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7년 주보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2017년 1월 29일(가해)

모든 2 2017. 1. 29. 22:30

  

논산 부창동성당(논산지구)

본당 설립: 1921.6.1/주보성인:루르드의 성모 마리아

 

+마태복음. 1,1-12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는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는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말씀의 향기>

 

각 민족이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는 동등한 권리 -간추린 사회교리 449항

-박제준 토마 한 끼 100원 나눔 운동 전담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라는 표현을 종종 듣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원조를 받던 나라였지만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으로 이제는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습니다. 국민소득 또한 1960년대에 비하면 300배가 넘게 성장하였고, 2016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7633달러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199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이후에 2010년 ODCD DAC(개발원조위원회)에 24번째로 가입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국제적으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ODA(공적개발원조 :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규모는 국민 총소득 대비 0.15%라고 합니다. 이는 DAC 평균인 0.30%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실제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국제적 나눔을 현실로 살아가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2003년부터 1월 마지막 주일을 해외원조 주일로 정하고 국제 공동체의 협력과 발전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는 해외 원조를 위한 국제협력 기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교회의 공식기구인 '한국 카리타스'를 비롯하여 '한마음 한 몸 운동본부', '바보의 나눔', '한국의 외방 전교회'. 이태석 신부님께서 활동하셨던 '살레지오 수도회' 등 많은 단체들이 해외 원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20여 개 단체가 1년에 한 번 가톨릭 해외원조 네트워크를 통해서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고, 더 나은 기준과 방법을 모색해 가고 있습니다. 대전교구는 '한 끼 100원 나눔 운동본부'에서 해외 원조를 담당하고 현재 몽골, 인도, 에콰도르에 지원하고 있으며 향후 제단체들과 협력하여 지원을 확대해 갈 예정입니다.

 

  미디어의 발달로 지구촌 곳곳의 사정을 잘 알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통받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선의의 관심도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각 본당에서 혹은 관심도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각 본당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먼 나라들의 고통에 참여하고 계시겠지만, 혹시 방법을 몰라서 참여하지 못하고 계시다면 교회 안의 여러 기구에 연락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오래전부터 국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 관심을 갖고 노력해 왔습니다.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1967년 발표하신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인종이나 종교나 국적의 차별 없이 누구나 다 타인과 자연의 예속 상태에서 해방되어 참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 명실상부한 자유세계, 가난한 라자로도 부자와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인간 공동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민족들이 발전 47항)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해외 원조 주일을 지내면서 '공동의 집'에서 살아가는 모든 하느님의 자녀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을 표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via의 시선(생각..)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10년 전 나무를 심었습니다. 쌍둥이 나무입니다. 아이를 갖지 못해서 고민하던 부부가 쌍둥이를 낳았지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아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몇 사람만이 아는 축제를 준비했습니다. 나무 심기, 성당 출입구 양 쪽에 누군가의 기증이라는 제목으로 나무를 심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옛 성당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쌍둥이 나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훌쩍 커버린 나무, 이 나무처럼 쌍둥이들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겠지요.

 

  18년을 가득 채우고 19년을 향해 갑니다. 신학교에서의 시간을 더하면 25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고 단단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시간 속에서 경험하는 존재의 무의미성, 늙어가는 존재로써의 인간을 만납니다. 늙어가는 나를 바라봅니다. 머리가 흰 서리가 앉아 있고 눈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현관 서리가 앉아 있고 눈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현관 열쇠를 찾기 위해서 방을 뒤지는 시간이 늘어나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손전화를 찾습니다. 이전과 다른 나를 경험합니다. 이전과 다른 나를 경험하면서 사람에게 성장이란 어떤 상태를 가르치는지 성찰합니다.

 

  "야! 단단하게 쥐었던 주먹을 펴고 빈 손이 되어 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은 모든 것을 가져가십니다. 나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돌려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더 큰 존재 안에 심어져서 더 크고 깊은 존재가 되도록 하십니다.

 

  역설을 살아갑니다. 인간에게 성장과 단단함이 드러내는 역설은 나약함입니다. 나약함 속에서 경험하는 성장과 단단함, 나약함을 살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단단해집니다.

 

  명절입니다.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에게 드러내는 나약함으로 충만해지는 명절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나약함이 다른 사람의 채움으로 더욱 충만해질 때, 우리는 행복해질 것입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46)>

 

인형 수선공의 마음으로

 

 

 이런 병원이 있습니다. 입원하기 위해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하는 병원, 입원 후 치료과정을 보호자에게 일일이 공개하는 병원, 퇴원할 때는 완쾌 기년 사진집을 선불해 주는 병원.

 

  병원 원장은 의사 출신이 아니라 전직 인형 판매 사업가이고, 간호사는 간호사 자격증 대신 바느질을 잘할 수 있는 섬세한 손재주만 있으면 되는 병원.

 

  일본 오사카시 '토요나카'라는 곳에 자리를 잡은 이 이색적인 병원의 이름은'인형 건강법인 후모후회 인형 병원'입니다. 사람 환자가 아니라 어딘가 문제가 생긴 '인형 환자'를 받아서 원상태로 말끔하게 복원해 주는 인형 수리 전문병원인 셈이죠.

 

  시간이 지나 머리카락이 빠진 인형에게 머리카락을 이식하기도 하고, 빛바랜 손톱 발톱까지도 세세하게 수작업을 통해 정성 들여 복원해 주는 이 병원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복원된 인형을 보면서 사람들은 상처 받았던 자신의 동심이 회복된 것 같은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순수하고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쁨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기 전, 먼저 인형과의 관계를 통해 세상으로 나가는 연습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인형에게 말을 걸고, 인형을 정성스레 돌보며 사랑의 연습을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커 나가면서 우린 현실 속에서 그 연습이 무의미한 것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말을 걸다 오해의 생채기가 생기거나, 애정으로 다가가다 바보처럼 이용만 당하는 아픔을 종종 겪기 때문입니다.

 

  명절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건 각자 상처 받은 인형이 되어 한자리에 모인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 연습 대신 생존 연습을 하면서 살아가느라

여기저기 망가진 부분들을 서로 섬세하게 어루만져 주기 위해 그 자리에 모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번 명절 모처럼 만난 가족들끼리 아물지 않은 상처에 또 하나의 상처를 보태기보다, 지친 마음을 한 땀 한 땀 꿰매 주는 인형 수선공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하늘과 구름꽃과

나비 새들의 노래와 시(詩)


부는 바람이
행복이어라

행복하리라

행복하여라.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