌개진 형제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들리던 소리,"그러네유!"..듣고 싶습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50)>

 

유혹과 매혹의 차이

 

   유혹과 매혹은 어떻게 다를까요? 어떤 목적을 갖고 누군가에게 과장된 손짓을 하는 것을 유혹이라하고,꾸밈없는 모습으로 조용히 서 있다가 누군가의 눈길을 받는 것을 매혹이라 합니다.

 

  유혹은 마음을 먹어야 시작되지만,매혹은 마음먹는다고 시작되지 않습니다. 유혹은 없는 것도 꾸밀수 있는 행위이고,매혹은 없는 것을 결코 있는 것처럼 꾸밀 수 있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혹하려는 사람은 시간에 민감해집니다. 목적을 달성하려는 마음에 시간이 흐를수록 조바심이 납니다. 하지만 매혹적인 사람은 시간에 초연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아름다움이 사라질 리 없고,시간이 흐를수록 그 향기는 짙어지기 때문입니다.

 

  유혹하는 자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매혹하는자 우리의 눈을 밝혀 줍니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우리를 이끌면 그 길은 유혹의 길이고,걸어갈수록 점 점 더 밝아지는 길이 라면 그 길은 매혹의 길입니다.

 

  이제 3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봄이 찾아오고 꽃들이 여기저기에서 꽃망울을 터뜨릴 겁니다. 하지만 봄은 결코 유혹적이지 않습니다. 꽃들이 억지스럽게 피어나거나,바람이 어떤 의도로 불어오지 않습니다. 나무는 결코 시간에 쫓기며 조바심 내지 않습니다.

 

  자연은 이렇듯 매혹으로 가득 찬 세상을 보여 주는데,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유혹하느라 분주한 듯합니다. 이유 없는 만남이나 이득 없는 관계는 무시한 채,사람들은 오늘도 유혹의 사과를 만들기에 바빠 보입니다.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새순 안에서 오랜만에 평화를 느껴 봅니다. 조금씩 따뜻해지는 바람에 조심스레 마음의 옷깃을 열어 봅니다.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봄날입니다.

 

  종종 세상의 온갖 유혹적인 것들에 한눈을 파느라, 바로 코앞에 계신 매혹적인 주님을 볼 수 없게 되는 우리... 올봄에는 눈을 감고 주님의 향기를 따라 행복 가득한 봄나들이 가보는 건 어떨까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봄은 마른 가지에서

무엇으로 속살 뒤집어

꽃을 피우는가!

속삭이고 속삭이며

환하게

피어나고 있음을

귀 기울여

미소 짓는 오늘

 

주님 감사합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