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복음.1,1-18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말씀의 향기>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 정운광 마태오 충남대학병원 원목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1,9) 알렐루야 알렐루야.
찬미 예수님! 메리 크리스마스!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베들레헴 마굿간에 아기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새희망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시작을 주시는 아기 예수님 탄생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첫째,
2016년 성탄절은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혼란스러움에 특별한 교훈과 용기와 은총을 주시는 뜻 깊은 날입니다. 하느님이시고 온 우주의 왕이신 구세주 예수님은 화려한 왕궁에 태어나지 않으시고 베들레헴 마굿간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대림 제3주에 예수님은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자들은 왕궁에 있다."(마태 11,7-8) 요셉성인과 성모마리아 어머님과 목동들,그리고 동물들의 순박함과 함께 계신 아기예수님을 경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박함 속에서 진리를 찾는 이들에게 축복하십니다. 소박함 속에서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축복하십니다. 이 참된 축복을 받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겉껍데기의 허망한 권력이나,순간적 환상의 화려함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시며 마굿간에 들판을 지키는 목동들에게 오셨음을 감사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참 생명의 빛,구원의 빛으로 오셨음을 감사합니다. 빛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빛을 필요로 합니다. 그 참빛이 예수님이심을 다시금 명심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원조의 그늘에서 헤매일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입니다. 육신의 한계인 죽음을 직면하는 비참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입니다. 그 상황 속에 영원한 생명의 존재를 가르쳐 주시고 희망의 빛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기쁨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 때문에 성탄절인 오늘 다같이 행복합니다.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 구원의 나눔을 받았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하느님이신 성자 예수님께서 먼저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보증과 삶의 새 희망을 인류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해 아기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참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35)고 하시며 서로 나눔을 행복해질 것이다를 가르치기 위해 오셨음을 명심합시다. 이것을 실천으로 다같이 행복하게 살아 갑시다. 아멘.
via의 시선(하느님의 초대)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사제관 책상을 살펴봅니다. 책상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의 내용을 살펴보니,많은 책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입니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몇 권 보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죽음에 관한 책을 읽은 이유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1
"당신은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의 삶이 살아지고 있습니까?
"젊은 철학자가 방송 중에 청중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살아내다'와 '살아지다'는 단어 하나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리에 반응하는 감정의 폭은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살아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살아지고 있는 것인가?
인간의 선택과 죄는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없었다면 죄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없는 상태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없애는 것입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없애면 더이상 죄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유의지가 없어진 상태에서 사람을 뭐라고 규정해야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자유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창조적 힘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창조성이 없는 사람을 하느님을 닮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지..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하느님 창조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지속됩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숨으로 생명을 얻고 눈을 뜨게 된 첫 사람을 전합니다. 그때부터 인간의 몸 안에서 내재하고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숨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 창조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는 감정과,하느님 창조의 결과에 동참하는 의지를 부여해 주시면서,하느님 창조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인간이 된신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첫 장소가 목수의 집이라는 사실은 지속되어져야 하는 창조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예수의 오심은 하느님 창조의 시작과 완성을 알려줍니다. "보시니 좋았던'창조의 결과를 비틀고 왜곡함으로써 하느님 나를 폭행하던 의롭다는 자들의 속셈을 드러내시고,말씀과 기적으로 창조의 원복을 회복시켜주심으로써,하느님 창조는 지금 여기에서 완성되어 집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때 죄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의 탄생은 창조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을 완성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강력한 의지이십니다. 성탄은 단순한 기쁨을 넘어서는 창조의 완성을 위한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창조의 완성을 위한 길 위에서 "나와 함께 걷자!"는 초대입니다. 이 초대에 응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창조의 회복과 완성을 향한 길 위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기쁜 성탄되소서.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41)>
그분이 오셨기에
소리 없이 오셨으나 빛으로 오신 분.
누추했으나 가장 평화로운 곳으로 오신 분.
잠든 세상을 깨우고 희망의 새벽을 열어 주시는 분.
한 낮의 분주함을 별빛 아래 고요함으로 달래 주시는 분.
옆집 사람도 나와 닮은 형제임을 알게 해 주시고
돌 틈 작은 풀잎과 내가 하나의 뿌리임을 알려 주시는 분.
높게 보다 낮게 나는 새에게 더 큰 날개를 주시는 분.
빠르게 보다 바르게 걷는 이에게 지팡이를 건네시는 분.
맨 앞에 홀로 서 있는 이에게는 침묵으로 답하고
맨 뒤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이에게는 손을 내미시는 분.
모두가 나눌 수 있는 커다란 빵을 주시기보다
한 쪽의 빵이라도 나눌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시는 분.
위에서 손을 내밀기보다 옆에서 손을 잡아 주시는 분.
그래서 왕으로 오시진 않았으나 모든 이의 왕이 되신 분.
그토록 아름다운 분이 우리 곁에 오신 오늘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렵니다.
우리 모두의 추함이 그분의 울음소리에 묻히기를
우리 모두의 욕망이 그분의 웃음소리에 사라지기를
우리 모두의 사랑이 그분의 눈빛으로 되살아오기를
그리하여 한 뼘이라도 그분 가까이 다가가는 세상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울려 퍼지기를.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우리의 사랑
아기 예수님!
온누리가
경배 드립니다.
"하늘에서는 영광
땅 위에는 평화"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교구 시노드 "우리 함께 걸어요!"
천주교 대전교구 시노드 사무국
교구 시노드 (synod)란? "함께 길을 걷는다"(Syn+hodos)는 뜻을 지니며, 교구 전체의 선익을 위하여 교구장 주교가 교구 구성원들(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개최하는 '대의원 회의'를 말합니다. 시노드를 통해서 교구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결이 필요한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며, 이에 따른 교구의 사목 계획이 수립되게 됩니다.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 소식
교구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별 회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번 주에는 9개 분과 중에서 수도자,본당사목,교회운영 분과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수도자 분과
시노드 '본당 한마당'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지켜본 분과는 '수도자 한마당'의 개최를 검토하고 있습닏니다.준비 과정에 있는 수도자용 설문지 작업과 별도로,분과에서 미리 어떠한 질문이나 알고 싶은 영역에 대해 방향을 잡아 제시하면 이에 대해 자유롭게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당 한마당에서는 자유 발언식으로 교구 시노드에 대해 개인의 의견을 피력하도록 1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이 방식을 활용한 수도자 한마당을 개최하는 안을 계획 중입니다. 즉 찾아가지 않아도 그들이 와서 자신들의 소리를 낼 수 있고, 또한 수도자들 안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좀 더 나은 의안집을 만드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자 한마당은 함께 참여하여 함께 생가해 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특히 이야기를 끌어낼 마중물 같은 진행의 지혜가 필요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1/29(화)/장소 :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본당사목 분과
단순히 주일미사 참여자 수를 가지고 신앙의 척도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러나 분과는 만일 우리가 미사 참석자의 숫자를 신앙의 척도로 바라본다면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신앙의 척도는 단순히 춧자로 표현되는 것은 아님을 함께 새기고 갔으면 하는 소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분과는 실제적인 대안의 방법적 내용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그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다룰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고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 내적으로 해 왔던 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 방법들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제시할 대안들은 외적인 수치에 집중하기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사회교리 교육에 대한 예를 들어보면 개별 본당에서 사회교리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며,본당 한마당 행사를 통해서 신자들의 자유 말언을 통해 이러한 부분이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교리 교육과정에서 사회 교리 측면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며,지역과 본당별로 시노드에 대한 온도차가 존재하지만,우리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분명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12/1(목)/장소 : 덕명동 성당
교육운영 분과
분과는 다른 교우들과 우리 교구 조직의 차이점을 비교분석했습니다. 첫째,대부분 교구에서는 사제평생교육,사제피정,사제연수 등 성직자와 관련된 업무를 사무처에서 관할하고 있으며, 일부 성직자국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 교구는 성직자와 관련된 업무를 '사무처'와 '비서실'이라는 이원화된 체계 안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둘째,다른 많은 교구에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이 연구소들 중에서 사목분야에 관련된 연구소가 다수를 차지하 있습니다. 통합사목연구소(서울),상담사목세터(전주),사목연구소(의정부),복음화연구소(청주),미래사목연구소(인천),가정사목연구소(수원)와 영성생활연구소 부설 종합상담센터(인천),가정사목연구소(수원)와 청소년사목연구소(수원)가 그것입니다. 이는 내포교회연구소만 운영하고 있는 본 교구의 상황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이에 따라서 분과는 대전교구에 성직자국과 사목연구소의 설립에 대한 제안을 검토중입니다.
업무 비중이 큰 성직자 전반 업무를 담당하는 '성직자국'이 신설된다면 사제평생교육,사제피정,사제연수 등을 비롯하여 유학사제 양성 및 전담사목사제,요양사제,성직자의 장례까지 돌볼 수 있는 보다 더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현대사회는 점점 더 다변화되고 전문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전체를 조망하고 총괄하는 기획업무의 중요성과 독자성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교구의 사목정책을 기획하고 연구할 '사목연구소'가 설립된다면,시대에 부합하는 사목적 현안들을 끊임없이 연구함으로써 복음화를 위한 사목적 대안을 발굴하고 기획하는 기능을 할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선교,청소년,가정,환경,사회복지 등 사목 전반에 걸친 전체적인 기획과 조정을 담당하는 차원에서 그 중요성을 매우 크다고 할 것입니다.
11/24(목)/장소 :만년동 성당
...............................................................................................사무국 행정지원단 홍보팀
시노드 준비위원회 인터뷰(1) : 전례 분과위원회
전례 분과위원회를 소개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전례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능동적인 참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이고,수동적이며,의무감에 따른 전례 참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통해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짐을 공의회는 말하는 것입니다.
전례 분과에서는 이런 공의회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핵심인 미사를 포함한 모든 전례의 능동적인 참여와 올바른 인식을 위해 전례 교육을 장려하고,실시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고, 그 중요성을 실천하는 역할을 지녔습니다.
논의하는 주제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째로,'신자들의 전례 교육' 입니다. 전례의 능동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전례의 각 부분에 대하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전례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그리고 전례 교육의 방법적인 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둘째로,'성사' 거행자들(집전자들)'에 관해서입니다. 전례는 공동체와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기에 집전자들이 전례를 위해 어떤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집전자들이 전례 거행에 있어서 조금씩 다르다면,신자들에게 혼돈을 줄 수 있으므로 전례 지침서에 대한 숙지를 다시금 강조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생활과 전례와의 관계'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개인의 전례와 성사생활의 참여도를 볼 때 그 사람의 신앙심이 잘 드러납니다. 미사 참여율이 낮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냉담자를 포함한 모든 신자들의 삶에 전례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노드를 통해 전례 분과에서 장기적인 목표로 삼고 추진하고 있는 일은 바로 '교구전례지침서 발행'입니다. 이 교구전례지침서는 시노드가 끝난 후 전례분과에서 논의된 결과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될 것입니다. 신중하고 방대한 작업이라 언제 끝날지 알 수는 없지만 교구 전례의 쇄신을 위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토론할 것입니다.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전례 헌장 10항-
...............................................................................................사무국 행정지원단 조사팀
2016년 성탄 메시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사랑하는 대전교구 자매,형제 여러분!
주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모든 은총과 진리가 그분을 통해서 왔습니다. 그분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여러분과 가정에 아기예수님의 사랑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우리 함께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쁜 인사를 나눕시다. 우리 교회는 올 한 해 동안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며 참회와 용서 가운데 신앙의 은총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놀라운 자비의 하느님을 만나면서 용서의 신비는 죄의 인정에서 시작됨을 깨달았습니다. 이 신비가 교회의 소명인 복음화의 횃불을 밝혀 주었습니다. 자비의 해를 지내며 성탄의 기쁨 속에 우리를 구원으로 불러주신 하느님의 신비와 은총을 기억합니다. 이 기쁨은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 불의를 거슬러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신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그러나 기뻐하는 우리 주변에는 분노와 허탈감에 시달리며 우리 관심에서 소외된 형제,자매들이 많습니다. 전쟁과 질병의 고통,가난과 마음의 상처,실직 등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어 내는 이웃,형제,자매들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이들을 위해서 탄생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그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손길로 체험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오늘의 교회와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는 삶의 길을 앞장서서 걸어가야 합니다.
죄악과 범죄가 넘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는 일은 순교자의 자세를 요구합니다. 오늘의 사회는 편법과 이기심,물질적 성공에 인생의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맞서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세속적 가치에 맞서 우리가 일으키는 마찰은 작은 불씨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 작은 불씨가 들불이 되어 암흑 같은 세상이 나가야 할 길을 밝힙니다.
2016년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빛의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촛불이 밝혀진 거리의 평화적인 집회에서 이 어둠을 이기고 마침내 빛을 보리라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가느다란 촛불이 모여 개인적 이익과 당리당략을 계산하려던 정치인들의 결정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국민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정치'를 향해 성숙한 일보전진을 일구어냈습니다. 이는 어둠을 밝히려는 빛의 힘이었습니다.
역사에는 암흑기가 있었습니다. 그 암흑기에 교회와 세상을 바꾼 것은 신학자의 빼어난 설교도,십자군 전쟁을 지휘한 전략도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빛을 발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온전하게 구현한 수도자와 순교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다가가고,그 일치 안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사랑의 삶이 작은 빛이 되어 굳은 마음을 보듬고 자신의 가슴을 치는 회심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사랑의 촛불은 마침내 들불이 되어 부패한 교회와 사회를 정화하였습니다. 겸손한 섬김의 삶은 왜곡되고 갇힌 정의의 물꼬를 텄으며,사랑의 실천으로 피어난 작은 불빛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쇄신하고 인류의 죄악을 환히 비추었습니다. 이것이 빛의 신비입니다.
온전한 빛,진리,사랑,선은 하느님 자신입니다. 하느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완전한 선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 간극을 메우고 구원의 가능성을 다시 열어주신 분은 하느님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류를 위해 오늘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완전한 사랑과 진리의 빛을 봅니다. 이 빛은 우리에게 온갖 유혹을 이기고 선과 정의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그리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은 변화된 자신의 삶을 통해 구원을 선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 세상 곳곳에서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말씀을 기도하고 묵상하며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삶을 통하여 우리 안에 불을 지피시는 성령을 만납니다. 우리가 발하는 빛은 이기심과 죄를 불사르고 참회하며 변화되는 용기입니다. 그 빛은 세상의 촛불과 똑같이 빛나지만,훨씬 근원적이며 참된 빛을 발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악과 아전인수의 모략이 판치는 현 사태를 지혜롭게 식별하고,하느님께서 우리 민족과 역사를 올바르게 이끌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완전한 사랑이시며,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는 우리 모두 위에 내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며,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길을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느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신앙의 모범 성모마리아님,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한국의 모든 순교자여,우리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 > 2016년 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림 제4주일 2016년 12월 18일 (가해) (0) | 2016.12.18 |
---|---|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2016년 12월 11일(가해) (0) | 2016.12.11 |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2016년 12월 4일(가해) (0) | 2016.12.04 |
2016년 11월 27일 대림 제1주일 (가해) (0) | 2016.11.27 |
2016년 11월 20일 그리스도왕 대축일(다해) (0) | 2016.11.20 |