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7년 주보

2017년 1월 1일(가해)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모든 2 2017. 1. 1. 20:30

  

서천 서면 성당(보령지구)

본당 설립:2011.1.12./주보성인:성모성심 

 

+ 루카 복음. 2,16-21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여 돌아갔다.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말씀의 향기>

 

새해 소망  -오병관 베네딕토 교구 관리국장-

주님께서 마련하신 선물

사랑을 시작한 소년처럼

처음 받아본 선물이듯

마냥 신납니다.


하루하루에 숨겨진 사랑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나는 없고 당신만 전부가 되는

어쩔 수 없는 사랑

그렇게 내내

나 없는 한 해이기를..


이런저런 일로 힘이 들면

이런저런 상처로 너무 아프면

사랑의 샘가에 앉아

나 없는 행복으로 돌아오고

임 뜻 가슴에 품고 설레던

어머니 마리아가 되기를..


그의 사랑 닿는 내 영의 세포에서

프리지어 향이 샘솟고

당신이 기쁘니 나도 기쁘다고 박수쳐 주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Via의 시선(오늘을 사는 방법)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팔이 없는 십자가"를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뒷면에는 이런 글이 써 있습니다. "나의 팔이 되어다오, "누군가의 묵상을 통해서 만들어진 십자가, 이 십자가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현실 속에서의 경험을 통해 만난 예수를 표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살아온 그의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팔이 잘린 예수는 누구였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예수의 팔이 되어 주었을 때 달라진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효율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서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은 적습니다. 오늘 떠났다가 내일 돌아오는 여행을 가면서도, 여행의 목적지와 가는 방법 그리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지 고민합니다. 그런데 정작 선물로 받은 삶을 탐험하면서도,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추구하면서 누구와 함께 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갈 것인지를 생각하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의 나는 경험하는 세상의 눈을 통해서 보여지는 나입니다. 나는 나이면서 세상이 보는 나이기도 합니다. 즉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형성된 관계 맺음의 결과이며 동시에 과정입니다. 내가 세상에 참여하는 방법에 따라서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됩니다. 내가 나라고 알고 있던 나와는 다른 나를 만나는 경험은 새롭습니다. 좀 더 많은 것을 느낍니다. 동굴 속에 새겨진 벽화를 세상 전부로 알고 있던 사람이 동굴 밖의 진짜 세상을 목격했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환희와 같습니다.

 

  새로운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삶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선물로 주어진 삶을 탐험하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는 실수를 저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식적인 선택에 의한 탐험의 지속과 멈춤 혹은 중단이 있을 뿐입니다. 살면서 삶의 탐험을 주저하게 하고 부정적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것을 자신의 실수 때문이라고 주장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살면서 경험해야 하는 마지막 목표는 아닙니다.

 

  삶의 탐험을 지속할 수 있는 선택, 사람은 기대를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언제나 의지적인 선택으로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꿉니다. 나는 희망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오늘 되소서

 

 

한 살 먹고 한 뼘 낮아진다면

 

 

독특한 새해 풍습을 가진 두 나라가 있었습니다. 한 나라는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목걸이를 새로 거는 풍습이 있었고, 또 다른 나라에는 배에 천을 두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걸이를 거는 나라 사람들은 그냥 새 목걸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한 살 더 먹게 되면 작년에 비해 조금 무거워진 목걸이를 걸었습니다.


한편 배에 천을 두르는 나라는 그냥 천을 두르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면 작년에 비해 조금 더 두꺼워진 천을 배에 둘렀습니다.


신기한 것은 두 나라 사람들 가운데 목걸이를 거는 나라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을 두르는 나라 사람들보다 한결 더 표정이 밝고 목소리가 온화했으며 손길도 따뜻했습니다. 비결은 이랬습니다. 목걸이를 거는 나라 사람들은 조금 더 무거워진 목걸이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고개를 숙이게 되고, 고개를 숙인 만큼 겸손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숙이면 아이들의 맑은 시선과도 마주칠 수 있고, 낮은 곳에 있던 어려운 사람들이 슬픈 표정 또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안아 줄 수 있었습니다.


반면 배에 천을 두른 나라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배만 앞으로 나오게 되어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거리가 멀어졌고, 고개는 자꾸만 위로 젖혀져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더 외롭고 더 짜증만 늘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제 만난 사람을 또 만나거나, 어제 했던 일을 또 하고, 어제 갔던 곳에 또 가야 하며, 어제 먹었던 음식을 여전히 먹고 있을 수도 있는 오늘입니다. 하지만, 오늘 만난 사람은 왠지 더 반갑고, 오늘 하는 일은 한결 더 진지하게 느껴집니다. 새해가 밝았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이때쯤 자신과 수많은 약속과 다짐을 하는 우리.. 올해 저의 다짐은 한 살의 나이 무게만큼 한 뼘 고개 낮추기입니다. 겸손이 주는 자유와 행복을 한껏 누리는 그런 행복의 목걸이를 목에 걸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께 청해 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맑고 투명한 마음으로

이 한 해를 키워 주소서.


성모 마리아의 빛과 희망으로

우리의 영혼 닦아내시어

 

우리가 우리와 하나 되어

이 땅을 평화롭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